어느 허무주의자의 변명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자유

by 김나현

아차, 방심하고 말았다.


지난 정기 인사이동으로 동갑내기 여직원이 들어왔다. 점심 식사 후 그녀와 종종 커피를 마시러 나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좀 친근해졌다. 특히 그녀의 다섯 살 배기 딸이 벌이는 아기자기한 해프닝을 듣는 게 즐거웠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에게 조심스레 내가 딩크족인 걸 말해줬다. 그녀는 조금 놀란 눈치였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모드로 그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러고도 대화가 잘 이어졌다. 분위기가 좋아서였을까 "왜 아이를 안 낳냐"라고 묻는 말에 그만 방심하고 말았다. 한숨을 쉬듯 아주 짧은 숨으로 이렇게 내뱉은 것이다.


"허무해서."


사실 이건 내 진심이다. 하지만 듣는 사람은 굉장히 곤란해지는 대답이다. 십년지기 친구도 아니고 이제 조금 친해지려고 하는 직장 동료에겐 말이다. 하하하하, 일단 웃음으로 진화. "농담이야. 농담."으로 분위기 전환. 그리고 꽤나 전형적인 대답으로 바꾼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


사실 두 대답은 나에겐 같은 의미다.


나는 스스로를 '허무주의자'라 부른다. 이런 나의 영원한 꿈은 '자유로운 영혼'이다. 그렇다. 자유라는 말 뒤에는 묘하게 (피 냄새가 아니라) 늘 허무가 대롱대롱 따라다녔다. 왜냐면 내가 말하는 자유는 뭐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자유가 아니라 하지 않는 데서 오는 자유기 때문이다. '집착하지 않는 마음' 이것이 내 마음속 허무의 실체다. 자연스러운 포기라고도 할 수 있는데 "어차피 한 번 살고 말 인생인데 내 것이 아닌 것에 집착하며 괴롭게 살지 말자"주의다. 허무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롭다.


이번 생에 내가 딩크인 것은 내가 그렇게 살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뒤틀린 측면들을 들먹이며 온갖 거시적인 변명과 이유를 갖다 붙인들 결국 내가 그렇게 살고 싶어서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나 스스로 이 선택에서 허무주의자와 자유주의자의 향기를 동시에 느끼고 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 근본적인 물음은 아직까지도 내 안에 부유한다.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해 허무하지만 어쩌면 평생 답을 찾으면서 가지고 놀 질문을 하나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자유롭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질문에 대해 사유할 시간이 진짜 없거나 또는 없다고 생각하고 산다. 사실 제대로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이 시대의 희귀종 아닐까. 생각할 틈도 없이 너무 많은 외부의 자극이 들어오는 시대에 진짜 내 생각을 찾는다는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타인의 욕망을 베낀다. 남들 사는 대로 사는 게 가장 무난할 거라 생각하면서. 물론 시대가 만든 보편적 삶의 방식을 따른다면 어디 가서 튄다고 욕먹을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 무난하게 사는 일조차 힘들어지는 한계에 다다를 수 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안 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유전자(물론 미래에는 이 유전자를 뜯어고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마음, 타고난 운 그리고 생로병사. 뭐든지 할 수 있을 거 같은 자신감에 차 있다가도 우리를 한없이 나약하게 만드는 이것들 앞에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고 무너진다.


그럴 땐 굴복해야 한다.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사실 그리 대단치 않다는 것을. 저마다 치명적 약점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는 것을.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먼지와 다를 바 없는 미약한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어차피 죽으면 다 아무것도 아닐 일 아닌가. 그러니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하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삶을 포기한 게 아니다. 오히려 집착을 비워낸 내 모습을 당당히 받아들인다는 것은 누구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좀 이상하고 비뚤어진 것 같은 나를 받아들일 때, 타인에 대한 시야도 확장된다. 내 마음도 제대로 휘두르지 못하는데 타인은 결코 내 마음대로 휘두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만 그들과 어울려 살뿐이다. 잘 어울려 살려면 타인의 삶의 방식을 따뜻하게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 왜 나에게 이런 걸 해주지 않느냐고 비교하고 따지지 않는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따뜻한 존재들과 어울려 살 때 우리네 삶은 비로소 평화로워진다.


내가 왜 아이를 갖지 않는지 궁금한 당신을 나무라려고 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의 그 궁금증은 자신과 다른 타인에 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에서 나온 질문이니까. 다만 내가 실수하듯 흘린 허무라는 말을 오해하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렇게 끄적여 봤을 뿐. 그냥 농담이려니 생각해주었으면 좋겠지만......농담치고는 좀 뜬금없이 진지한 단어긴 했어. 실수로 엎지른 물 같은 말에 그래도 아무렇지 않은 척 같이 웃어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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