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나현 Oct 15. 2019

딩크의 부부싸움은?

싸우지 않습니다. 논쟁을 할 뿐이죠.


우리는 잘 싸우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견해가 달라 언쟁을 할 때가 있지만 그건 싸움이 아니다. 일종의 심도 깊은 대화, 그쯤이라고 봐야 한다. 싸움이란 서로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일방적인 주장만 펼치며 타인에게 내 감정을 강요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을 펼치다가 한 사람이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할 때 그 사람의 주장을 수용하고 자신의 이해의 지평을 넓히는 기회로 삼기 때문에, 그건 싸움이 아니다.



며칠 전 우리들의 설전.

요새 캡슐커피에 빠져있는 남편이 친절하게 내 커피를 내려주던 어느 날. 그의 취향은 아주 달달한 커피이지만 그 미칠 듯한 단맛을 내가 힘들어하기 때문에 보다 덜 달달하게 만들기 위해 설탕의 양을 세심하게 조정한다. 그러면서 나를 “단알못”이라며 안타까워했다. 


바로 이때다. 나는 그동안 이 단맛에 대해 깊이 사유한 바가 있어 남편을 향해 한방 날린다.

“오빠, 내가 단맛을 알지 못한다고 놀리지 마. 어쩌면 진짜 ‘단알못’은 당신일지도 몰라. 나는 아주 적은 단맛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야. 오빠는 단맛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단맛에 중독된 걸지도 몰라. 그래서 아주 적은 단맛에는 반응하지 못하게 된 거고. 그렇다면 진짜 단알못은 당신일지도 몰라.”

순간 남편은 나에게 반박하기 위해 뭔가를 골똘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크~~학! 많이 컸군. 당신이 이겼어. 반박할 말을 못 찾겠어.”




내가 이긴 ‘영광의 사건’을 들먹여 봤다만, 사실 대부분 이런 설전의 승자는 남편이다. 남편이 매번 승자가 될 수밖에 없는 비결은 그가 경청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방 논리의 허점을 파고든다. 그렇게 상대방이 편협한 시각으로 보던 무언가를 새로운 시각에서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여지를 열어준다.  사실 나는 뭐든 조금 비관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인데 반대로 남편은 상대방에게 안 좋은 상황도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왜 그 컵에 관한 비유 있지 않은가. 컵에 우유가 반이 남아 있는 상황에서, 나는 맛있는 우유가 반밖에 남지 않았다고 속상해하는 사람이고 그는 반이나 남았다면서, 이게 어디냐면서 옆에 있는 사람을 묘하게 안심시키는 타입인 것이다. (그러니 고민이 있는 자여, 무엇이든 저희 남편과 상담해 보세요, 초긍정 에너지를 나눠주며 당신에게 버틸 힘을 나눠줄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남편 헤어스타일로 설전을 벌였다. 

남편이 동네 이발소에 다니기 시작했다. 동네 이발소를 한번 갔다 온 뒤부터는 이발소만의 ‘갬성’이 좋다며 이발소 도장 깨기를 하겠다는 큰 뜻을 세웠다. 이번에 도장깨기를 한 곳에서는 면도까지 받고 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얼굴 전체를 한번 싹 밀어준다는데 아기 피부 같이 보송보송하지 않냐며 뿌듯해했다.(물론 이 아기 피부는 딱 하루 간다) 

이발소 갬성 : 이렇게 머리 끝부분을 면도칼로 싹싹 밀어주는 거? 


하지만, 나는 그 이발소 스타일의 머리가 싫었다. 단정한 학생 같은 스타일인데 한 마디로 재미없는 머리스타일이라고 할까. 층도 내지 않고 모양도 내지도 않았다. 정말 기본에 충실하게 잘라놓았다. 안 그래도 머리숱이 나노미터같이 가느라단, M자형 예비 탈모인인 남편이, 조금이라도 머리숱이 많아 보이게끔 머리를 만졌으면 좋겠는데, 남편은 포기한 것 같다.


 “오빠, 그냥 미용실 가서 머리 자르면 안 돼? 예전에 그 오빠 머리 잘 만져줬던 언니 있잖아, 그때 그 언니가 파마도 하고 그러면 좀 더 나아 보인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서 ‘그 언니’는 남편의 머리 스타일을 5:5 가르마 머리에서 앞머리를 덮는 머리로 바꿔준, 남편 머리 스타일링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뤄준 사람인데, 커트 후 일주일 만에 찾아갔는데 그 사이에 그만두고 다른 데 가버린, 전설로만 존재하는 언니다.


 “그런데 독한 파마약을 쓰면 안 그래도 약한 머릿결이 더 상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운데...”

 “아니야. 요새 약이 옛날처럼 막 머릿결 상하게 하고 그러지 않아.”

 “그래도 미용실에서 머리 하면 그날뿐인 거 같아. 내가 다시 그렇게 예쁘게 만질 자신이 없는 걸. 왁스를 잘 쓴 자신이 없어.”


 아, 정말 포기한 건가. 좀 속상하다. 그래서 내지른다.

 “아, 속상하다. 그래도 우리 남편 볼만 한 게 얼굴밖에 없는데!!”

 푸훕, 남편도 나도 결국 웃고 만다. 

 “그래? 남편 볼 만한 게 얼굴밖에 없어?”

 “그래!! 얼굴 뜯어먹고 사는데, 머리스타일이 그 모양이면 어쩌냐!?”

 그래도 남편이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라고 느끼는 포인트는 여기. 자기주장만 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구와 나의 욕구를 모두 충족할 만한 대안을 찾으려고 애쓴다. 바버샵이라고 좀 고급스러운 이발소가 있는데 거길 가서 상담해보겠다고 한다. 다만, 가격이 여자 커트 비용보다 비싸다. 그러다 살며시 속내를 드러낸다. 


 “근데 나말야, 사실 포마드 머리를 해보고 싶었어.”

 “응?”

 “응, 이발소에 가서 진짜 해보고 싶었던 건 포마드 머리야. 하지만 나 같은 탈모인은 평생 그런 머리를 할 수 없겠지?”

 “응. 오빠, 그건 나의 웨딩드레스 같은 거야.”

 “웨딩드레스?”

 “응. 사실 내가 정말 입고 싶었던 웨딩드레스는 머메이드 스타일이었어. 하지만 그건 나같이 키 작은 사람한테는 안 어울리잖아. 그래서 결국 A라인 드레스를 입을 수밖에 없었어. 하고 싶은 거랑 할 수 있는 건 엄연히 다른 거야.”


이렇게 남편의 꿈을 짓밟고 다시 검색. 검색을 해보니 K-뷰티의 나라 한국에서는 못할 것이 없었다. 탈모 머리를 감쪽같이 숱 많아 보이는 스타일로 만들어 주는 능력자 언니들이 있었다. 그녀들의 재주를 보니 우리 남편에게도 희망은 있는 건가 싶어 기분이 좀 좋아졌다. 남편은, 아무튼, 장기적인 대안은 차치하고서라도, 지금 당장은 아침에 드라이를 하면서 머리를 좀 만져보면서 왁스 대신에 본인에게 더 익숙한 스프레이를 써보겠다고 했다. 그래도 내 말에 공감해주고 대안을 찾아줘서 나는 더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갑자기 남편이 내 뒤통수를 치듯, 한 마디를 날렸다.

 “그런데 내가 아무리 아침에 머리를 만져 꾸민다한들 당신은 어차피 못 보잖아. 그럼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렇구나.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 현타가 왔다. 어차피 난 아침 일찍 출근해 저녁 늦게 들어오니 남편 머리를 볼 틈도 없는데, 내가 무슨 득을 보자고 거의 한 시간 가까이 이런 설전과 검색질을 한 건가. 남편은 내 말을 존중해주고 경청해주고 함께 대안을 찾으며 나에게 작은 희망까지 안겨줬다. 뿐만 아니라 내 주장의 허점을 파고들어 인생무상까지 깨닫게 했다. 그리하여 이 논쟁의 진정한 승자는 역시 남편, 그대도다!



마지막으로 남편과 싸우지 않는 나의 고급 기술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부부간에 사소한 언쟁은 일상이다. 언쟁을 큰 싸움으로 만들지 않고, 즐거운 대화로 만드는 비법은 무슨 말을 하든지 마음속으로 하나, 둘, 셋을 쉰 다음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느긋하게 읊조려보는 것이다. 

“음, 그럴 수도 있군.”


일단 이렇게 하고 나면 ‘논리적이고 교양 있고 지적인’ 내가 어떻게든 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서 두뇌를 풀가동해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목 뒤에 있는 여드름을 짜 달라는 남편. 아직 채 익지도 않았는데 억지를 부린다. 그런 남편을 보면서 일단 침착하게 ‘음, 그럴 수도 있지’를 시전한다.


“아아, 하지만, 하지만......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왜 익지도 않은 걸 짜려고 하는가. 익을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않는가. 영글기도 전에 어린 여드름의 싹을 자르려는 이 파괴자여! 그건 비인간적 행위는 피부에 상처만 낼뿐, 여드름 관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단 말이다. 그 파괴적 행위를 당장 중단하라!!”라고 외치고 싶지만 참는다. 


“그래, 여드름 부위가 베개에 닿으면서 뭔가 엄청 거슬렸나 보다. 거울로 보기에 힘든 부위니 손으로 만지작거렸을 텐데, 계속 만지다 보면 손 감각이 둔해지면서 뭔가 튀어나왔다는 착각에 빠졌을지도 몰라. 그러니 자꾸 저렇게 짜 달라고 때를 쓰는 거겠지. 설령 다 익지 않을 걸 알더라도 익지 않은 여드름을 짜는 건 애초에 그의 오랜 습관이었어. 오래된 습관은 합리성과 논리성을 초월한, 강박적인 행동을 낳기 마련이지.”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래서 친히 면봉까지 들고 와, 보다 위생적인 방법으로 여드름을 짜주는 “척” 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당신을 위한다며 생색도 낸다. 결과는 바뀐 게 없다. 그의 목덜미 여드름은 여전히 붉으죽죽하게 자라고 있고 나는 그의 강박을 온전하게 또는 절대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다만 ‘음, 그럴 수도 있지’를 읊조리며 최대한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볼 뿐이다. 평생 같이 살아야 하는 사람 아닌가. 여러분도 처절한 생존 싸움에서 당신만의 방법을 찾길 바란다.    


cover image _ Designed by jannoon028 / Freepik


매거진의 이전글 단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