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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Nov 03. 2019

낡은 아파트 셀프 인테리어

거창하지 않은, 때론 바보짓도 섞인, 인테리어 이야기


내가 태어난 해에 지어진 아파트. 낡은 아파트 1층이 우리의 터전이다. 하느님이 도우사 운 좋게 얻은 임대 아파트. 하지만 너무 낡아서 그대로 살 수 없었다. 조금씩 집을 손보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셀프 인테리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처음 집을 배정받았을 땐 두근두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조마조마했다. 이유는 바로 “전에 살던 사람들이 집을 얼마나 깨끗이 썼을까”였다. 입주일 전에 괜히 그 집 앞에 가서 서성거리기도 했다. 겉보기에도 많이 낡아 보였다. 예전에 임대 아파트에서 살아봤던 직원들의 일화를 들어보면 거의 정글에 사는 수준이었다. 가까이 지냈던 옆자리 직원은 베란다에서 거의 타란튤라급 거미를 본 후 다시는 베란다 문을 열지 않았고, 이를 악물고 거액의 대출을 받아 1년 만에 그 집을 탈출했다고 한다.



12월 겨울. 기존 세입자가 이사 나가서 드디어 들어가 본 집은 역시!!!! 많이 망가져 있었다. 화장실 타일 벽엔 못구멍이 왜 그리도 많은지, 타일은 또 왜 그렇게 많이 깨졌는지. 꽃무늬가 화려한 촌스러운 벽지는 여기저기 구멍이 나 있었고, 심지어 베란다 바깥쪽의 창문은 깨져 있었다. 날씨도 추웠고 보일러도 꺼져 있었지만 사방에서 스산한 바람이 이 집으로 불어드는 듯 집안을 둘러볼수록 점점 불길해져만 갔다. 주방 전체엔 찌든 때가 가득했다. 현관문은 제대로 잠기지도 않았다. 바로 며칠 전까지 이런 집에서 아이 셋을 둔 가족이 살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방문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빼곡하게 찍어 둠으로써 자신들이 이 집에 살고 갔다는 존재의 흔적을 확실히 남겨 두었다. 그나마 이 집에서 유일하게 다행인건 주방 하부장과 상부장이 화이트라는 것뿐이었다.

참잘했어요가 잔뜩 찍힌 방문


우리 결혼식은 5월이니, 집을 손볼 시간이 많았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남편은 일 끝나고 저녁마다 신혼집에 들러 페인트칠을 하기 전 부서지고 구멍 난 부분을 퍼티로 메우는 작업을 시작했다. 퍼티 작업이란 페인트를 바르기 전 표면을 다듬는 기초작업이다. 이때부터 전체 인테리어 콘셉트는 내가 잡고 남편은 작업반장 노릇을 하는 역할분담이 일어났다. 내가 기획하고 결정하면 남편은 그 작업이 가능한지를 가늠해보고 실행하는 식이었다.



도배와 장판이 들어오기 전 방문과 방문 턱, 베란다와 각 방의 창틀, 걸레받이를 화이트로 칠하기로 했다.(다행히 천장 몰딩이 없는 집이라 일이 줄었다) 페인트칠을 한다고 생각했을 땐 '그~까이거(!!) 쓱쓱 붓으로 칠하면 그만이지'라며 재밌겠단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우리 작업반장 남편은 나처럼 대충의 퀄리티를 원치 않았다. 칠의 퀄리티를 높이려면 우선 문에 붙은 스티커를 모두 제거하고 퍼티작업을 한 후 표면을 반들반들하게 만들기 위해 샌딩기를 돌린다. 칠을 하기 전 마스킹 테이프를 주변에 둘러서 다른 곳에 페인트가 묻지 않게 밑작업을 한 후 붓 자국이 나지 않고 섬세하게 칠해야 하는, 준비 작업이 많은, 매우 귀찮은 일(!)이었다. 남편은 다년간 프라모델을 채색한 자신의 과거가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 페인트칠 과정을 통해 증명해 보였다.

“이 집이야말로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넓은 범위의 채색이로군!”



하나의 문짝을 칠하기 위한 그 준비과정은 너무 혹독했다. 특히 샌딩. 나무를 매끈하게 만드는 일은 온몸으로 나무 먼지를 뒤집어쓰는 일이었다. 나는 볼멘소리로 말한다.  

“이거 너무 힘들다. 그냥 샌딩 안 하고 페인트 바로 칠하면 안 돼?”

하지만 하얀 작업복을 입은 남편은 땀과 먼지가 덕지덕지 붙은 안경을 추켜올리고는 고개를 저었다. 끝까지 샌딩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이 집을 자신이 완성해야 할 거대한 프라모델이라고 생각해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덕력은 무서운 거다)



페인트칠을 도우러 온 내 친구도 그 고퀄을 인정했다. 스트레스가 많았던 건지 친구는 그냥 페인트칠 같은 아무 생각도 안 하는 단순 작업을 하면서 힐링(?)을 하고 싶어 했고 기꺼이 우리 집으로 초대했다. (단순노동으로 힐링하는 이 친구도 참 재미있는 아이긴 하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 충분한 힐링을 제공하지 못했다. 걸레받이를 칠하기 전 걸레받이에 붙어있는 벽지를 떼어내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만 것이다. 밑작업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더 많은 페인트칠을 제공하지 못해 조금 미안했다. 그러자 그 애는 그냥 아무 기초도 없이 페인트를 칠한 자기 친구 이야기를 해주면서 자기를 위로하는 건지 나를 위로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칭찬을 했다.

"그렇게 대충 칠한 페인트칠은 멀리서 보면 그럴듯한데 가까이서 보면 초보가 한 티가 팍팍 나는데, 이 집 문짝은 정말 잘 칠했다."



집 안의 기본 페인트를 칠하고 도배와 장판까지 마치니 집이 하얘졌다.(감동!!) 여기에 남편이 블랙 앤 화이트의 깔끔한 전기 콘센트와 전등 스위치를 사서 싹 바꿔놓으니 새로 인테리어 한 느낌이 팍팍 났다. 베란다의 깨진 유리는 관리사무소에서 갈아줬다. 문제는 현관문이었다. 처음에는 그 낡아빠진 연두색 문의 안쪽을 페인트칠할 생각만 했는데, 그 집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닫아도 틈이 벌어지는 문은 보안 문제를 야기했다. 남편과 토론 끝에 현관문을 아예 새로 사서 달기로 했다. 현관문을 주문하면 출장기사가 와서 아주 깔끔하게 달아준다. 다른 집 문이랑 완전하게 다른 새 문을 달면, 저 집은 임대아파트에 별 유별을 떤다는 시선도 부담스러웠고, 예상에도 없던 큰 금액을 지출하는 거라 고민했지만 그때 문을 바꾼 건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실 전에 살던 사람들이 창문 틈새에 붙여놓은 문풍지를 인테리어를 하면서 다 떼어내면서  얼마나 집이 추우면 저렇게 온 틈새를 다 막았을까 걱정스러웠다. 하지만 살아보니 집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거의 윗풍을 느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문제의 원인은 현관문이었다. 이 전에 틈이 다 벌어진 문으로 바람이 엄청나게 들어왔던 것이다.  튼튼하고 예쁜 문을 달아 보안 문제도 해결하고 집도 따뜻해졌으니 난방비도 줄이고 이 정도면 본전 뽑았다.



다음 차례는 조명이다. 예쁜 집은 일단 예쁜 조명이 좌우한다는 신조 아래 사무실에서 틈틈이 검색해 본 결과 사람들은 주로 을지로 조명 상가에서 발품을 팔거나 북유럽 조명을 직수입하는 식이었다. 나는.... 둘 다 귀찮았다. 결국 우리는 국내 한 조명회사에서 모든 조명을 인터넷몰에서 한꺼번에 주문했다. 기본 조명은 천정에 딱 달라 붙어서 마치 천정과 한 몸이 된 것 같은 LED조명으로 하고 부엌과 현관은 레일 조명, 포인트 조명을 사용했다.



문제는 우리 집 벽과 천장이 옛날 집이라 단단 콘크리트 벽이라는 데 있었다. 남편이 갖고 있었던 장비는 전동드라이버. 물론 이 장비도 해머 기능이 있어 콘크리트 벽을 뚫을 수 있다고 광고를 하지만, 광고와 현실은 늘 다른 법이니까. 주방에 레일 조명을 달다 곤욕을 치렀다. 한 시간 넘게 구멍은 안 뚫리고,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고, 결국 윗집 할머니가 뛰어 내려오고, 난리가 아니었다. 남편은 그렇게 어리바리하던 시절을 두고두고 후회한다. 지금은 관리사무소에서 공구 대여를 알았으니까. 거기서 울트라 초특급 해머드릴을 빌리면 벽에 구멍 뚫는 일 따윈 후딱 해치울 수 있게 되었으니.



화장실은 다 뜯어고쳐야 했으므로 셀프는 포기. 전문업체에 맡기는 게 상책이다. 처음에 동네 인테리어 업체에 가서 비용을 슬쩍 물어봤는데, 그 사장님 말이 우리가 생각하는 가격에 다 맞춰줄 수 있단다. 즉, 인건비는 어차피 정해져 있으니까 그걸 빼고 타일, 수전 용품, 토일렛 같은 용품들이 중국산 값싼 제품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내 예산은 200만 원 남짓. 결국 여기에 맞춰 공사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넷으로 내 금액에 공사해줄 수 업체를 찾아 지금의 새 화장실을 얻어냈다. 한정된 예산으로 내가 원하는 인테리어는 할 수 없었고 업체랑 손발도 딱딱 맞지 않아서 화장실이 다 완성되고 나서도 한참을 속상해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한정된 예산에 지저분한 화장실에서 벗어나 완전 새 화장실로 갈아탄 건 정말 잘한 일이었다. 다음에 업체랑 일하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주방은 나를 가장 심란하게 하는 곳이었다. 상부장과 천정 사이에 애매하게 공간이 벌어져 있었는데 그 사이에 먼지며 거미줄이 잔뜩 있었다. 저길 어쩌나 고민했는데 남편이 뜻밖의 해결책을 내놨다. 하얀 판때기로 그 사이를 막는 거였다. 아, 안 보이게 가리면 되는구나· 완전 내 스타일인데!!! 주방 벽도 문제였다. 싱크대와 상부장 사이는 타일 위에 시트지를 붙여놨는데 시트지를 뜯어보니 옛날 목욕탕에서 볼법한 연둣빛 타일이 그 촌스러운 자태를 드러냈다. 역시나 지저분하고 깨져있었다. 처음에는 보닥 타일이라고 타일 시트지를 쓰려고 했다. 붙이기도 편하고 언뜻 가격도 싸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전체 면적을 계산해서 여러 장을 주문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비싸진다. 결국 우리는 일반 시트지를 붙여서 가리기로 했다. 그래도 좀 타일 느낌 나는 디자인으로 골랐다. 좀 무모하긴 했지만, 역시 주방의 전체 콘셉트는 "안 보이게 가리는 것!"으로 정했으니까!!



하지만 셀프 인테리어에 성공스토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 부부가 저지른 바보짓을 고백할 때다. 우리 집 주방은 문제가 많은 구조다. 가스레인지 측면이 타일이 아니라 벽지다. 온갖 기름때가 흰 벽지에 다 튀었다. 더러워진 벽지가 보기 싫어서 나는 그 벽을 매끈매끈한 하얀 시트지를 바르기로 결심했다. 시트지는 도배지와 달리 오염물이 잘 닦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대실패. 한쪽 벽을 도배지처럼 위에서부터 쭉 내려서 붙이려는 계획은 처절하게 실패였다.

여러분, 절대 절대 벽지 위에 시트지를 붙이지 마세요!! 시트지는 매끈한 표면에 붙여야 다시 뗐다 붙일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런데 도배지 위라면? 다시 뗐다 붙일 수 없다. 이 기본을 간과한 우리는 우글우글한 주방 벽을 갖게 됐다. 허망한데 웃겼다. 우리는 실패를 인정하고 정신승리로 극복했다.

"일부러 핸디코트를 흉내 낸 듸~자인, 괜찮은데!?"

(핸디코트_ 일명 퍼티라 불리는 보수제를 벽면에 발라 거칠고 자연스러운 느낌을 내는 기법)

천만다행으로 이 우글우글한 시트지는 오래가지 못했다. 윗집 배수관이 터지면서 우리 집 천장에 물이 고여 버리는 바람에 집주인인 공무원 공단에서 주방과 거실 전체를 다시 도배해줬다. 만세!!



이렇게 집안 전체를 하~~얗게 정리한 후 페인트와 가구로 포인트를 주면 셀프 인테리어는 마무리된다. 다음 편에는 그 자잘한 꾸밈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렇게 해서 전체 큰 그림을 그리는데 약 570만 원 정도 비용이 들었다. 이 중 화장실 공사비 220만 원, 약 18평 집 전체 도배장판이 90만 원 들었다.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더 셀프로 할 수 있었지만 그 정도 능력도 안 됐고 이 정도 비용으로 내 고생을 줄인 것에 만족한다.



그리고 인테리어라는 건 한번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살다 보니 바뀐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불편한 점, 개선되어야 할 점을 고민해보고 공간을 어떻게 바꿀지 생각해 보는 것. 이게 집이라는 아늑한 공간을 사랑하는 진정한 태도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우리 집은.... 라니가 오면서 인간 중심주의에서 강아지 중심주의로 점점 바뀌어갔다.



우리가 컴퓨터를 하기 위해 서재방에 들어가 있으면 라니가 싫어했다. 등을 보이고 책상에 앉아 있으면 방문 앞에 와서 '왕왕' 짖어서 사람을 방에서 끌어낸 후 사람과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야 만족해했다. 처음에는 2인용 책상 의자를 찾아봤지만, 식탁 의자가 아닌 책상 의자용으로는, 제작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을 거 같았다. (반려가구를 만드는 능력자 분이 있다면 옆자리에 멍멍이를 놓고 일할 수 있는 2인용 사무용 책상 의자를 제발 상업화해주세요,,,) 등을 보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눈을 마주치며 가까운 공간에 앉아 있어야 한다면.... 그래서 컴퓨터 책상을 거실로 끌어내기로 했다. 그래서 남편이 사랑하는 대형 티브이는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 공간이 좁아지면서 라니의 슬개골 탈구를 방지하기 위해 깔아 둔 놀이방 매트를 방으로 옮기고 거실 전체를 카펫타일로 시공했다. 반려견 친화 인테리어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알게 된 카펫타일을 이참에 깔아봤는데 매트보다 더 깔끔한 것 같다. 그레이톤으로 시크하게 꾸민 침대방은 라니를 위한 커다란 미끄럼틀 계단이 들어왔다.



처음 정성을 들였던 인테리어가 망가졌다고 속상해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영원한 건 없다. 인테리어, 즉 공간 꾸미기에서 제일 중요한 건 그것이 내 삶을 가치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 모두 조금씩 인테리어를 하고 있다. 하다못해 전구가 망가져 갈아 끼우는 것도 인테리어 행위다. 내가 셀프 인테리어를 했다는 사실을 말하면 주변 반응은 대략 두 부류인 거 같다. 먼저 부러워하는 쪽. 이 쪽은 재주도 좋다, 나는 똥손이라 못한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무모하다는 쪽. 이 쪽은 그래도 제대로 고치려면 전문 업체를 써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셀프 인테리어가 거창하고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요새 같은 정보가 넘치는 세상에서 비싼 돈 들여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면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또 전문업체에서 찍어낸 듯한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을 벗어나 자기 공간을 직접 꾸미는 재미를 맛볼 수 있다.



가족과 그 가족이 함께 하는 공간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갖고 할 수 있는 선에서 공간을 조금씩 바꿔보는 것, 물건을 사기 전에도 이 물건을 어디에 놓을지 고민해보고 사는 것, 버릴 수 있는 물건은 과감하게 버리는 것, 정들어 못 버리는 물건은 다시 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보는 것, 이 하나하나가 집안의 화제가 돼서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 이 모든 과정이 가족의 추억이 되는 것, 이게 인테리어의 핵심이다. 그래서 누구나 자기 삶을 디자인하듯 인테리어 디자이너 같은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삶의 질이 한결 나아질 수 있다.


고치기 전
고친 후
글을 쓰다 방금 찍은 현재 거실 상태. 라니 때문에 밖으로 나온 남편의 컴퓨터 책상. 나는 주로 그 앞에  놓인 소파와 식탁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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