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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Jul 22. 2020

부부의 수납

숨기는 수납 vs 내다 놓는 수납


나의 살림 철학은 감추기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있는 집안의 필수 항목은 물건이 어딘가에 들어가 있어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남편은 물건이 눈앞에 보여야 안심하는 사람이다. 특히 음식 같은 경우는 눈앞에 보여야지만 썩히지 않고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 빵이나 주전부리를 아일랜드 식탁 위에 늘어놓는다. 아이러니한 게 나는 감추기만 하면 장땡이라 그 안이 카오스가 되든 말든 늘어놓고, 남편은 서랍장 안을 수납바구니로 딱딱 각 맞쳐 정리해놓고 그 '각'을 보면서 하악거리면서 좋아하는 사람이다. 도대체 우리 둘 중 누가 더 정리정돈을 잘 하는 사람인가.


주로 우리의 싸움터는 우리가 가장 많이 이용하는 거실 겸 주방이고, 최대 접전지는 그 경계에 있는 아일랜드 장이다. 수납장 겸 조리대로 이용하고 있는 이 아일랜드 장에 아무 것도 올려놓지 않았을 때 그 주방 전체가 깔끔하게 완성되는 기분이다. 사실 그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않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 안에 전기밥솥, 전기오븐이 들어있고 그 위에는 전기 주전자, 가습기 같은 것을 올려놓고 살고 있었고 그 많은 전기 제품의 코드를 꽂는 멀티탭이 떡하니 장 위에 나와 있었다. 하지만 냄비밥을 지어먹게 되면서 안 쓰게 된 전기밥솥을 다른 사람에게 주고, 전자렌지 겸 오븐 복합기를 하면서 오래된 오븐을 갖다 버리면서 살림이 다소 정리가 되었다. 결국 아일랜드장에서 매일 쓰는 전기제품은 새로 들어온 커피머신과 가습기 딱 2개였고 그 정도는  멀티탭 없이 바로 꽂아 사용할 수 있어서 아일랜드 장 위로 올라와있던 멀티탭을 치워 버릴 수 있었다. 그 못생긴 것이 치워졌을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드디어 예쁜 아일랜드 장이 빛을 발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남편이 그 위에 빵, 바나나, 과자, 귤 같은 온갖 주전부리를 올려놓는 것까지 막을 수가 없었다. 그런 걸 수납하라고 예쁜 곡선을 가진 빵통을 샀는데 크기가 애매해 수납장으로 들어가버려 무용지물이 되었다. 한번은 내가 그 음식물을 아일랜드 장 안쪽에 넣었다가 결국 곰팡이가 폈다면서 음식만큼은 올려놔달라고 해서 그건 참고 있다. 대신에 한번에 많이 꺼내놓지 않는 방향으로 살고 있지만 볼 때마다 안으로 넣고 싶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아일랜드 장 옆벽에는 수납걸이가 있다. 수납걸이 상단은 작은 물건들을 올려놓는 선반이고 그 아래에는 키친 타월과 두루마리 휴지를 안 보이게 걸을 수 있는 걸개가 있다. 내가 이 물건을 산 유일한 이유는 휴지들을 안 보이게 걸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휴지들의 끄트머리가 길게 빠지게 내버려 둔다. 대롱대롱 길게 매달린 휴지는 입 밖으로 나온 혓바닥처럼 나를 매롱매롱 놀리고 있는 것 같다. 니가 아무리 안 예쁜 건 감추려해도 어쩔 수 없어, 포기해, 이러는 것만 같아 보기 싫어서 볼때마다 위로 돌돌 말아서 감춰넣었다. 그러나 남편이 위생상의 문제를 들면서 키친 타월의 자유를 주장했다.

“내가 보통 키친 타월을 쓸 땐 손이 젖어 있는 상태란 말이야. 키친 타월의 끝을 찾으려고 보이지 않는 휴지를 젖은 손으로 더듬더듬 찾으면 타월이 다 젖게 돼.”

이 주장엔 더 이상 방어할 대답이 없었다. 깔끔하고 예쁜 주방에 집착하는 내 마음이 문제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남편은 내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보기 싫게 길게 내려오는 게 싫은 거라면 탁 한 칸만 내려오게 내놓는 정도로 살아보겠다고 타협안을 내놔 주었다.   


이런 우리 둘의 티격태격은 얼마 전 남편이 비상식량을 사오면서 화룡점정을 이뤘다. 코로나19 전염병이 심각해지면서 이 사태가 장기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남편이 마트에서 햇반, 컵반, 컵라면, 통조림 같은 비상식량을 좀 사왔다. 역시 우리집 안전 담당다운 신속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더 이상 수납 공간이 없는 집에 불필요한 물건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넣을 곳을 찾지 못한 남편은 그것들을 작은 방 5단짜리 선반 위에 잔뜩 쌓아놓아버렸다. 그 방은 남편의 실내 자전거가 들어온 후 다닐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면서 남편에 의해 점점 창고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들어온 여분의 식량들은 이 방이 창고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었다. 평일 저녁 퇴근하고 들어와 그 모양새를 보고 일단 한숨이 나왔다. 벽에 파란 페인트를 바르고 찬넬 선반까지 달아 공들여 놓은 예쁜 방이 이렇게 망가지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날 당장은 어떻게 할 수 없어 일단 참았고 주말을 기다려 일을 도모했다. 일단 방을 창고로 만든 원흉인 실내 자전거를 인터넷 중고사이트에 올려 당일에 팔아치웠다. 온갖 물건을 올려놓아 난장판이 된 책상 위를 정리했다. 5단 서랍장을 열어 버려야 할 물건들을 찾아냈다. 언젠가 어딘가에 꼭 쓸데가 있을지도 모른다며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끌어안고 사는 남편이 서랍장 여기저기에 모아둔 플라스틱 박스들을 버리니 서랍장 한 단이 비었다. 그곳에 그 비상식량들을 넣어버리고...내 마음에 평화를 찾았다.


이렇게만 보면 내가 무척 깔끔함을 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 나는  지저분함쪽에 가까운 사랑이다. 그 살아있는 예가 내 옷장이다. 나쁜 습관 중 하나인데 퇴근하고 들어와 옷을 갈아입으면서 옷장 안에 옷을 그냥 던져 버리고는 잊어 버린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또 허둥지둥 새옷을 입고 나가 저녁이면 옷 위에 또 웃을 던져버려 옷의 무덤을 만들어 버리는 고약한 습관이다. 쌓다 쌓다 더 이상 쌓을 수 없는 주말이 되면 그제야 차곡차곡 옷을 걸거나 빨래통에 넣는다. 나쁜 습관인 걸 알면서도 못 고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옷장 행거가 너무 높아 내 키가 잘 안 닫기도 하고, 내 몸은 너무 피곤하고, 그걸 정리하고 있기에 나는 게으르고, 옷장 문은 닫으면 어쨌든 깔끔하게 보이니 등등. 남편은 내게 옷 좀 걸으라고 잔소리를 해댔지만 결국 고치지 못하는 아내의 습관을 포기하고 그곳을 보지 않기로 한 것 같다.


어쩌면 이 생활 방식의 차이는 우리의 성격의 반영일까. 나는 겉으론 단순하고 멀쩡해보여도 내면이 복잡하고 예민하고 정리되지 않은 카오스 같은 사람. 사람들과 관계에 문제가 생겨도 일단 그 문제를 덮어놓고 좀 기다렸다가 정리하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자기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사람. 문제가 있다면 그 즉시 따져서 해결해야 하니 스마트폰엔 각종 민원앱을 활용해 바로바로 신고하는 사람이다. 또 서랍장 안을 수납 아이템들을 이용해 세상 깔끔하게 정리해놓은 것처럼 사고도 명쾌하고 논리적이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부부라는 이름으로 한 집에서 엉켜 살고 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생활 방식이 만나면서 결국 타협, 수용, 포기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이런 우리가 싸우지 않는 건 서로의 방식만이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상대방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고 때론 활용할 줄도 아는 게 현명하게 사는 것 아닐까. 내가 아일랜드 장에 집착하면서 최대한 적게 내다놓을 궁리를 하고 있을 때 남편은 누가 하라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매주 화장실 청소를 꼼꼼하게 한다. 남편이 집 안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새 비닐봉지로 갈아놓으면 나는 그 비닐봉지가 뚜껑 밖으로 보기 싫게 새어나오지 않게 안으로 잘 말아 넣는다. 내가 현관 신발들을 작은 신발장에 꾸역꾸역 넣고 남은 신발들을 신발장 앞에 일렬로 줄 세울 때, 냉장고 옆면에 붙은 배달업체 홍보물을 떼어 한데모아 집게로 집어 장 속에 넣어버릴 때, 집안 청소를 거의 도맡아 하는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이 들까. 그래도 한 사람이 보이는 곳을 치우고 나머지 사람이 보이지 않는 곳을 치우고, 한 사람이 물건을 끌어안고 살면 나머지 사람이 그 물건을 내다 버리면서, 그러면서 우리 살림살이는 그나마 균형과 모양새를 갖추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아일랜드 장 위에 식빵을 올려놓는 남편을 탓하지 않기도 했다. 그나마 저것 하나만 올려놔서 다행이지 않은가. 남편은 내 옷장을 보고 어쩌면 조용히 한숨 쉬고 옷장 문을 닫아줬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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