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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Jul 24. 2020

적당하게 살림 장만하기

궁상도, 검소도, 낭비도 아닌 즐거운 살림살이

당하게 싼 물건을 사서 어느 정도 쓰다가 버리는 것. 이것이 우리집 살림살이의 기본 원칙이다. 신혼 초 혼수 도 이 원칙에 충실하다 보니 대부분의 물건을 인터넷으로 사게 됐다. 결혼 박람회도 가보고 그곳에서 가전 할인 견적도 받아봤지만 불필요한 옵션이 있기 마련이었고 결국 인터넷 최저가로 싸는 게 가장 싸다는 결론을 내렸다. 엄마는 이런 내가 못내 섭섭했나보다. 엄마 나름 큰딸을 시집보내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마 딸과 함께 그릇을 보러 다니는 것도 그 중 하나였나 보다. 하지만 집에서 택배 상자를 열며 깨진 그릇을 추슬러내고 또 그 물건을 다시 배송 받는 딸내미를 보면서 그 로망은 한 편에 접어 놓아야 했다. “혼자 알아서 척척 잘 준비하네.” 하면서도 "이런 도자기 그릇은 금방 깨져서 안 좋은데...“ 잔소리 조금 보태는 것 이외는 더 개입하지를 못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몸이 축나는 발품보다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받는 손품이 있어서 얼마나 편하냐고 말했지만 어쩌면 같이 그릇 보러 갔으면 투닥투닥하지 않았을까. 엄마는 안 깨지는 게 최고라면서 꽃무늬 코렐그릇을 사라 했을테고, 난 그릇에 들어간 꽃무늬는 싫어하니까.  인터넷 없는 세상은...분명 전쟁터였을 거다.  (코렐 그릇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다만 하얀 그릇 곳곳에 박힌 꽃그림이 싫은 것일 뿐.)


이렇게 우리집 가구를 키운 건 팔할의 인터넷 쇼핑과 이할의 이케아일 것이다. 이케아는 광명에 있는 매장을 직접 방문해야 하고, 그 매장은 주말에 주차하기가 엄청나게 힘들고, 큰 가구를 살 때 직접 가져가지 못한다면 배송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직접 가기 힘들다면 구매대행 업체를 이용하면 되지만 조금 더 비싼 건 사실. 대부분의 가구가 조립식이라 나처럼 드라이버조차 잘 못 돌리는 사람들에게는 심리적 장벽이 존재한다. 이런 단점에서 불구하고 이케아를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가성비 때문이다. 가구를 원하는 대로 구성하기가 좋고 다 조립해 놓고 보면 꽤 예쁘다는 것도 한몫한다. 가구를 조립해 보지 않은 사람도 쉽게 조립할 수 있게 모듈이 만들어져 있고 조립 설명서도 이미지로 직관적으로 설명되어 있다고 하니 간단하고 작은 가구부터 도전해 봐도 좋을 법하다. 나는 순돌아빠 찬스를 활용해 처음부터 집 안의 장이란 장은 모두 이케아를 활용했다. 특히 내가 애정하는 아이템은 이케아 빌리장. 원하는 길이, 높이로 모듈을 구성할 수 있고 그 안에 선반을 몇 개 넣을지, 선반 높이를 어떻게 구성할지, 장에 문을 달지 안 달지도 고를 수 있다. 문도 일반문, 유리문, 불투명문 등 다양하게 고를 수 있고 여러 문을 혼합할 수 있다. 물론 조립식 가구인만큼 엄청나게 견고하진 않다. 드레스룸의 팍스장은 뒷부분이 조금씩 뒤틀리는 증상이 나타났다. 하지만 딱 그만큼의 가격을 하는 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이 집에서 이사가면 그 집에 맞는 다른 장을 사야 할 수도 있으니 딱 이 집에 있는 만큼만 쓰면 된다.

   

작은 집에서 공간을 잘 활용하기 위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들이 필요했다. 때론 신혼살림에 대한 틀을 깨는 발상이 필요했다. 거실이 작게 빠진 옛날 아파트 구조상 전형적인 '주방-거실 인테리어', 그러니까 주방에는 식탁이 있고 거실에는 소파와 티브이가 있는 구성을 하기에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줄자를 들고 집안을 이리저리 재가며 남편과 상의한 끝에 식탁과 소파를 합치기로 했다. 소파 앞에 식탁 테이블을 놓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 작전에 가장 큰 문제는 가구의 표준 사이즈에 있었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식탁의 높이는 780, 소파는 450 내외의 규격 사이즈로 생산된다. 식탁에 비해 너무 낮은 소파를 식탁 의자로 쓸 수 없었다. 그렇다고 려니 집에서 뒹글데가 없다는 게 섭섭했다.  표준사이즈보다 높이가 높은 소파를 찾거나 그 반대로 높이가 낮은 테이블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검색해도 없었다. 높이 60센티 대의 낮은 테이블을 찾긴 했는데 일본에서 직구해야 하는 제품이었고 너무 비쌌다. “어쩌지...” 난감한 마음에 계획을 바꿔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남편이 기가 막힌 해결책을 내놓았다. 테이블 다리를 자르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구나! 그렇게 간단한 것을!! 이제 다리를 자를 마음에 드는 테이블만 찾으면 됐다. 그런데 남편이 한 마디 덧붙였다.

“근데 말야, 새 테이블 다리를 자를 거라 생각하니 좀 아깝네.”

맞는 말이었다. 나는 문득 우리집 근처에 리사이클 센터가 있다는  떠올렸다.

“근처에 리사이클 센터 있던데, 거기 가볼까.”

그리고 운명처럼 우리집 테이블을 만났다. 단돈 5만원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완벽한 사이즈에 은은한 원목톤은 우리집 인테리어와 잘 어울렸다. 테이블 다리도 의외로 쉽게 자를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남편이 톱을 이용해서 잘라 볼까 하다가 또 마침 리사이클 센터 건물에 같이 있던 가구 공방이 있길래 그 곳 목수 아저씨한테 가져가서 혹시 이거 잘라주는데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뭐 이런 건 그냥 잘라 줄게요.’ 이러면서 뚝딱 잘라줬다. 오예! 엄마는 신혼가구를 인터넷으로 사다 사다 이젠 중고로 사는 나를 신기해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우리집 식탁 테이블. 매일 식탁 밑에서 사람이 밥 먹는 걸 서글픈 눈으로 지켜보던 강아지도 함께 소파에 앉아서 겸상할 수 있는, 가격도 착하고 우리집에 딱 어울리는 식탁 테이블이 나에겐 최고다.


아무래도 살림 장만에 가장 큰 돈이 드는 건 가전 제품 구매다. 그래도 가전만큼은 우리나라 가전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대기업 제품 중 하나로 살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가전은 기술력과 AS문제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 안에서 나름 합리성을 찾으면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다. 우선 냉장고. 나는 그 전형적인 양문냉장고를 선택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냉장고 라인을 보기 전까지 내 머릿속에 냉장고는 무조건 양문이었다. 그리고 주워들은 말은 많아서 신혼살림 장만할 때 냉장고는 무조건 큰 게 좋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양문을 선택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슬프게도......우리집 문으로 양문형 냉장고가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래된 아파트는 대문 폭이 낮았고 그 사이로 냉장고가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베란다 창문을 빼고 넣는 방법도 있었는데 우리집 창문으로는 그것도 불가능하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내가 굳이 양문이를 살 필요가 있을까. 그렇게 눈을 뜨니 다른 냉장고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양문이를 사지 않은 건 천만 다행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둘만 살거라 큰 냉장고가 필요 없었고 맞벌이다 보니 집에서 요리할 시간도 많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 사는대로 양문이를 샀으면 후회할 뻔 했다. 지금도 600리터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텅텅 비어서 냉장고에게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게 해서 미안한 말이니 말이다. 당연히 김치 냉장고도 살 필요가 없었다.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남편은 김치를 좋아하지 않고 기껏해야 주말에나 같이 밥을 해 먹는 일상이니 김치 먹을 일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부모님 댁에서 김치통을 몇 번 받아오긴 했는데 다 먹지 못하기 일쑤였다. 가끔 내가 김치가 땡기는 날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마트에서 작은 포장을 사는 게 더 합리적이었다.


에어컨도 벽걸이 에어컨을 설치했다. 사실 이 에어컨은 우리보다는 강아지 라니를 위해 샀다. 기본 체온이 높고 털이 많은 멍멍이들에게 여름은 힘든 계절이다. 특히 라니는 여름마다 지병이 심해지는 바람에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해주기 위해 집안 온도를 항상 26도로 유지하며 여름을 나고 있다. 어쨌든 멍멍이 덕분에 시원한 집에 살게 됐으니 역시 강아지는 여러모로 소중한 존재다. 에어컨을 알아보면서 우리에게는 큰 에어컨이 필요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오래된 18평 아파트 거실 한쪽 모통이에 에어컨을 세워 넣을 자리도 없었고 둘이 사는데 모든 방이 냉방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물론 나도 나중에 새 아파트에 살게 되면 천정에 시스템 에어컨이 되는 집에 살고 싶다. (근데 그때도 냉장고 사이즈는 안 늘릴 거 같긴 하다) 하지만 지금의 에어컨이 우리의 생활공간과 방식에 딱 들어맞기 때문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  


큰돈이 들었지만 정말 잘 샀다고 생각하는 가전은 바로 빨래 건조기다. 건조기가 살림 필수품은 아니라는 생각에 처음부터 들여놓진 않았다. 빨래 담당인 남편은 드레스룸 한 가운데 빨래 건조대를 세워놓고 빨래를 말렸다. 여름 장마철이 되면 그 방에 제습기를 틀어놓고 방문을 닫아 건조시키곤 했다. 하지만 하루종일 제습기를 돌려도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며 남편이 힘들어 했다. 대학생 때 짧게 캐나다에 어학 연수를 하면서 그곳에서 가스 건조기를 써본 나는 건조기가 얼마나 혁명적인 물건인지 알고는 있었다. 다만 베란다에 놓을 공간이 없었고 가스 기사님이 방문해서 이 아파트 구조상 설치할 수 없다고 해 못 사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굳이 가스건조기를 고집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전기건조기를 사면 베란다가 아닌 실내에 설치할 수 있다는 걸 알고(물론 방 안에 세탁기 같이 생긴 게 떡하지 존재한다는 게 가끔 어색하고, 건조기를 돌릴 때마다 물통을 비워야 하는 수고를 해야 한다) 바로 질렀다. 전기 건조기는 살림 노동의 질을 확 올려준다. 날씨와 상관없이 언제든 빨래를 할 수 있는데다 빨래의 전 과정이 하루만에 끝나기 때문에 빨래 노동에 대한 정신적인 피로감이 확 떨어진다. 빨래건조기에 눈을 뜬 남편은 지금 식기 세척기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설거지는 내 담당이고 내가 멍 때리면서 하는 좋아하는 일이라 당분간은 보류다.


결혼 전까지 내가 구매하는 물건의 범위는 나와 내 방에서 벗어나지 않는 작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내 집이라는 공간을 갖게 되면서 사야하는 것의 범위가 엄청나게 확장됐다. 인생 최대의 소비를 하나하나 해치우면서 내 소비 성향을 확실히 알게 됐다. 이른바 ‘적당히주의’ 소비다. 검소한 것도 그렇다고 남용도 아니다. 삶의 질을 높이는 물건을 될 수 있으면 적당히 싸게 사고 적당히 쓰다가 버리는 것이다. 가끔 남편과 이 적당히의  수준이 달라 의견 대립이 있긴 하다. 가령 나는 우리집 티스푼이 딱 4개면 적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은 최소 6~8개의 티스푼을 원했다. 나는 자주 설거지를 해서 돌려 가면서 쓰면 된다고 주장했지만 남편은 자주 설거지를 하지 않고 몰아하기 때문에 안 된다고 반박했다. 뭐 티스푼이 얼마나 한다고 그런 걸로 마트 진열대에서 티격태격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이건 돈 문제가 아닌 가치관 대립이기에 우리집에서 60인치 티브이 논쟁 이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난제다. 우리는 2인 가족이니까 4개면 적당하다는 ‘4’의 덧에 갇힌 남편은 결국 1년을 버티다가 나 몰래 티스푼을 더 사고는 마치 거기 있었던 아이들인냥 몰래 수저통에 꽂아놓았다. 나중에 티스푼이 많아진 걸 발견한 나는 어떻게 나 몰래 살 수 있냐고 나름 발악을 했지만 나보다 남편이 집안일을 더 많이 하니 그 ‘적당히’의 수준을 내 쪽에서 굽히기로 했다. 오죽했으면 몰래 샀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는 내가 틀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글을 쓴 지금도 다시 적정 티스푼 수량에 대해 이야기를 해봤지만 나는 여전히 4개가 적당하다고 주장하고 있고 남편은 8개를 다 쓰고 있다고 맞서고 있다. 2인 가족의 적정 티스푼 난제만큼은 평생 합의하지 못할 거 같다.


이 적당한 살림살이에도 하나하나 이야기가 붙는다. 사실 이 적당한 살림이란 게 우리가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고 이런 게 필요하고 이런 게 필요없고 등등을 이야기하면서 함께 만들어 낸 결과물 아닌가. 작은 티스푼 하나하나에도 이야기가 실리는 이 삶이 참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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