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뒹크로운 주말

집돌이 집순이의 뒹굴뒹굴

by 김나현

쨍한 햇살. 구름 한 점 없는 온전한 하늘빛. 주말에 쉬는 평일 노동자들에게 이보다 설레는 날씨는 없을 것이다. 딱이다. 집에서 뒹굴거리기에.


우리 부부의 주말의 모습은 조금씩 다른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패턴화 되어 있다. 그 패턴의 핵심은 뒹굴거림. 이것은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반복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습성과 변화의 근본적인 힘은 반복이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 예컨대 내 다리 근육은 7년간 약 1시간 거리의 출퇴근으로 딱, 그 정도로만 강화되어 있다는 것만 봐도 반복의 힘은 무서운 것이다. 더 많이 걸으면 근육통이 오고 더 적게 걸으면 군살이 붙는다. 우리는 이런 반복적인 뒹굴거림을 함께 해오면서 집돌이 집순이 캐릭터를 더 견고하게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상은 마치 매주 주말에 교회에 나가는 것과 유사한 우리들만의 ‘가족 의식’이 되었다.


일단 주말 오전에는 무조건 나가야 한다. 강아지 라니는 매일 산책을 해야 하고 특히 주말에는 온 가족이 라니 산책에 동참해야 하는 나름의 ‘산책 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나보다 스케줄 조정이 쉬운 남편이 평일에 주로 라니의 산책 대변인을 맡아 하고 있지만 주말에는 마치 온 가족이 함께 예배를 가듯 다같이 나가는 것이 원칙이다. 남편 말로는 라니가 우리 둘을 좌청룡 우백호로 끼고 산책을 했을 때 어쩐지 더 기세등등하고 더 신나한다고 하는데, 늦잠자려는 나를 침대에서 일으키는 사탕 발린 말 같지만, 어쨌든 라니 보호자라는 의무감과 가족이라는 집단의식, 그리고 습관의 힘으로 침대에서 기어나오게 된다. 라니가 평일보다 얼마나 더 열심히 산책을 수행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1명의 대변인보다 2명의 대변인이 효율적인 업무 분장으로 성스러운 야외 배변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니까.


사실 말은 이렇게 궁시렁궁시렁거리지만 나는 라니랑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라니는 걷는 데는 관심 없다. 오히려 냄새를 맡고 자기가 꽂힌 자리에 한없이 머물면서 뒷발질을 하는 걸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른다. 라니가 자신의 미션을 열심히 하는 동안 주인은 그 자리에서 강아지를 보면서 '잘한다, 잘한다'를 해주며 추임새를 넣어주는 역할을 하지만 그것도 한두번이지 계속 한 자리에 있다보면 심심해서 주위를 관찰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그 동안 못 보던 걸 보게 된다. 어렸을 때 그렇게 쫒아다녔던 개미가 지금도 이렇게 부지런히 기어다니고 있는데 나는 매일 이 길을 걸으면서 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계절이 바뀌면 나무는 부지런히 새싹을 밀어내고 꽃을 피어내고 녹음을 이루고 낙엽을 떨구고 나목이 되어 겨울을 견딘다. 매일 산책하다 보면 이 계절의 순환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특히 라니는 낙엽 쌓인 길을 좋아한다. 걸을 때 샥샥 소리가 나는 게 재미있는지 갑자기 다다다다다 뛴다. 눈 오는 날은 싫어한다. 이 세상 모든 강아지가 눈을 보면 펄펄 뛰면서 좋아한다고 오해하지 말자. 라니는 눈이 오면 자기 스팟에서 쉬야를 할 수가 없어 길 잃은 아이처럼 망연자실한다.


주말의 뒹굴거리는 일상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낮잠이다. 주말 점심 우리는 주로 간단한 면요리를 해먹는다. 스파게티, 메밀국수, 아니면 일요일이니까 짜파게티?! 간단하게 한 끼 해 먹을 수 있어서 좋지만 면요리의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다. 탄수화물 폭발로 인한 필연적 식곤증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무슨 병인 냥 면을 흡입하고 나면 무조건 낮잠을 자야 한다. 처음엔 어떻게든 잠을 쫒아보려고 애를 썼는데 잠은 천하장사도 못 이기는 거고 잠을 못 자게 하는 건 고문 기술이기도 했다는 등등 갖은 이유를 대며 나 스스로를 포기했고 남편을 포기시켰다.

남편은 낮잠을 안 자는 사람이었는데 강아지도 아내도 모두 너무 잘자고 있으니 조용한 오후를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특히 라니는 자면서 ‘푸하푸하, 힝~’ 이런 희한한 콧소리까지 내면서 자는데 이게 진짜 ASMR이다. 더구나 이제 남편 본인도 연세가 있으시니 절대 낮잠 안 자는 사람이라는 청춘시절의 호언장담을 포기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결국 몇 번 같이 자더니 예배 끝나고 자연스레 소모임 가듯 낮잠 의식에 동참하게 됐다.

잘 자고 일어나 함께 저녁을 먹어야 한다. 낮에 음식을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저녁은 주로 시켜 먹는다. 주말마다 항상 맛있는 걸 먹고 싶다고 외치지만 대체 맛있는 게 뭔지 모르겠는 이상한 깨달음을 얻고 배달 메뉴를 보며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한다. 남편은 먹고 싶은 음식이 어차피 정해져 있다. 탕수육, 돈가스, 피자. 반면 나는 매번 뭔가 새로운 게 없나 검색해보는 스타일. 그 사이에서 적당한 교집합과 여집합 사이에서 그러니까 안정과 도전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저녁을 주문한다. 역시나 오늘의 한 끼를 먹는 건, 그러니까 사람이 하루의 일용한 양식을 먹는 건 성스럽고 고된 기도마냥 힘들지만 보람차다. 이렇게 주말 우리들의 의식은 끝나간다. (참고로 저는 교회를 다니지 않습니다.)


저녁 이후에는 각자 하고 싶은 일을 각자 하는데, 오늘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우리 부부는 이 영화를 언급할 때마다 10여 년 전 구리 코스모스 축제에서 함께 봤던 불꽃축제 추억을 소환한다. 그 날 인파를 헤치고 우연히 잡은 자리가 폭죽을 쏟아올린 자리여서 셀 수 없이 많은 폭죽이 바로 눈앞에서 터지는 장관을 봤기 때문이다. 그것은 정말 황홀한 경험이다. 펑펑 터지는 소리가 고막을 먹먹하게 만들면서 순간 이 세상엔 오직 하늘의 폭죽과 나만 존재할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기분이었다. 불꽃이 바로 내 앞에 있는 것만 같아서 그대로 손을 뽑으면 불꽃을 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럴 일은 없지만 불꽃이 내 발밑으로 떨어질 것만 같아 불꽃이 땅으로 떨어질 때마다 괜히 움찔거렸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불꽃쇼는 처음이라며 잔뜩 흥분해 있는데 남편(남자친구)이 정말 특별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 영화가 있다면서 그날 밤 집에 돌아가서 꼭 그 영화를 보라고 했다. 그 영화가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스포일러가 될 거 같으니 영화 내용은 여기까지. 일생에서 본 적 없는 불꽃놀이를 보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이 감독의 영화는 심신미약자인 딱 내 취향이다. 나는 사람을 무참하게 죽이고 썰고 그런 가슴 쫄리는 영화를 못 본다. 하지만 이 감독의 영화는 악인이 없고 코믹하고 모두가 행복한 결말로 끝난다.


영화가 끝나고 남편은 책상에서 만년필로 무언가를 끄적거린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악필이어서 글씨 쓰는 것을 세상에서 제일 싫어했지만 나이가 들어 만년필로 글씨 쓰는 걸 사랑하는 사람이 된, 다소 특이한 취향의 역사를 가진 사람이다. 만년필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사실 유튜브에서 손으로 만년필을 만드는 장인의 영상을 보면서였다. 손을 사용해서 반복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영상이 주는 나른함에 홀리다가 어느새 만년필로 글까지 쓰게 된 것이다. 사각사각, 만년필이 종이를 긁으며 잉크가 종이에 스며든다. 그 시간만큼은 이 세상에 그와 종이와 펜 밖에 없는 것 같은 고요가 공기 속으로 스며든다.


그는 내친 김에 내 만년필을 고쳐준다. 남편이 선물해 줬는데 내가 오랫동안 방치해 잉크가 굳어 막혀버린 것이다. 뜨거운 물에 펜촉을 담가놓으면 굳었던 잉크가 천천히 풀어 헤쳐진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잉크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물속을 퍼져나가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살살 간지럽다. 피어오르는 뭉게구름 같기도 하고, 내 마음을 휘저어 놓고 간 첫사랑의 뜬금없는 고백 같기도 하고……오래 전 읽은 소설 속 물푸레 나뭇잎이 떠오른다.

“이것은 어떤 이름을 가진 나무인가요?

그녀가 묻는다.

“물푸레, 물푸레나무지요.”

“물푸레,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네요.”

“그 이름은 바로 당신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지요?”

“이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 물에 담그면 잉크빛 푸른 물로 변합니다. 그래서 물푸레나무지요. 당신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오면 나는 그대로 푸르른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나의 물푸레나무입니다.”

양귀자 <천년의 사랑> 中

정말 단순한 일상이지만 뭔가 충만한 기분이 드는 주말. 이 저녁의 고요한 평화가 내 마음 속에 들어와 그대로 내 마음의 평화가 된다. 집돌이 집순이 딩크 부부의 뒹굴뒹굴한 하루라서 이 주말 의식에 '뒹크로운 하루'라고 이름 붙여 보았다. 다음 주는 또 장마 때문에 주말에 비가 엄청나게 온단다. 딱이다. 집에서 뒹굴거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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