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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Sep 02. 2020

동굴에서 쓰는 편지


 S,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당신을 이렇게 불러 봅니다. 시간의 결이 켜켜이 쌓여 소원해진 당신과의 거리는 까마득하기만 합니다. 당신을 마주 보고 앉아 있는 것조차 성에 차지 않아 기어코 당신 옆자리에 바짝 붙어 앉으려고 했던 나에게 당신은 따뜻하게 옆자리를 내어주었지요. 당신 손등을 어루만지면서도 언젠가 이 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울 것이라는 막연히 예감하면서 이것이 마지막 인냥 당신 손등을 계속 어루만지곤 했었지요. 지금 이렇게 마음속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던 그리움들을 불러들여 당신 이름을 되뇌는 것은 동굴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입니다.     



 얼마 전 생일을 맞아 강원도로 떠났지요. 여행 이튿날 정선의 장관이라는 어라연을 보기 위해 그리로 향했지만 결국 가지 못했어요. 그곳으로 가는 길이 교통통제로 막혀 있었거든요. 예상치 못한 일정 변경에 투덜거리며 지도를 다시 들여다보며 어디를 갈지 궁리하다가 지도에 고씨동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한 토막이 밀려오더군요.     



 온 가족이 단양의 고수동굴을 갔다가 얼마 안 돼서 영월의 고씨동굴을 보러 갔었지요. 하지만 고씨동굴은 당시에 고수동굴만큼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었고 막 관광지로 개발하려던 차였어요. 고수동굴 내부는 조명 덕에 생각보다 밝았고 입구 앞에서는 요지경이나 어린이용 카메라 같은 관광상품을 파느라 북적북적했지요. 그러니 고씨동굴 앞에 갔을 때 동굴 입구만 덩그러니 있을 때 그 당혹스러움이란. 세련된 동굴 관광지를 보다 그 원시적인 동굴 앞에 서니 한기가 돌았습니다. 굴은 경사도 가파르고 천장이 너무 낮아서 엉금엉금 기어가야만 했고, 조명작업도 덜 되어서 사방이 어두웠어요. 급기야 아버지는 애들한테 너무 위험하다면서 결국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했어요. 그때 동굴은 ‘어둠’으로 각인되어 버렸습니다. 어린 나는 동굴의 어둠이 무서웠고, 어둠 속 돌 끝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소름 끼쳤습니다.


       

 그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 다시 가보고 싶어 졌습니다. 이젠 관광지로 유명해졌으니 예전처럼 어둡지도 않을 것이고, 나는 어른이 되었으니 동굴 안에 있다고 무서움을 느끼거나 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죠. 평일 낮에 동굴은 인적이 드물어 나와 나의 일행뿐이었어요. 안전모를 쓰고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니 어린 시절 기억보다 동굴은 훨씬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철골구조물로 다리를 잘 만들어 놓았고, 조명도 환했죠. 그래도 사람이 접근하기에는 쉽지 않은 거친 동굴인 것은 여전했어요. 간간이 허리를 깊이 숙이고 걸어야 하는 길이 나오기도 하고 천장에 머리를 쿵쿵 부딪치곤 했죠. 간혹 머리 위로 조명에 닿지 않는 곳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마침 나의 일행도 그게 궁금했는지 위쪽을 향해 카메라 플래시를 터트려 보더군요. 하지만 이미 인간의 손을 탄 동굴엔 뭐가 있을 리 만무했죠. 하지만 플래시 빛이 닿지 않는 저 동굴 구멍 사이의 깊은 곳은 마치 한번 빠지면 도저히 발을 빼낼 수 없는 진창 같은 곳일 것 같다는 음산한 기분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더군요.     



 그 동굴은 어찌나 길던지. 꽤 오래 걸어 다리까지 쿡쿡 아팠습니다. 마지막 코스는 계단으로 이루어졌는데 계단은 이어지고 또 이어집니다. 올라가면서 문득 아래를 내려다보니 종전에 위를 쳐다보았을 때처럼 까마득했습니다. 어째서 나는 동굴을 들어왔는데 이렇게 올라가고만 있을까 싶었죠. 동굴이 갖는 전형적인 이미지는 점점 내려가서 지하의 음지를 느끼는 곳이라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나는 점점 올라갑니다. 드디어 ‘종점’이라 쓰인 곳에서 길이 끝나고 코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곳에 멈춰 섰습니다. 내 머리 위로도 까마득하고 저 발 밑 역시 까마득하더군요.      



 어린 시절의 동굴에 대한 기억을 바꿔보고자 갔는데 동굴은 여전히 어둠 그 자체였습니다. 종점이라고 써진 곳에 왔지만 사실 그곳은 어둠 속에 가려진 수십수백 개의 작은 길들이 미로처럼 웅크리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동굴이 안고 있는 어둠의 깊이를 전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순간 내 안의 어둠의 깊이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알 수 없는 어둠 속에 쌓여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내 마음에 결국 나는 굴복하고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가 빚어내는 언어로는 도저히 생명을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비생명성과 내가 맞설 길은 나의 메마른 언어뿐이라는 그 헐벗은 절망.      



 생의 비애와 절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먹먹한 밤이면 나는 끈질기게 수화기 너머로 당신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어둠 속에서 다시, 나지막이 당신을 불러봅니다. 당신은 내 이야기를 가장 침착하게 잘 들어주는 친구였기에. 그래서 당신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다시 기운을 차려보곤 했지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럴 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었을지는 짐작할 수가 없더군요. 사실 나는 그 동굴의 어둠 속에서 얼핏 당신을 보았습니다. 이제 내 안에 어둠 속으로 잠식해버린 당신을. 나는 당신이 그 어둠 속으로 숨어들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지요. 당신과의 기억이 내 안에서 부식되어 가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지요. 그래요, 당신과의 관계의 파탄은 원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었습니다.     



 사랑했던 애인이 나를 배신하고 곧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올린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깊이 절망했었죠. 그 사람의 결혼식 날, 도저히 혼자 있을 수 없어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서울에서 가장 먼 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당신이었기에 도망치듯 P시로 향했죠.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절망적인 얼굴을 한 한 채 버스에서 내린 여자아이를 따뜻하게 맞이해줬습니다.  그날의 일이 인연이 되어 우리는 친구와 연인 사이의 팽팽한 관계 속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당신은 비록 멀리 있었지만 누구보다 가까이 나를 살뜰하게 보살폈지만 옛 애인의 배신에 치를 떨던 나는 누군가의 마음을 굽어볼 여유가 없었죠. 그렇게 오랫동안 당신에게 위로를 받았으면서 정작 나는 당신의 마음은 들여다보지 못했어요. 그렇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당신은 저 멀리 등을 보이고 서 있었습니다.     



 어쩌면… 당신만이 아니죠. 나는 늘 그렇게 내 소중한 사람들을 수수방관했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자기 연민에 사로잡혀 그들에게 일방적인 애정을 강요하기도 했고, 과거에 사로잡혀 그들과의 미래를 진심으로 꿈꿔 보지 않으려 하고, 내 상처에 집착하느라 타인의 마음을 헤아려보지 않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많은 이들이 내 안의 동굴 속 어둠으로 잊혀 갔지요.      



 동굴 밖에 나오니 노을이 지고 있었습니다. 노을이 왜 아름다운지 아느냐고 당신은 물었죠. 나는 빛깔이 예뻐서라고 대답했죠. 당신은 다정하게 말했습니다. 그래, 빛깔이 참 예쁘지. 나는 노을을 보면 저렇게 떠나면서 아름다운 걸 남기는 삶을 살고 싶어. 당신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우리의 인연은 이렇게 끝났으나 당신은 내 마음에 아름다운 노을로 남았습니다. 당신이 남긴 빛깔이 내 마음에 남아 영원한 그리움의 빛깔로 남을 테니, 그러니 당신의 희망 하나는 이룬 셈 아닌가요. 



 저 멀리 메마른 동강이 몸을 굽혀 흐르고 있었습니다. 동굴을 나와서 강을 가로질러 걷다가 다시 뒤돌아 동굴 입구를 보니 그 동굴을 껴안은 산은 의연하게 솟아 있더군요. 어둠을 껴안고 저리 의연한 것을 보니 좀 더 내 절망에 의연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푸른 강물은 겨울의 찬 공기 속에 헐벗은 듯 처연히 흐르지만 계절이 바뀌고 날이 따뜻해지면 좀 더 풍성하고 생기롭게 흐르겠지요. 그때는 그대에게 보다 따뜻한 문장을 전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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