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하셨어요?
“오빠, 근데 나도 갑자기 당신한테 사랑한다는 문자를 받으면 엄청 당황스러울 거 같긴 해.”
“그래?”
“응 너무 뜬금없잖아. 아무 맥락도 없이, 사랑한다, 이런 문자. 무슨 일 있나 걱정부터 될 거 같아.”
“뭐, 그런 거야? 갑자기 버스 사고가 났고, 전복된 차 안에 갇힌 남편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아내에게 보내는 문자, 그런 거?”
“응, 뭐 그런 무서운 상황이 아니더라도. 무슨 나쁜 일 생겼나, 아니면 나 몰래 뭐 사고 쳤나, 왜 이런 식으로 걱정부터 될 것 같지?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제 우린 달달한 신혼이 아닌 거야?”
“아니야, 충분히 일리 있는 생각이야. 나도 갑자기 당신한테 그런 문자 받으면 당황할 수도 있겠어.”
“그렇지? 그러면 말이야, 이제부터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낼 땐 말이야, 꼭 맥락을 써서 보내자. 사랑한다, 그 한마디만 보내면 너무 많은 생략이 있어서 대체 무슨 상황인지 짐작할 수 없어 불안한 거 같으니까 말이야. 가령 <주말에 하루 종일 붙어 있었는데 월요일이라고 떨어져 있으니 왠지 더 보고 싶네 사랑해> 이런 식으로 말이야.”
“......”
“일단 이 사태는 말이야, 사랑한다는 말을 별로 안 하고 사니까 그런 거 아닐까?”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매일 입에 달고 사는 것도 아닌 것 같아. 내 마음의 진지한 무게가 담기지 않잖아.”
“그런가.”
“그런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항상 사랑하는 마음을 품고 사는 게 맞거든. 그러면 매일 표현해야 하는 건가. 사무실 내 옆자리 직원은 아이하고 항상 전화통화할 때마다 매일 똑같은 말을 하거든. 아이가 ‘엄마 사랑해요’ 이러면 엄마도 ‘응, 엄마도 사랑해’라고 말하고 전화를 끊더라고. 그 조그만 아이는 항상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라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거잖아. 항상 사랑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항상 표현하는 것도 맞는 거 같아.”
“그러면 그 말이 너무 식상해지는 거 같지 않아? 오늘 밥 먹었어? 오늘 뭐 했어? 이런 말처럼 평범한 말이 돼버리잖아.”
“맞아. 생각해보니 강아지도 ‘사랑해’라는 말을 결정적인 순간에 아껴서 하더라고.”
“강아지가?”
“응. 천재견이라고 소문난 뭉이라는 얘야. ‘엄마, 까까, 주세요, 산책’ 같은 단어를 녹음해놓은 벨을 눌러서 엄마랑 의사소통을 하거든. 그런데 ‘사랑해’라는 말을 절대 남발하지 않아. 엄마가 아플 때나,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 딱 그 순간을 캐치해서 한다고. 아무 때나 누르면 덜 감동적일 거야. 딱 그 순간에 필요한 말을 하니까 더 감동적인 거지.”
“이만기 말이야, 완전 경상도 남자잖아. 경상도 남자가 ‘사랑한다’, ‘보고 싶다’ 이런 말 하는 건 정말 힘든 일이야. 자라난 환경의 지역 특색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거든.”
“그럼 경상도 남자는 사랑하는 사람한테 뭐라고 말해줘?”
“음.... 굳이 표현을 한다면, 네가 안 싫다, 이 정도?”
“푸하하하. 뭐라고? 사랑하는 사람한테 기껏 한다는 말이 그거라고? 네가 안 싫다??”
“그 말이 뭐 어때서. 정말 좋아하지만 쑥스러운 데 어떻게 대놓고 사랑한다고 말해? 경상도 사람이면 다 공감할걸. 아내를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사 갖고 들어오면서 괜히 낯간지러워서 ‘먹어라, 오다가 주웠다’ 이런다고. ‘당신이 좋아할 거 같아서 사 왔어’ 이런 간질간질한 말은 할 수 없다고!!”
“근데 당신은 경상도 남자지만 안 그렇잖아.”
“그야 서울 살면서 서울물 든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