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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현 Feb 28. 2021

부부가 둘 다 글을 쓰면 생기는 일

부부 작가의 세계

             

어떻게 하면 할머니를 살해했지만 자연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까? 아니면 자연스러운 사고사처럼 보여야 해.
역시 조금씩 독을 먹이는 고전적인 방법이 있지. 그렇지만 독은 부검하면 너무 쉽게 드러나니까 안 될 거 같아. 그렇지? 그렇다면 독버섯은 어때? 어떤 독버섯은 식용버섯이랑 너무 똑같이 생겨서 전문가도 구별하기 힘들다고 하던데. 할머니를 위해 정성스레 버섯을 채취해서 요리를 해줬지만 독버섯인지는 몰랐던 거지. 범인이 고의적으로 독버섯을 구하는 걸 끝끝내 밝혀내지 못한다면 괜찮을 거 같은데......
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아니면 알레르기 있는 음식을 몰래 섞는 것도 방법이지. 옛날 영화이긴 한데, ‘마이걸’이란 영화 알아?
아, 그거! 남자 주인공이 벌 알레르기 때문에 기도 폐색이 와서 죽지.
응, 그거 어린 나이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알아? 알레르기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고 나서 나도 혹시 내가 모르는 알레르기가 있지 않을까 무서웠거든.
있지, 계속 무언가를 먹여서 죽이는 방법만 나오는데...... 좀 더 그럴싸한 방법 없을까?
흠...     


우리 부부는 며칠 동안 한 할머니를 살해 흔적 없이 죽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골몰했다. 남편이 쓰고 있는 소설 때문이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구체적인 스토리를 밝히기 곤란하지만, 어쨌든 누군가가 죽고 그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다가 거대한 음모를 밝혀내는 이야기다. 결국 누군가가 죽으면서 시작해야 하는데, 그 죽음이 뻔해서는 안 된다. 거대한 음모 속에 행해진 죽음이기에 자연사처럼 보이는 타살이어야 한다. 나는 왕년의 미국 드라마 csi과학수사대 시리즈를 섭렵했지만,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고작 생각해낸 게 독버섯이라니. 결국 자료조사를 더 해야 할 거 같다. 남편은 미스터리 작가들을 위한 법의학 책을 구매했다.      


그렇다. 우리는 나름 작가부부다. 나름이라고 붙인 이유는 남편은 작년에 에세이집 한 권을 냈고 나는 올해 책이 나올, 새끼 작가의 부끄러운 마음 때문이다. 사실 홀로 글 쓰는 일은 꽤 외롭다. 어떤 날은 워드프로세서의 깜박이는 커서를 보면 막막해서 도망가고 싶다. 그래도 마음을 잡고 꾸역꾸역 쓰다가 방금 쓴 글의 전개가 마음에 들지 않는데 별다른 대안이 없는 거 같아 애먼 머리카락만 쥐어 뜨는 시간이 더 많다. 이런 막연하고 더딘 작업 과정에서, 귀에 끼고 있던 이어폰을 빼고, ‘오빠!’라고 부르면 바로 대화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내 생각 속에만 빠져 있다가 남편과 대화를 하면 내가 쓰고 싶은 말이 뭔지 좀 더 명료하게 설명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실마리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서로의 첫 번째 독자가 된다. 이건 엄청나게 영광스러운 일이라는 뜻이 절대 아니다. 대부분의 초고는 ‘그지’ 같기 때문에 이 첫 번째 독자는 신랄한 비평가가 될 수밖에 없다. 책은 아니지만 나는 얼마 전부터 영상물을 기획하고 원고를 쓰고 촬영까지 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영상을 보여주면서 이렇게 시작했다.

자, 이제부터 싸우자!!  

내가 싸우자고 판을 깐 건, 이미 그가 신랄한 비판을 할 것이고, 나는 엄청 빈정 상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냉정하게 말한다. 나의 피땀눈물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 영상은 일단 너무 길어. 10분 내외로 잘라서 1,2부로 만들어야 해
중간에 강의식으로 넘어가는 부분은 지금 영상에선 뜬금없는 전개야
간간히 음질 바뀌는 건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 없을 거 같아     

아아, 역시 슬슬 기분이 나쁘기 시작한다. 내 가련하고 무고한 창작물을 위해 기를 쓰고 변호한다.     

오디오 음질은 편집으로 어떻게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중간에 그 부분은 실전 과정이기 때문에 맛보기라도 꼭 보여줘야 할 거 같은데     


알고 있다. 이미 내가 질 싸움인 걸. 공들여 쓴 원고가 무참하게 까이고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화가 나다가도, 그래도 내 글을 누가 이렇게 정성들여 읽고 지적해줄까 싶어 생각을 고쳐먹고 다음날 다시 읽어보면 남편 말이 다 맞는 말이다. 안 고칠 수가 없다.      


하긴, 내 남편의 비판은 내가 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그의 글의 신랄한 에디터 역할을 자처한다. 보통 에디터들은 작가의 개성이나 자존심을 건드릴까 봐 적극적으로 의사를 밝히지 못한다고 하는데, 나는 내 글은 못 고치는 주제에 남편 글엔 엄청 참견한다. 이런 건 군더더기니 과감하게 지워야 한다, 이 부분은 구성을 서술을 대화로 바꿔서 더 생동감 있게 묘사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런 잔소리는 기본. 남편이 못 고치는 거 같으면 답답해서 내가 막 고쳐서 보여주기도 한다. 그에 비하면 남편은 소심한 편이다. 논란이 될 부분을 잡아주거나, 내가 쓰는 이상한 언어습관을 고쳐주는 정도다. 가령 ‘그가 갑자기 이별 선고를 했다’를 ‘이별 통보’로 바꿔주는 식이다. 때론 서로에게 영감을 주기도 한다. 남편의 에세이집도,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의 아이디어도 우리끼리 시답잖은 대화를 시작하다가 번뜩 떠올라서 시작하게 된 경우다. 이런 식으로 나는 그의 경험, 지식, 능력으로도 쓸 수 있는 에세이 단행본 소재를 벌써 세 권이나 생각해놨는데, 남편이 요새 소설 쓴다고 미루고 있어서 약간 애가 탄다.      


부부는 닮는다지만 작가로서 우리는 전혀 닮지 않았다. 나에게 글 쓰는 일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이지만 남편은 노트에 만년필로 쓰는 일이다. 나는 노트에 쓴 후 다시 워드로 옮기면서 초고를 고쳐 쓰는 남편의 작업 방식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고, 남편은 종이를 긁는 만년필의 필기감을 모르는 나를 안타까워한다. 뭐 그렇지만 자신의 작업 방식을 서로에게 강요하진 않는다. 남편은 그 아날로그적 방식으로 단행본 한 권 분량을 써냈으니 그에겐 그 방법이 맞는 것이리라.      


글쓰기 도구가 다른 건 글쓰기 스타일이 달라서일까. 나는 순간순간 아이디어를 잘 떠올리고 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즉흥적으로 쓰는 반면에 남편은 쓰고 싶은 내용이 있으면 고증 오류에 몸서리치며 자료조사를 치밀하게 하고 쓴다. 최근 그가 짧게 썼다면서 보여준 글은 내 작가적 질투심을 유발했다. 대장간 집 아들이 그 일을 동경하며 처음엔 허드렛일을 하다가 드디어 철을 뽑아내는 일을 하게 되는 장면, 보통 제련이라고 부르는 작업을 정말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보통 대장장이 모습이라면 거의 다 만들어진 제품을 두들기는 모습부터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 재료가 되는 철을 광석에서 추출하는 것부터 생각했다는 게 새로웠다. 그래서 그가 처음 쓰는 장편소설을 잘 해낼 것 같은 막연한 믿음이 생겼다. 다시 말해, 나처럼 도입만 써버리고 끝내 버리지는 않겠구나,라는 믿음. 직장 생활하느라 없는 시간을 쪼개서 글을 쓰는 나는 남편처럼 호흡이 긴 장편소설을 쓸 여력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만...... 내심 질투를 느낀다. 나에겐 저런 진득함과 견고함이 없단 말이지. 으흑, 왠지 분하다. 글쓰기는 내가 먼저 시작했는데, 불과 몇 년 전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남편이 나보다 잘 쓰다니! 책도 나보다 먼저 내고 말이야!! 이러고 있을 수 없다. 나도 분발해야 해, 이런 오기가 생겨버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이 말한다.

내가 소설집이 나오면 당신도 공저에 올려줄게. 이렇게 같이 스토리를 구상해주면 이쯤 되면 공저 아니겠어?
됐어.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그냥 당신하고 수다 떨어준 건데. (나는 내 책을 낼 거라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상상할 수밖에 없다. 언젠가 공저로 나올 책 말이다. 서로 글 쓰는 색깔이 달라서 같이 쓰진 못할 거 같고, 챕터를 나눠서 쓰는 정도는 가능할 거 같다. 그 책은 어떤 책이 될까. 오글거리는 멘트를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는 철면피를 가진 나의 문장과 그런 느끼한 문장을 절대 쓰지 못하겠다는 남편의 문장이 만나면 말이다. 만듦새가 일정하지 않은 어설픈 책이 될까, 두 작가의 다양한 개성이 잘 어우러진 책이 될까. 어쨌든 그전까진 자신의 책에 서로의 이름을 올리면서 감사멘트를 날리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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