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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Feb 25. 2018

담백한 맛이 일품인, 리틀포레스트

달지만 달지 않고, 짜지만 짜지 않은.

 *브런치 무비패스를 통해 관람했습니다.


어떤 맛을 좋아하세요?


 단 것을 먹으면 짠 것을 먹고 싶고, 짠 것을 먹으면 단 것을 먹고 싶어진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성의 단짠단짠', '단짠단짠은 진리지'라고 말하며 '단짠단짠'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고, 여전히 '단짠단짠'을 주요 매력 포인트로 내세우며 출시되는 신메뉴들도 많다. 그만큼 단맛과 짠맛이 사랑받는다는 증거다. 사랑 받는 맛이 어찌 단맛, 짠맛뿐이랴. 엽기떡볶이, 불닭볶음면처럼 극강의 매운맛을 자랑하는 음식들도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야식 메뉴 중 하나다. 수없는 '단짠단짠' 신메뉴들과 엽기적일 정도로 맵고, 불을 뿜을 정도로 매운 음식들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미 일정 수준 이상의 강도에 길들여져 버렸고, 자꾸만 더 강렬하고 자극적인 맛을 찾게 되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자극적인 맛에 지친 사람들을 공략하는, 또다른 맛이 있다. 바로 담백한 맛이다.


 

이 사진 속 자극적인 요소를 찾으시오 (3점)

 

 별스럽지 않은, 어떠한 자극도 없는 담백한 사진들을 담은 '무자극 컨텐츠 연구소' 페이지가 5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페이지로 성장했듯이, 지금 우리가 가장 원했던 맛은 어쩌면 단맛도, 짠맛도, 매운맛도 아닌, 담백한 맛일지도 모른다. 맛이 있긴 하지만 항상 맛이 똑같은 즉석 조리 식품에 질렸다면, 재료 그대로의 맛이 아닌 양념 가득한 맛으로 먹는 음식에 질렸다면, 요리할 시간도 없고 요리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아서 대충 끼니를 때우는 데에 질렸다면, 아마 당신은 담백한 맛이 그리울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영화 '리틀포레스트'는 그 담백한 맛을 가장 잘 살려낸 영화다. 실제로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 날 것 같은 음식들의 향연이 펼쳐지며, 시간 제한 요리 대결처럼 그 과정을 긴박하게 전달하는 게 아니라 담백한 맛을 담백하게 그려내기 때문이다. 조미료를 치지 않아도 아름다운 자연, 과장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운 배우들이 만나 완성된 사랑스러운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소개한다.



삼시세끼 영화 ver.

태리의 요리 교실 촬영 중인 듯..


 자연, 동물, 맛있는 음식,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우정. 이 네 가지 요소가 예능 <삼시세끼>가 사랑 받을 수 있는 이유가 아니었을까. 리틀포레스트는 그 모든 요소를 담고 있는 영화다. 삼시세끼가 자급자족 라이프를 지향했듯이, 리틀포레스트의 인물들 역시 직접 키운 농작물들로 한끼 한끼를 채워 간다. 텃밭에서 양파 뽑고, 길 가다가 토마토 따 먹고, 과수원에서 주운 사과로 잼 만들고. 있는 그대로의 싱싱한 농작물을 키우고, 수확하고, 요리하는 과정을 계절별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시사철 같은 메뉴를 준비하는 도시의 식당과는 달리, 메뉴만 봐도 계절이 느껴지는, 사계절의 자연을 활용한 '리틀포레스트'의 요리는 신선하게 다가온다. 극 중 혜원은 어떤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는지로 계절의 깊이를 느낀다고 말할 정도니, 뭐 말 다했지. 살면서 한 번도 그런 기준으로 계절을 실감한 적이 없었는데, 싶어 조금은 씁쓸한 감정이 들었던 내레이션이기도 했다.



오구야 오구오구

 

 뿐만 아니라 최고의 씬스틸러인 강아지 '오구'가 등장하고, 오구가 등장하는 장면마다 웃음이 터진다. 오구오구, 할 수밖에 없는 귀여움의 극치를 보여주는 오구, 아름다운 자연, 다채로운 요리, 김태리x류준열x진기주 세 배우의 케미에 아름다운 영상미가 더해지니, TV로만 접했던 삼시세끼보다는 한 수 위의 힐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미 현실 속에서 수많은 갈등과 문제에 시달리고 있는데, 굳이 영화 속에서도 갈등에 시달려야 할 이유가 있나. 물론 리틀포레스트 안에서도 이런저런 갈등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농촌에서의 사계절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된다. 서울에서 도망친다 해서 영화처럼 정갈한 농촌 라이프가 펼쳐질 리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풍경을 바라보는 103분만큼은 현실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아갈 곳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래도 편의점에는 맛있는 게 너무 많아


 혜원은 시험도, 연애도 뭐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서 도망치듯 고향으로 내려온다. 똑같은 맛, 똑같은양, 도통 계절을 알 수 없는 반찬들로 가득찬 편의점 도시락. 그마저도 유통기한이 지나 버린 도시락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때우던 혜원은 왜 돌아왔냐는 물음에 '배고파서'라고 답한다. 고향의 흙, 바람, 햇볕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는 혜원은 도시 생활에 지치고 힘들 때, 도무지 인생의 답을 찾지 못하겠고 막막한 마음만 들 때, 고향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내게 익숙한 환경, 익숙한 사람들, 익숙한 기억이 남아 있는 곳. 혜원에게는 돌아갈 곳이 남아 있었고, 돌아갈 곳이 있었기에 다시금 삶에 대한 의지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영화는, 자꾸만 돌아갈 곳, 고향에 대해 생각하게끔 했다. 도시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나에게, 도시의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을 때 돌아갈 곳은 어디일까. 도시 역시 리틀 포레스트의 기능을 할 수 있을까. 흔히들 고향이라고 하면 시골의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도시를 고향으로 두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을 텐데 도시 Ver. 리틀 포레스트는 불가능한 걸까. 과연 고향, 돌아갈 곳은 어떤 존재를 의미하는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환하게 웃는 게 너무너무 예쁘다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 돌아갈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혜원에게 고향이 '리틀포레스트'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오랜 친구 재하와 은숙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고향의 아름다운 자연이 그대로였다 할지라도 그곳에 재하와 은숙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혜원은 며칠 지나지 않아 서울로 돌아갔을 것이다. 과거의 기억을 공유하며 깔깔거리고, 어릴 적에나 쳤던 유치한 장난을 쳐도 마냥 즐거울 수 있는 오래된 친구. 그 친구들이 존재했기에 고향에서 보냈던 사계절이 공허하지 않게 채워질 수 있었다.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들이 달라졌지만 긴 시간 동안 서로를 알았고, 그 시간만큼의 기억을 공유하는 친구의 존재는 여전히 눈부셨다.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싱그러운 우정은 더욱 반짝였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관객들도 절로 흐뭇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친구뿐만 아니라, 가족의 의미까지 실감하면서 혜원은 완전한 '리틀 포레스트'를 찾게 된다.



내 삶이 끼어들 여지가 많았던 영화


사랑하는 사람들과 적당히 마시고, 적당히 취하는 밤이란


 리틀포레스트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내 삶이 끼어들 여지가 많았던 영화였기 때문이다. 인물에게 완전히 몰입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끔 하는 영화도 좋아하지만, '나도 저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이런 기분이었고 이렇게 행동했었는데, 지금의 나라면 그렇게는 안 하겠지?' 보는 내내 자꾸만 내 삶이 끼어드는 영화도 좋아한다. 리틀 포레스트가 딱 그런 영화였다. 고시에 떨어지고, 뭐든 잘못되면 신입사원 탓이고, '일도 잘해야 해 회식 때는 또 잘 놀아야 해' 갖춰야 할 것도 너무 많은, 청년 세대의 현실을 혜원, 재하, 은숙을 통해 그려낸다. 영화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만큼, 그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면서도 나의 이야기를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누구든 인생에 대한 질문을 품고 살아갈 테니까, 그 질문을 마주 보기가 두려워 모른 척하고 싶지만 마냥 모른 척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만의 '리틀 포레스트'의 존재가 절실할 테니까. 영화가 끝나고 나오는 길, 나만의 '리틀 포레스트'는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떠오르는 수많은 장소들과 얼굴들에 조금은 고마워졌고, 그 존재들을 찾게 되어서 너무나 다행이야, 라고 되뇌였다. 휴식과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담백한 맛이 그리운 모든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영화다.


+ 마지막 엔딩 크레딧에 '<리틀 포레스트> 제작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과 모든 동식물에 감사합니다'를 보고, 동식물에게도 감사 인사를 전하는 영화는 처음인 것 같아 마음이 찡했다. 리포레의 따뜻함과 세심함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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