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 시즌1을 끝냈습니다
이번 추석은 키미와 함께
기나긴 추석 연휴의 시작에, 무엇을 봐야 만족스러울까 심히 고민했다. 무엇을 볼까 오래 고민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가볍게 볼 수 있는 콘텐츠가 보고 싶어서 키미를 선택했다. 어디에선가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를 추천하는 영상을 봤던 것 같아서. 별생각 없이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이름이 긴데 뭐라고 줄여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음)를 보기 시작했고, 별생각 없이 빠져 들었다. 그래서 별생각 없이 키미를 영업해 보려고 한다. 키미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법한, 별 것 없는 3가지 이유들로.
25분만 투자하세요
개인적으로 드라마를 본방 사수하기보다는 몰아서 한꺼번에 보는 것을 선호하지만, 아무리 꽂힌 드라마라 해도 한 자리에서 한 시즌을 끝내지 못하는 편이다. 누워서 편안한 자세로 보다 보면 졸리기도 하고, 중간에 핸드폰도 하고. 낮잠 자고 카톡하고 페북하다 보면 어느새 드라마는 뒷전이 되어 버리고, 다음에 봐야겠다 하고 노트북을 덮게 된다. 그래서 한 시즌을 끝내는 게 재미보다는 의무로 느껴질 때도 많다. 엔딩이 궁금하긴 한데, 앞으로 엔딩까지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너무 길다. 휴식을 위해 보는 건데, 휴식이 아니라 오히려 에너지 소비로 느껴질 때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리뷰로 엔딩을 확인하는 건 뭔가 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일단 시작했는데 끝장을 봐야지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달릴 때도 많다. 뭐 과정이 어찌 되었든, 엔딩까지 보고 나면 뭔가를 달성했다는 뿌듯한 마음과 엔딩이 주는 여운이 결합되어 '이 드라마 참 괜찮았지' 하는 식으로 미화되는 편이다.
그렇지만 키미 시즌1을 정주행 하면서는 단 한 번도 그런 감정을 느낀 적이 없었다. 이틀 만에 시즌1개를 끝내 버렸다. 하루 밤새워서 시즌 1개 끝내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는 이틀이 최단 기록에 가깝기에 놀라운 일이었다. 그만큼 키미가 재미있었다는 말이냐, 하면 사실 그건 아니다. 키미의 러닝 타임이 짧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통 코미디 장르가 러닝 타임이 짧은 것처럼, 키미도 짧다. 앞뒤의 오프닝이랑 엔딩을 제외하고 나면, 20분 정도에 불과한 정도다. 한 편이 짧다 보니, 지루하다는 느낌 없이 한 편이 훅훅 지나간다. 아무 생각 없이 다음 화 재생 버튼을 누르다 보면, 13화로 구성되어 있는 한 시즌을 끝내는 것도 금방이다. 다른 할 일이 생겨서 그만 봐야겠다 싶을 때에도, '이번 화까지만 보고 해야겠다'가 가능한 부담 없는 길이였다. 영화관에서처럼 각 잡고 영상을 볼 때가 아닌 이상에, 한 시간 이상 집중해서 영상을 보는 게 어려운 사람에게 키미의 짧은 러닝 타임은 굉장한 매력 포인트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콘텐츠를 쉽게 추천해 주지 못하는 편인데, 키미를 비교적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 ~ 25분 정도만 투자해서 1화 보고, 안 맞으면 보지 마. 보고 재밌으면 빨리 정주행 해서, 나랑 같이 키미 짤 써 줘.... 이런 느낌이랄까.
혹시 구해줘 보셨어요?
러닝 타임이 짧은 다른 드라마들도 많았는데, 굳이 키미를 선택한 이유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 의해 15년간 벙커에 감금되었다가 구출된 주인공'이라는 줄거리 소개가 너무 매력적이어서였다. 최근에 사이비 종교를 소재로 한 '구해줘'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그 드라마와는 정반대의 분위기인 코미디라니. 이 드라마에서는 사이비 종교를 어떻게 그려내고 있을까가 궁금했던 게 컸던 것 같다. 사실 그 벙커 생활을 주로 하는 게 아니라, 구출 이후의 뉴욕 생활기를 그려낸 드라마이기 때문에 대충 어떻게 코믹 요소를 넣을지가 예상 가기는 했지만. 그래도 사이비 종교라는 비교적 낯선 설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져서, (사실 오래 고민하는 게 귀찮아서 그냥 궁금해! 이 정도의 감정으로 선택한 것이긴 함) 키미를 선택했다.
내가 예상했던 전개는 처음에 간략하게 지하 벙커 시절을 보여주고, 구출 과정을 보여주고 나서 그 이후로 본격적인 키미의 좌충우돌 뉴욕 라이프가 펼쳐지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키미 슈미트는 구출 이후, 느닷없이 키미가 뉴욕에서 살겠다고 말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키미는 뉴욕 생활을 하다가 난관에 봉착할 때, 지하 벙커 생활에서 느닷없는 영감을 받아서 자기만의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곤 하는데, 그렇게 그려지는 지하 벙커 생활은 굉장히 코믹하다. '사이비 교주에게 갑작스럽게 납치를 당해서 세상의 종말이 왔다고 믿으며, 15년간 지하 벙커에 감금되었다'라는 설정 자체는 굉장히 기괴하고 끔찍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두더지 여인들 (지하 벙커에 감금되었다가 구출된 4명의 여인들을 이르는 말)'이라는 것을 밝히면 모두의 동정을 받고, 그런 동정을 받기 싫어서 키미가 두더지 여인임을 밝히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도 충분히 합리적인 설정이다.
그렇지만 키미의 회상 속에서 그려지는 벙커 생활이 너무나 코믹해서, 키미라는 인물 자체를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사이비 교주에 의한 15년 감금'이라는 설정이 '인생의 절반을 그렇게 보냈다니, 불쌍한 키미...' 이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게 아니라, 키미가 철 지난 유행어를 쓰고 신문물을 모르는 것을 합리화하는 수단 정도로 쓰이는 정도랄까. '세상의 종말이 왔다면서 이 쥐는 도대체 뭐야?'라고 말하며 쥐를 한 손에 들고 교주에게 따박따박 따지는 키미를 지켜보다 보면, 그렇게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키미를 제외한 나머지 두더지 여인들 또한 매력적인 캐릭터들이었다. 솔직히 두더지 여인들이라는 설정이 주어졌을 때, 가장 보편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다른 말로 하면 가장 진부한 캐릭터가 키미일지도 모른다. 15년간 감금되어 살았기에 세상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지만, 새로운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접 겪어나가겠다. 나만의 방식으로 개척하며 살아가겠다. 그런 포부를 갖고 뉴욕에서 살아가기로 선택했지만, 막상 살아보니 만사가 어설프고 실수투성이인 그런 캐릭터. 키미를 제외한 다른 두더지 여인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기로 선택한다. 그렇게 당하고도 여전히 교주를 찬양하고, 그 이후에는 또 다른 사이비 종교에 빠져 살아가는 그레첸이나, 오히려 두더지 여인임을 활용하여 어딜 가든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는 신디도 있고. 글로 적어 놓으니 이 캐릭터들도 다소 진부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이 드라마에서는 이 모든 인물들이 생생하게 자신만의 빛을 낸다. 개인적으로는 이 두더지 여인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특히나 재밌었던 것 같기도 하고.
Feelin' so energetic
(워너원의 에너제틱은 키미를 위한 노래.. )
내가 접했던 인물들 중에서 키미만큼 에너제틱한 인물도 없을 거다. 그 에너지가 과하다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 사랑스럽다고 느껴진 캐릭터도 없을 거고. 별생각 없이 키미를 보기 시작했다고 했는데, 키미는 그럴 때 딱 보기 좋은 드라마다. 별 생각도 없고, 별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이미 방전되어 버렸고 너덜너덜해진 기분일 때. 그럴 때 키미를 보면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나도 키미처럼 에너제틱하고 긍정적으로 인생을 살아야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드는 건 아니었다. 굳이 나에게 어떤 인생을 살아야겠다 다짐하게끔 만드는 드라마가 아니어서 좋았다. 굳이 휴식을 취하는 시간마저 내 인생을 어떻게 꾸려 나가야지, 저 인물에게서는 이런 본받을 점이 있어,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으니까.
그냥 키미는 키미고, 나는 나였다. 키미는 그냥 보는 그 자체로 사랑스럽고, 웃게 만드는 힘을 가진 캐릭터였고, 그런 키미를 보면서 웃으면 그게 끝이었다. 키미를 보면서 웃고 나면, 그 웃음이 공허한 웃음으로 남는 게 아니라 여운처럼 맴도는 것 같아 더 좋았던 것뿐이지. 티저 영상에서 '세상을 온통 키미화시키는 컬러풀한 그녀'라고 홍보하던데, 맞는 말인 것 같다. 키미는 마음을 노란빛으로 물들였고, 그 노란빛이 점차 희미해지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지속되어서 조금은 생기를 되찾을 수 있는 기분이었다.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는 건 아니지만, 아무 생각 없이 보다 보면 조금은 노란빛으로 나를 물들이는. 나에게 키미는 그런 드라마였다. 그런 드라마여서 좋았고.
키미에서는 여러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각각의 인물들이 웃음을 주는 방식은 정해져 있다. 이 드라마 내에서 각각의 인물이 맡는 역할이 너무나 분명하고, 그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실 속을 알 수 없거나, 이랬다 저랬다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런 인물들로는 코미디를 만들 수 없으니까. 키미를 제외하고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인물은 릴리안이었다.
비중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 릴리안을 왜 매력적으로 느꼈는지 생각해 봤는데, 릴리안의 매력을 너무나 잘 분석해 놓은 듯. 내가 생각했던 릴리안이 매력적이었던 이유는 '의외로' 그녀가 경청하는 인물이었다는 점, 그리고 진심으로 친구를 위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는 점이었다. 필요할 때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이었고, 진심으로 같은 감정을 공유해 주는 사람이었고. 그리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으면서도, 적절하게 치고 빠질 줄을 아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보면 릴리안이 굉장히 진지하고 정 많은 인물처럼 느껴지는데, 주목해야 할 점은 '의외로' 그렇다는 것이다. 처음에 릴리안이 등장했을 때는 키미를 사사건건 훼방 놓는 괴짜 집주인 정도인 줄 알았는데. 특히나 타이투스와 릴리안의 조합이 너무나 좋았다. 개인적으로 타이투스는 너무 과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다지 매력적으로 느끼지 못한 캐릭터이긴 했지만. (그 지나침이 타이투스만의 색깔인 건 알지만, 뭐 어쨌든 간에 마음이 가는 타입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타이투스를 응원해 주고 함께해 주는 릴리안이 너무나 좋아서, 툴툴거리고 놀리다가도 타이투스를 도와주는 릴리안이 좋아서. 그냥 타이투스와 릴리안이 함께 하는 모든 장면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음이 나왔다.
어설프면 뭐 어때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비정상을 희화화하는 데에서 웃음을 얻는 코미디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한 웃음 코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공유되었고, 그러한 코미디를 보고 웃으면서 '이건 정상이고 저건 비정상이야'에 대한 인식도, '저건 비정상이니까 저걸 저렇게 비하하고, 웃음거리로 삼아도 되겠구나'하는 인식도 자연스럽게 공유되지 않았을까. 이제야 그 웃음들이 불편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지만, 여전히 '이 정도는 웃고 넘겨도 되는 것 아니냐'라는 말 아래에서 불편한 웃음들이 합리화되고 있지 않나 싶다.
이렇게 비정상과 정상을 가르는 게 너무나 익숙한 사회에서, 두더지 여인인 키미는 굳이 따지자면 비정상인 쪽에 속할 것이다. 그렇지만 키미를 보면서 불편하지 않았던 건, 키미를 비정상으로 분류한 게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 정도로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키미가 자신이 두더지 여인임을 밝혔을 때나, 혹은 키미가 보통의 뉴욕 사람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때 키미의 주변 인물들은 키미를 비정상으로 간주하고, 그녀가 정상이 될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게 키미라고 받아들였을 뿐이다. 그런 사람들 안에서 키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뉴욕에서 살아나가고, 그런 키미의 좌충우돌을 지켜보다 보며 웃음이 나지만, 한편으로는 키미가 멋있다는 생각까지 든다. 키미를 비정상이라고 간주했다면, 아마 키미를 보며 웃었겠지만 키미를 보며 멋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테다.
뿐만 아니라,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의 모든 인물들은 허점을 가지고 있고, 그 허점이 웃음 포인트로 기능한다. 결국엔 그 허점이 매력이 되었다는 말이다. 언브레이커블 키미 슈미트는 허점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남들과 다르다고 해서, 어설프다고 해서 그들을 비정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 허점을 반드시 극복해야 할 요소로 그려내지도 않는다. 모두가 다른 사람들이기에, 각각 다른 허점과 매력을 갖고 있는 게 당연하고, 그 허점 때문에 어설프고 위기를 경험하기도 하지만, 서로 곁에 있어 주며 서로가 서로의 허점을 메워주면 그만이다. 결국에 키미가 unbreakable할 수 있었던 건 키미의 타고난 성격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키미의 곁에서 키미의 허점을 메워준 다른 사람들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오래오래 키미가 깨지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키미로 살아가 주기를. 그런 키미와 함께하면서 우리의 일상도 깨지지 않고 오래오래 지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