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했고, 좋아하고, 좋아할 것들에 대해서
너를 살아가게 하는 것들을 좋아해
그런 말을 들었다. 너는 너무 네가 좋아하는 것만 하는 게 아니냐고. 좀 더 다양한 것도 도전해 봐야 하지 않느냐고. 그렇지만 여전히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아 가기 위해 시간을 쓰느니, 내가 좋아하는 일들을 하면서 즐겁게 시간을 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야 하는 일에 치이고 밀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기에도 시간은 모자란데, 굳이 왜.
가끔은 내가 좋아하는 게 너무 견고한 사람이라, 나와 좋아하는 것이 비슷하지 않은 사람과는 극도로 가까워지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엇인가 하나쯤은 비슷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돌아보다 보면, 나의 내면과도 상당히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나의 내면을 보여줘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겠다, 적어도 잘 들어줄 수는 있는 사람이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어쩌면 그건 내가 치는 일종의 벽일지도 모르고, 그래서 놓치는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지만. 아무리 벽을 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잘 되지 않아서, 굳이 그 벽을 깨려고 내가 아등바등 애를 쓰며 괴로워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맞고 누가 틀린 게 아니라, 그저 다른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누구에게든 나와 비슷해지라고 강요할 생각도 없었고,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줄여 나가고 싶지 않은 게 전부였다. 답은 없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시도해 본 결과로는 이게 맞다는 생각이 드는 것뿐.
김사월을 좋아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F4TSIBAug8c
우리는 영원히 옳다고 말해 줄 사람을 찾고 있는지 몰라
그런 사람이 영원히 없다는 점에서 인생이 아름다운지 몰라
- 김사월 '4' 中
본디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존이었지만, 사실 김사월의 앨범보다는 사운드 클라우드에 있는 미발표곡을 더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것은 4. 우울한 날에는 어김없이 사운드 클라우드에 들어가서 4를 틀고, 일기를 썼다. 4의 앞부분만 흘러나와도 마음이 안정되는 기분이 든다. 우울한 날에는 낯선 노래가 아니라 한없이 익숙한 노래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도입부만 들어도 마음이 안정되는, 그런 노래. 김사월의 음악은 슬픔과 우울함을 동시에 안겨 주는 것들이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관조하듯 담담하게 바라보는 것도, '그것들이 아름답다',라고 확정 짓는 것이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고 모호하게 말하는 것도, 모두 너무 좋다.
새로운 시선을 하나 배운 느낌이었다. 뜻대로 되지 않는 것,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 마음의 방향이 엇갈리고 마음의 온도가 서로 달라서 괴로운 것. 우리가 원하는 것에 다다르는 게 어쩌면 평생토록 불가능한 것임을 깨닫는 것. 그런 게 세상임을 인정하고, 그래서 아름답다고 바라보는 것. 4를 접하고 나서, 그냥 그 모든 아이러니에 대해 생각했다. 발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발매가 된다면 정말 오래도록 좋아할 노래가 되지 않을까,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망설임 없이 뽑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공연을 가도 가도 또 가고 싶은 이유는, 그런 미발표곡들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어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곡을 쓰게 된 배경을 수줍게 말해 주는 김사월만의 표정이 너무 좋아서. 얼마 뒤에 김X김 공연을 가는데, 가장 설레는 일 중 하나.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MYYXLw8jRD0
사랑이란 이 노래보다도 짧아
그럴 땐 자꾸 부르면 되지
-언니네 이발관 '누구나 아는 비밀 (With 아이유) 中
언니네 이발관이 마지막이라는 소식을 접했을 때, 참 마음이 이상했다. 마지막을 예고하고 앨범을 내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던가. 이전부터 언니네 이발관을 좋아했던 건 사실이지만, 20년을 함께 달려온 건 아닌 데다가 전 앨범을 다 좋아하기보다는 5집만을 유난히 좋아했기에, 뭐 너무나 아쉽다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산들산들'이나 '아름다운 것' 같은 곡들은 이런저런 순간에 많이 찾아 들었었는데. 언니네 이발관 역시 도통 마음이 종잡을 수 없을 때 많이 들었다. 특히나 '아름다운 것'은, 타이틀곡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들어 본 적이 없다가 그냥 어느 순간 꽂혀서 들었었다. 그때 그냥 내 마음 같았다. 왜 안 들었지, 그제야 후회하며 정말 오래도록 그 곡만을 반복 재생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김사월은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이라고 워낙에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다니기도 했고, 그와 관련해서 떠오르는 장면들이 많지만 언니네 이발관은 사실 명확하게 떠오르는 순간은 없다. 그렇지만, 어떤 마음이 들 때 그들의 음악을 찾아 들었는지는 기억한다.
아마 언니네 이발관을 떠올리면, 마지막이라는 그 이상한 감정이 떠오르지 않을까.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 예고를 들으며 들었던 그 이상한 기분. 마치 장대라 마지막 방송을 들을 때 들었던 그 기분. 그냥 이게 뭐라고, 이렇게 서로 모든 게 다르고 서로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이것 하나로 공통된 감정을 공유할 수 있지. 그것도 그저 얕은 감정이 아니라, 진심이 담긴 슬픔과 아쉬움과 그런 복잡한 것들이 합쳐진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그냥 그게 너무나 신기해서, 그 이후로 '소통'이라는 가치와 '진심'이라는 가치에 홀렸던 것 같다. 언니네 이발관의 마지막 앨범을 접했을 때, 다른 이들이 보이는 반응을 보면서, 그리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생각하면서 그때와 비슷하게 미묘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특히나 음악에 있어서, 마지막은 좀 낯설었다. 유난히 마지막을 맞이할 일이 많던 시기라, 마지막을 원래 실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끝, 헤어짐 같은 것들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의미보다는, 감정이 더 가깝겠다. 슬퍼야 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서 이게 과연 슬픈 걸까 싶은. 그런 뭔가 미묘하고 어수선한 감정. 언니네 이발관 6집을 들으면 그때 맞이했던 마지막들 때문에 느꼈던 어수선한 감정들이 먼저 떠오를 것 같다.
개인적으로 6집은 정말 좋아하는 앨범으로, 오래오래 남을 것 같다. 혼자일 때, 그리고 혼자지만 혼자이고 싶을 때 들었던 앨범. 혼자인 것을 즐기는 순간이라기보다는, 마음이 비어 있다 느꼈지만 그 기분을 오롯이 느끼고 싶었던 순간들. 조금은 울고 싶은 마음인데, 막상 울음조차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그런 날들.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도 담담하고 아무렇지 않았던. 그 순간들이, 그 거리들이, 그 장면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고, 담길 그런 앨범.
검정치마를 좋아하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0dRo5Kbgx6c
정말로 나는 아무 상관없는 걸
될 대로 되고 망해도 좋은 걸
-검정치마 '젊은 우리 사랑' 中
카페에서 음악이 나올 때 진짜 좋다,라고 느꼈던 경험이 아주 많지는 않은데, 그 몇 안 되는 경험이 검정치마 음악을 들을 때였다. 유난히 최근에 방문했던 가게들 중에서 검정치마 음악을 틀어주는 가게가 많았었고, 이미 아는 노래였는데도 매장에서 들으니 새삼스럽게 좋아서 그 앨범을 다시 듣기도 했었지. 조휴일 목소리의 묘한 매력이다.
이제 공연도 순식간에 매진되어 버리고, 주위에서 검정치마 음악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고. 어느 순간 슈스가 되어 버린 검정치마. 개인적으로 검정치마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꼽자면, '젊은 우리 사랑'. 이건 전적으로 가사 때문이다. '될 대로 되고 망해도 좋은 걸.' 이 가사가 너무 좋아서. '언젠가는 나도 누구의 버림을 받겠지, 그래도 나는 아무 상관없는 걸'이라고 말했던 검정치마가, 이번 앨범에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 있고 안정적인 사랑을 노래한다. 그 전과 노래의 톤이나 매력은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만, 그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번 앨범에서 완전히 뒤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전까지는 영원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믿고 싶은, 찡찡대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지녔다면.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러한 장난스러움의 이면에,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버릴 수 없는 기대감을 내포하고 있었다면. 이번 앨범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졌다. 언제나 곁에 있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는 사랑. 이 사랑이 오래오래 지속될 것임을, 순간의 충동으로 믿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의 직감으로 느끼는 그런 사랑.
그런 사랑, 솔직히 실감이 안 난다. 과연 존재하기는 할까. 사실 아직 이번 앨범에서 노래하는 안정적인 사랑보다, 검정치마가 이전의 앨범들에서 다뤘던 사랑의 톤이 나에겐 더 와 닿고, 더 익숙하다. 될 대로 되고, 망해도 좋은 그런 사랑. 사실 말은 그렇게 하지만 마음 한 켠으로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기대를 놓고 싶지 않은, 그렇지만 또 그런 마음을 드러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사랑. 그렇지만, 이번 앨범에서 말하는 사랑의 존재를 나 또한 너무나 믿고 싶어서. 그 감정을 느끼고, 비로소 그런 사랑이 존재한다는 것을 실감하고 싶어서. 변화한 검정치마가 반갑고, 이번 앨범을 한없이 따뜻하다 느꼈다. 기분 좋은 날 아침이면 언제나 검정치마의 이번 앨범을 들었다. 특히 Love is all. '사랑이 전부인 거야'라고 노래해도 진부하지 않은, 한없이 따뜻하게 와 닿는 그의 진심. 너무나 아름다운 그의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