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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씩씩 Aug 27. 2017

김사월의 사운드 클라우드를 들으면서,

 김사월의 미발표곡이 문득, 듣고 싶던 날.

 라이브를 보러 가면 모름지기 신나는 밴드의 공연을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했었다. 밴드 멤버들의 입담도 좋고, 노래도 신나서 함께 흥에 겨워 춤출 수 있는 그런 공연. 평소에는 그런 신나는 음악은 거의 듣지 않는 편이면서도, 이상하게 공연만큼은 신나는 음악을 하는 팀의 공연을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공연을 본 경험이 거의 없었던 '공알못'의 편견에 불과했다. 그게 편견, 그것도 정말 말도 안 되는 편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것이 바로, 김사월의 공연이었다.


김사월 - 프라하, 신촌전자 라이브


황홀했던 사월의 마지막 밤, 김사월쇼 

 

 김사월의 공연은 황홀하다, 라는 단어가 잘 어울렸다. 김사월의 공연을 보고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던 길, 서로 호감을 가지고 연락하던 상대에게 다짜고짜 '김사월'을 아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점차 그에 대한 마음이 식어가는 상태에서, 황홀했던 공연에 취했었기에 문득 그런 생각을 했던 듯하다. 이 사람이 김사월을 안다면, 나와 취향이 맞는 사람이겠구나. 그러면 더 만나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고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왔던 답은 "아니, 그게 누군데? 너 친구야?" 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뜬금없이 누군가를 아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너의 친구냐 물었던 그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나에게 그 답변은 크게 기대를 저버리는 답변이었고, 그 질문을 마지막으로 그에게 더 이상 질문을 던지지 않았던 듯하다. 인연을 이어나갈지 말지를 결정하는 척도가 김사월이 되었던 셈이다. 그 이후로 그는 김사월이 누군지, 어떤 음악을 하는 사람인지 찾아 보았을까. 만약 찾아서 들었다면, 그 음악을 어떻게 들었을까. 어쩌면 그도 나처럼 김사월의 음악에 빠져 버려서, 어느 날 그녀의 공연장에서 재회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순간, 나는 반가워해야 할까, 모른 척해야 하는 걸까. 


 일어날 가능성이 0에 가까운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김사월만의 목소리와 분위기가 그리워졌다. 그 공연에서 들었던, 아직도 생생하게 마음 속에 남아 있는 미발표곡들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사운드클라우드에 들어가서 김사월을 검색했고, 늘 그랬듯이 '4'부터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사월의 음악을 지배하는 정서는 '사랑 받지 못함'이라는 생각.



사랑 받지 못한다는 것은

우리는 영원히 옳다고 말해 줄 사람을 찾고 있는지 몰라
그런 사람이 영원히 없다는 점에서
인생이 아름다운지 몰라

                                         -김사월 '4' 中


 

 누군가를 좋아해 본 적이 있다면, 한번쯤은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을 테다. 내가 상대를 좋아하는 만큼, 상대는 나를 좋아해 주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 ‘Give and take’라는 말이 있듯이, 준 게 있으면 받기를 기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Give and take'가 어긋나는 순간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런 경우에 사람들은 기대를 버리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내가 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되돌려 받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정확히 내가 준 만큼 되돌려 받기를 바라는 것도 아닌데 이보다 어떻게 더 기대를 버릴 수 있지, 싶은 순간들이 있다. 나에게 넌 이 정도로 대단한 존재인데, 최소한 나 역시 너에겐 이 정도의 의미는 가져야 하는 게 아니냐,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 최소한의 선조차 충족시키지 못할 때, 아무리 부정하려 애써 봐도 마음의 온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밖에 없을 때, 우리는‘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김사월의 음악은 그러한 ‘사랑받지 못함’을 노래한다. 어떤 날은 사랑하는 연인, 어느 날은 짝사랑하는 상대, 또 다른 날은 친해지고 싶은 친구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세상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는 날도 분명 있을 테다. 그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사랑하는 대상에게 사랑 받지 못함을 인정하는 것. 그 지독히도 인정하기 싫은 사실을, 애써 부정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담담하게 인정하는 것이 김사월 음악의 지배적인 정서이다. 


네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돌아가 늦지 않았어
너의 손을 정말 따뜻하게 해 줄 사람에게 돌아가
다른 생각은 절대 할 수 없게 하는 사람도 있겠지
너의 모든 걸 이해하고 안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

나는 멀쩡해 나는 네가 걱정돼

                                -  김사월 '나는 멀쩡해' 中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대상을 계속 사랑하는 데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 사랑이고 인생이라는 사실 자체를 사랑하는 것. 그게 김사월의 음악이다. 김사월은 나에게 그 사람은 전부를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 나는 저 변두리 무엇인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때의 비참함을 노래한다. 나는 그 사람이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을 얻지만, 그 만남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포기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는 그런 존재가 내가 아니라 다른 대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을 노래한다. 그리고 그것을 알기 때문에, 결국은 나의 행복이 아니라 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너의 손을 정말 따뜻하게 해 줄 사람에게 돌아가'라고 말한다.


 이러한 '사랑 받지 못함'에 대한 이야기는 김사월 자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겠지만, 동시에 나의 이야기이고, 이 음악을 듣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앞으로도 수없이 사랑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들이 찾아오겠지. 누군가와의 사랑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다가도 지나간 흔적들이 불안함을 몰고 오는 밤들도 있겠지. 그 순간들 속 정제되지 않은 감정들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 테고, 그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도 쉽지 않겠지. 그렇지만 그런 밤, 김사월의 음악이 최적화된 위로가 되어 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위로를 찾아 헤메이지 않아도, 나를 사랑해 줄 상대를 찾아 방황하지 않아도, 언제고 찾을 수 있는 곳에 그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 이러니 김사월의 음악을 사랑할 수밖에. (최근에는 사운드클라우드에 새로운 음악들이 게시되는 속도도 빨라졌다. 새로운 곡들을 듣는 재미도 쏠쏠하니 모두 사운드클라우드를 들어 보자.)


  https://soundcloud.com/aprils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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