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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란시간 Jul 10. 2022

<나의 덴마크 선생님>

불안과 우울의 시대에 서로 의지하는 법 배우기

              나에게 <덴마크 선생님>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과 답을 정체성과 연결 지어볼 수 있을까. 현대 개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주변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기 위해 인간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그렇다면 정체성은 무엇일까. 정체성은 자기인식과 동일시를 말한다. 정체성을 형성한다는 것은 자신을 타인과 같은 거리에서 바라보고 인정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며, 나아가 구체적인 삶의 지향성을 형성하기 위한 동일시 대상을 찾는 것이다. 단 하나의 정체성으로 인생을 마감할 수 있을까. 변화하는 사회에 맞춰 개인의 정체성 또한 변화해야 한다. 그렇다면 정체성을 다시 형성해야 하는 시기는 언제일까. 그 시기는 자신의 감정이, 또는 몸이 말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그 몸의 언어를 우울과 불안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울은 과거에서, 불안은 미래에서 비롯된다. 다시 말해 우울과 불안은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울과 불안은 불확실성에서 기인한 정체성의 한계에 대한 몸의 표현일 수 있다. 정체성은 어떻게 형성해야 할까. 기존의 방식이 아닌 새로운 경험과 그 경험에서 얻은 사고를 바탕으로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덴마크 시민학교로 떠나기 전, 20대의 삶을 우울과 불안의 시기였다고 말한다. 20대 이후 지리산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영어교사로 일하면서 선생님이기보다 스스로 학생인 것 같은 생각에 대한 의문을 느끼며, 직접 학생이 되어보기 위해 덴마크로 떠났다. 덴마크 시민학교는 19세기 중반, 덴마크 민중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농민을 위한 학교로 출발해서 현재는 누구나 갈 수 있는 교육기관이 되었다. 학교 수업은 한 학기에 자신이 연구하고 싶은 주제를 정하고 연구해서 학기말에 발표를 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진다. 학교 안에서의 일상은 나이, 성별, 그리고 국가나 인종의 차이 없이 서로 도우며 이루어진다. 수업방식은 암기식이 아닌 구술 형식을 중요시한다. 그럼에도 필기를 고집하는 학생에게 교사는 이렇게 말한다.


“땅에다 배수관을 묻고 나중에 묻힌 자리를 다시 찾으려면 그 자리에 표시를 해 놔야 해. 그런데 옥수수 씨앗을 심으면 따로 표시를 해 놓을 필요가 없어. 씨앗이 알아서 올라올 테니까. 수업시간에 재미있게 들은 이야기는 언젠가 필요할 때 바로 떠오를 거야.”


이 학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서로의 속도에 맞춰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한 실천을 지향하고, 지혜와 경험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용기로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것 또한 간과하지 않는다. 저자가 처음에 느꼈던 나이차, 인종, 국가에 대한 이질감은 학교의 규칙과 방향성을 따라가며 어느덧 평화로운 공존으로 동화되어 나간다. 이어서 베를린에서 프라하를 거쳐 폴란드 아우슈비츠까지의 수학여행을 통해 분단국가의 현실과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극단의 현장에서 느껴지는 참혹한 고통의 순간을 회상하고, 현대 유럽사회의 보편적 사고 경향성에 대해 기술한다. 이렇듯 학교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만남과 삶의 경험을 나누는 과정은 모든 순간이 배움으로 이어진다. 수업시간, 학교 선생님들이 하는 말과 저자가 학생들과 나누는 다양한 대화는 잔잔한 울림이 있는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행운은 이렇게 말없이 나를 찾아왔다. 내 안에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학교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만남들이 어떤 울림을 만들고 있다.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만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 알 수가 없다.”


“이제 대안학교는 치유의 공간이 되어야 할 거예요. 일본은 이미 그런 추세라고 해요. 한국도 곧 그렇게 되지 않을까요?”

치유의 공간에서는 상처가 터져 나올 수 있다. 상처가 드러나지 않는 치유는 불가능하다. 학생들의 상처가 터져 나올 때마다 나의 상처 또한 움찔했다. 학생들과 내 상처는 서로 만나 깊은 가을 뱀사골 단풍처럼 활활 불타오르며 지리산을 홀라당 태워버릴 듯했다. 내게 치유자가 될 자격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치유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대꾸에 친구가 대답했다. “이 세상의 모든 치유자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자기 자신이 치유되어야 했던 사람들이야.”


- 내가 경험했던 학창시절의 미술시간과 달랐던, 그래서 인상적으로 느껴졌던 미술수업 시간, 미술 선생님(캐트린)과 대화….


“흠, 지워지지 않는다면…… 분명 네가 이 가지를 그린 이유가 있을 거야.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으니까. 지금은 모를 수도 있지. 그런데 그림이 꼭 조화로워야만 할까. 그림을 보다가 불편해지면 안 되는 걸까. 여기에서 이 그림을 불편하게 하는 게 이 가지의 역할이 아닐까.”

잠시 생각하다가 캐트린이 말을 있는다.

“선택은 너에게 달려 있어. 이 가지를 살려 둔 채 좀 더 조화롭게 주변을 그려 나갈 수도 있고……. 다른 지우개를 쓰면 지워질까?”

“가능하다면 이 가지를 지워보고 싶어요. 다른 지우개로 일단 시도해 볼래요.”

지우개질을 하다 어쩌면 불편한 저 나뭇가지도 내 모습 중 하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지워내고 싶은 가지는 희미한 흔적으로 그림에 계속 머물러 있다.


언젠가 미술실에서 나무를 그리다가 온갖 공을 들였지만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모르겠다 싶은 순간이 왔다. 그때 나는 길을 잃은 것 같다고 캐트린에게 말했다. 그러자 캐트린은 나에게 질문했다.
 “길을 잃는 것을 싫어하니?” 그 질문의 울림은 오랫동안 나의 가슴에 남아 있다.


- 학기 중, 만남과 이별의 아픔을 위해 마련된 특강에서 이어졌던 인상 깊었던 말….


“있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기 위해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마. 너의 지금 모습 그대로여도 괜찮아. 다만 네 곁의 사람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이 되렴. 우리가 서로의 어깨에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어.”


- 교육학과 정치철학에 대한 수업….


“이성이란 나의 입장을 넘어서서 볼 수 있는 힘이다. 너는 정말 너 자신의 입장을 넘어서서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을 볼 수 있는가?”

…….

“기억해야 해. 네가 정치를 선택하지 않더라도, 정치는 언제나 너를 선택한단다.”


저자가 소개하는 학교의 일상과 학교 주변의 모습들, 그리고 수업시간 선생님 말씀과 저자가 학생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한 저자의 생각을 사유하며 어느덧 책의 마지막 장이 되었다. 저자와 함께 덴마크 시민학교에 다녀온 것 같은 착각이 들며, 언젠가 나도 학생이 되어보고픈 상념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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