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chel Foucault
1강. 1970년 12월 9일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인식에 대한 욕망을 갖는다. 다양한 감각에서 오는 즐거움이 그 증거이다. 사람들은 쓸모를 떠나 감각을 그 자체로 즐기는데, 다른 어떤 감각들보다 특히 눈을 통한 감각을 즐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철학 담론 자체에 대한 조작을 탐지할 수 있다. 비단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담론뿐 아니라 서양 문명에 존재했던 철학 담론에 대한 조작을(23).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표현을 아직 가설 단계에 있는 일반 원리 아래 포섭되어 있는 특수한 사례를 통한 추론으로 이끈다. 그리고 특수한 사례의 진리가 일반 원리의 진리를 수립한다. 모든 인간이 지식을 욕망한다는 증거가 상식추론으로 이어진다는 것, 이는 사소하지 않다. 천만의 말씀이다(26).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텍스트에는 애매함 뿐 아니라 의미의 중첩도 있다. 이 중첩을 통해 한편으로 인식에 대한 욕망을 본성에 기입하고, 그 욕망을 감각과 신체에 연결한 뒤, 그 상관물로서 어떤 향유 형태를 제시하는데 도달하는 동시에 다른 한 편으로는 인식에 대한 욕망에 지위와 토대를 제공한다. 그에 따라 신체, 욕망이 생략된다. 감각에 밀착해 원인에 대한 평온하고 비신체적인 중요 인식으로 향하는 운동, 이 운동 안에는 이미 이 지혜에 도달하려는 어렴풋한 의지가 있다. 이 운동은 이미 철학적인 것이다(35).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식에 대한 욕망은 감각의 수준에서 감각 안에서 예고된다. 기억은 인식에 대한 욕망의 전체 운동 과정에서 필수불가결하다. 기억은 감각과 연결되어 있다. 왜냐하면 기억은 감각의 지속이자 흔적이기 때문이다. 지식은 상상에 새겨지고 그것에 의거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테마를 멀리하면서도 플라톤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인식에 대한 의지가 인식 자체라는 사전 조건 말고 다른 것에 바탕을 두게 놔두지 말 것. 인식에 대한 욕망이 인식 내부에 완전히 포함되어 있게 할 것. 인식이 처음부터 인식을 이미 취하게 만들 것. 인식이 처음 발생할 때부터 인식에 그것의 장소, 법칙, 운동의 원리를 부여할 것. 이 요청을 플라톤은 상기의 신화를 가지고 충족시켰다(40). 철학은 진리 자체의 운동과 다르지 않다. 철학은 자기를 의식하는 의식이다. 세상에 눈을 뜬 자는 이미 철학자이다. 우리는 바로 그 테마가 어떤 기능을 하는지 볼 수 있다. 가장 거칠고 가장 신체적인 인식에 이미 관조가 있는 것이다. 관조가 그것에 고유한 논리에 따라 또는 지식이 관조하는 대상의 필연성에 따라 인식의 운동 전체를 이끌 것이다. 결과적으로 욕망은 욕망의 효력과 함께 생략된다. 욕망은 이제 원인이 아니다. 인식이야 말로 인식 자체의 원인이 된다. 인식은 인식 자체의 원인이요 인식과 관련된 욕망의 원인이 된다. 따라서 욕망의 주체와 인식의 주체는 하나이다(43)
2강. 1970년 12월 16일
아리스토텔레스의 추론과 증거는 감각과 그것의 즐거움(ἀγάπησις)이 진리와 관계 맺음을 전제한다. 욕망 및 인식과 관련해 진리가 하는 작용이야말로 이 모든 체계성의 강력한 계기를 구성하는 것이다. 서양철학에서 니체 전까지 욕망과 의지가 인식에 대한 종속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것도, 인식에 대한 욕망이 늘 인식의 선행성에 의해 배가됐던 것도, 진리와 맺는 이 근본적 관계 탓이다(47). 바로 이 의지-인식-진리 관계가 니체에게 문제가 된다. 니체의 텍스트는 인식의 형식과 인식의 법에서 인식에 대한 욕망을 해방하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다.
a. 인식의 뿌리에 인식이 돌발하는 역사적 지점에 욕망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 욕망이 인식과 근친 관계가 없음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목적의 수준에서 소속 관계가 전무하다. 우리는 지배하고 이기기 위해 인식하는 것이지 인식하기 위해 인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b. 인식의 역사를 통틀어 인식의 발전을 이끈 것은 인식된 내용의 내적 필연성도 아니고 인식 형식의 이념적 발생도 아닌 의지의 어떤 규칙, 즉 금욕주의임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
c. 마지막으로 인식 행위의 배후에서, 의식의 형식을 따라 인식하는 주체의 배후에서 본능들, 부분적 자아들, 폭력들, 그리고 욕망들의 투쟁이 전개됨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49).
니체의 담론의 경계에서 그 담론 위로 임마누엘 칸트가 고개를 내밀고 위협하는 모습이 보인다(50). 칸트는 이렇게 단언한다. 우리는 저편으로 절대 넘어갈 수 없을 것이다. 저편으로 넘어가면 진리를 놓치게 될 것이다(52). 우리는 진리와 인식이 정당한 권리로 서로가 서로에게 소속되지 않을 때만 인식할 수 없는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진리의 역설에 빠지지 않고 인식의 저편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51).
3강. 1971년 1월 6일
“……궤변술은 겉모양은 철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사를 진리의 요소 안에서 이뤄지는 강제이자 우연의 운동으로 이야기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그 독특성에 있어서 세 가지 중요성을 갖는다. 첫째,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담론을 다른 모든 담론에서 분리한다(61). 두 번째,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은 수 세기 동안, 철학의 역사적 존재 방식을 설정했다(64). 내부성의 원리, 즉 외부에서 철학에 접근할 수 없다는 원리. 철학은 진리의 요소 안에 있기 때문에, 또 철학 담론은 항상 진리와 근본적인 관계를 수반하기 때문에, 철학적이지 않은 어떤 담론이나 실천도 실질적으로 철학에 도달할 수 없다(65). 외부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했다. 인식 이론의 외부, 그것을 제거함으로써 철학의 존재 자체가 가능해지는 바깥, 그것에 철학 담론이 어렴풋이 기대는 바깥을(66). 셋째, 이 텍스트가 배제한 것은 『변증론』 마지막 권, 『소피스트적 논박』같은 텍스트에 나온다. 문제가 되는 것은 궤변술, 궤변, 소피스트적 논변, 논박 담론이다(67).
그런데 허울뿐이고 진리 따위 신경 쓰지 않으며 잠시 착각을 일으킬 뿐인 추론들을 철학이 걱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물음에 답하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분석을 검토해야 한다(70). “… 소피스트는 외견상으로는 지혜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지혜에 의해서 돈을 버는 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또한 지혜로운 사람의 일을 수행한다고 여겨지는 것이, 실제로 지혜로운 사람의 일을 수행하면서 그렇게 여겨지지 않는 것보다 … 더 필요하다는 것은 아주 분명하다.”(72). 돈이 이 외견의 핵심이다. 추론의 이런 외견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을까?(73). 『소피스트적 논박』 서두의 구절은 궤변을 일반적으로 설명한다. “… 이름들의 정의의 숫자는 한정되는 데 반해서 사물은 숫자적으로 한정이 없기 때문이다. 동일한 정의와 하나의 이름이 불가피하게 여러 사물을 가리키게 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궤변 효과의 위치가 지정된 것이다(74). 단어의 물질성에 고유한 성격(단어의 부족)이 궤변을 낳는다(75). 아리스토텔레스는 궤변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차이의 역할을 제시한다. 진술의 물질적 실재성을 제거하는 수단인 차이는 진리 내지 명제의 오류의 장 같은 명제학의 조건이다(82). 궤변은 실제로 진술적이지 않다. 궤변술은 진술의 어떤 ‘질료적인’것의 수준에서 늘 유지된다. 이로부터 궤변술이 도달하는 것은 모두가 인정해야 하는 참된 명제가 아니라 두 상대방 가운데 한쪽의 침묵이다. 한쪽은 말을 이을 수 없고, 이 물질성의 게임에서 배제된다(83). 명제학은 대상과의 연속적 관계 맺음으로 정의된다. 궤변술은 주체의 배제로 정의된다(84).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어떻게 플라톤이 그렸던 선에 포함되는지, 또 어떻게 아리스토텔레스가 자리를 옮기는지 잘 알 수 있다. 대화편의 핵심은 비존재가 λόγος에 닿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85).
4강. 1971년 1월 13일
아리스토텔레스와 철학이 불법이라고 판정한 변조는 참된 추론에 의해 수행되는 변조와 무슨 차이가 있을까?(92) 궤변은 명제의 기본 구조가 아니라 언표의 존재에 의거한다(93). 궤변적 논변이 존재하려면 어떤 것이 말해진다는 사실만 고려해서는 충분하지 않으며 어떤 것이 누군가에 의해 말해졌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94). 궤변시합이 시작되면 말하는 주체는 ‘메타언어적 중재의 수준’에 호소할 수 없다. 주체가 자신의 언명을 끝까지 고수할 수 있다면, 그 언명은 주체의 계정에 계속 남게 되지만 언명을 고수할 수 없다면 그는 그 언명을 잃은 것이고 졌다. 궤변은 증명되지 않는다. 궤변은 이기거나 진다. 궤변의 명백한 무질서, 악의, 유치함 아래서 말하는 주체와 진술의 상호 위치가 문제가 된다(95). 궤변은 엄격한 의미에서 도착이다. 말하는 주체는 성숙한 도덕 질서에서 허락되지 않는, 물질성과 이치에 맞지 않는 관계를 맺는다. 오늘날 진정한 소피스트는 어쩌면 논리학자들이 아니라 레몽 루셀, 장-피에르 브리세, 루이 울프슨이다(96).
소피스트가 변조하는 한 가지, 그가 관계하는 하나의 존재는 말해진 것의 존재, 즉 물질적 실재성에서 본 언표의 존재이다. 우리는 존재가 존재하게 만든다. 우리가 말한다는 사실을 통해서 말이다. 마찬가지로 비존재가 존재하게 만든다. 우리가 ‘비존재’를 언표 하기 때문이다. 이 역설은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면서 언표 된 사건과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자의 관계를 정초 한다. 궤변에서 나타나는 외견적 진리 효과는 사실 진술적(담론적) 사건과 말하는 주체 사이의 유사법적인 관계이다(99). 진술문은 존재와 관련 있다. 진술이 존재하고 사건이 되며 만들어지는 수준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진술이 이야기하는 것의 수준에서 그렇다(101).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진술문의 이중의 대립체계 속에서 명제학은 언표들의 한 범주이길 그친다. 명제학은 하나의 조작이다(102). 명제학은 언표와 존재 사이 의미작용의 수준에서만 관계를 수립한다. 진술문에 비해 궤변이 언표를 다루는 방식은 늘 엉뚱한 추론, 추론의 그림자, 추론의 외견으로 비칠 것이다. 궤변의 물질성에 비해 명제학은 관념성에 대한 호소로 비칠 것이다. 하나가 늘 그림자에 해당할 것이다. 논리학이 규정되는 출발점이 되는 거대한 대립이 진술적/비진술적 대립이라면, 철학에서, 과학에서 그리고 서구 지식 전체에서 대립은 명제학과 궤변적 비판 사이에 있다(103).
플라톤은 궤변과 소피스트의 위험을 전혀 제거하지 못했다. 하지만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굴복시켰다. 『소피스트』에서 승리가 이루어진다. 우리가 머릿속으로 자신과 토론을 벌일 때 진리에 접근한다는 언명에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있는 것이 있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라는 언명에서이다(104). 이 두 명제에서 플라톤은 소피스트를 외견과 모상의 인간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이와 똑같은 근본 명제가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에서 발견된다. 진술의 물질성의 배제, 명제가 참 또는 거짓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조건을 부여하는 명제학의 출현, 기표-기의 관계의 지배, 진리의 출현 장소로서의 사유에 허락된 특권, 이 네 현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현상들은 서양 과학과 철학이 역사적으로 발전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106).
5강. 1971년 1월 27일
고전기의 사법체계에서 진실은 제3자, 증인에 의해 이야기된다. 증인은 두 소송 당사자 중 어느 쪽에 진실이 있는지 말하는 역할을 맡는다(112). 이와 달리 선-법의 단계에서는 진실 자체가 제3자이다. 진실은 어느 쪽에도 없고 양측 중 어느 쪽이 진실의 권능과 결정하는데 있다(113). 이 두 진실의 공통점은 진실이 최고권의 어떤 행사와 연결된다는 점이다. 호메로스의 맹세에서 서약자는 진실의 도전을 받아들일 때 제우스의 최고권에 노출되지만 고전기 법의 경우에는 재판정의 공간에서 진실이 드러난다(116). 두 진실 형태 사이에서 권력의 체계 전체가 변경된다. 이제 문제는 진실 체계-사법적 결정-정치권 최고권의 변환을 분석하는 데 있다. 우리는 이 변환을 솔론까지 이어지는 변경들 전체, 고전기 즉 소피스트 시대까지 이어지는 변경들 전체로 나누어 연구할 것이다(117)
정치-사법 조직의 설립은 어느 시기에 어떤 조건 아래에서 설립됐는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사 사회의 특징인 사적 의례 절차에 포개진다. 이 상고기의 조직에 관한 애매한 증언은 호메로스의 시와 헤시오도스에게서도 볼 수 있다. 직접적인 법률 문서들의 출처는 주로 고르튄 법이다(118). 이 호메로스적 판결의 성격에서 미래의 변환의 씨앗을 볼 수 있다(121).
6강. 1971년 2월 3일
우리가 알고 있는 체계에서, 희랍 고전기에 이미 확립된 체계에서, 참된 발언은 무엇보다 증인의 발언이다. 참된 발언은 우리가 있었던 대로, 우리가 봤던 대로 사물을 현시하는 것이다. 증인의 발언은 현전의 대체물이다. 호메로스 시기와 관련해 참된 발언의 등가물은 시련 재판, 육체적 시련이다(125). 진실과 체형의 관계의 역사를 모두 살펴봐야 할 수도 있다(127).
변환: 새로운 유형의 판결, 소송 절차, 선고가 이전의 원초적인 형태 옆에서 출현한다. 이것이 변환의 주요 핵심이다. δικάζειν[dikazein]과 κρίνειν[krinein]의 존재가 이 대립을 표시한다(129). 고르튄 법은 두 유형의 판결에 자리를 마련한다. 첫 번째 유형인 δικάζειν에서는 소송인들만 맹세한다(130). 이 소송절차의 진실은 함께 서약하는 자들의 맹세 속에서 위험 감수의 형태로 언명된다. 참을 이야기 하지 않을 경우 신들의 복수에 노출되겠다는 위험 감수. 하지만 진실은 선고에서 기억의 형태로 단언된다(131). 신들의 미래의 복수, 그리고 심판하는 왕의 정확한 기억. 두 경우에서 진실은 비-망각의 형태를 띤다. 인간은 자신들이 신들의 비-망각에 노출된 이상 왕의 비-망각을 요청한다. 이 진실은 은폐 또는 비-은폐와 아무 상관이 없다(132).
고르튄 법은 이 판결 형태 곁에 다른 판결 형태인 κρίνειν의 자리를 마련한다. 처음에는 주로 대용의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급속도로 확대되어 완전히 자리 잡아 희랍의 사법 공간 전체를 차츰 차지하게 된다(133). 재판관은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고 이렇게 진실과 관계를 맺으면 소송인들과 똑같이 신들의 복수에 노출된다. 진실의 언명은 이제 제3자의 위치에서, 소송 당사자들의 위치에 포개지고 그 위에 정리되면서 나타난다. 이제 재판관이 하는 맹세는 보충적인 요식 행위가 아닌 사법 담론과 실천의 전혀 새로운 배치이다. 이 새로운 배치에서 소송인들의 맹세의 치환과 기능이 저하된다(135). κρίνειν에서 재판관의 선고는 승리를 부여한다. 무엇에 의거해서 그리할까? 몇몇 시학적 또는 철학적 텍스트들이 이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정의δίκη에 부합하고 공정한 것δίκαιον을 언표 하는 그리고 진실에 부합하는 선고가 공정하다(137). 희랍 법에서는 사실상 범죄가 제대로 배상됐는가라는 물음밖에 없다(139).
κρίνειν과 더불어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진실 언명이 사법적 담론과 실천 속에서 구성된다. 이 진실 언명은 재판 담론이 최고권이 행사되는 곳인 정치 담론과 소통하게 만들고, 세계의 질서가 언표 되는 곳인 지식 담론과 소통하게 만든다(144). 정치-사법 권력의 수립. 이 권력은 도시의 형태를 띠고 부와 출생의 불평등과 관계없이 원리상 모든 시민에게 동일하게 행사된다. 이것이 솔론의 시대이다. 이것이 ἰσονομία이다(145).
7강. 1971년 2월 10일
δίκαιον의 출현
κρίνειν에서 재판관의 선고를 이끄는 것, 재판관이 맹세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은 법이 아니라 δίκαιον이다. 이 개념과 용어는 호메로스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일리아드나 오디세이아에 Δίκη가 나오는데 δίκη는 사법적 소송을 규제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적 소송의 전개, 그것의 게임 그리고 그것의 게임에서 쟁점이 되는 그 무엇이다. δίκη를 규제하는 것은 관습(법과 규칙)이다(148-149). 헤시오도스에게 δίκαιον이라는 용어는 δίκη와 연결되어 등장한다(150). 호메로스의 경우 거짓 서약자를 제우스가 친히 복수하지만 헤시오도스의 경우 δίκη가 매개자 노릇을 한다. 재판의 담론과 실천은 δίκη의 매개를 통해 제우스와 관계를 맺기 시작한다(152). κρίνειν의 준거점이자 재판 업무의 내재적 규칙 노릇을 해야 하는 공정은 결정적 맹세에 좌우되는 구식 재판을 규제하는 것과는 판이하다(156). 판결의 체계에서 복원은 균형과 측정의 형태로 이뤄진다. 새로운 경제 관계 전체가 δίκαιον을 촉구하며 가능케 한다.
δίκαιον-ἀληθές(진실) 상관관계
결정적 맹세를 측정-판결이 대체한다. 동시에 진실-도전, 시련 재판적 진실을 진리-지식이 대체한다(157). κρίνειν의 세 가지 근본성격이 발견된다. 동일한 것과 그것의 측정에 대한 기억, 참의 폭로, 최고권의 행사. 이제 심판하는 왕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공정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든 주의를 기울이고 귀를 기울이며 공정한 것을 기억해 두는 이상 공정할 것이다. 정의란 단지 이야기되는 것이 아니라 청취되는 것이다. 그리고 공정한 사람은 좋은 선고를 이야기하는 자가 아니라 사람, 즉 정의를 들은 모든 사람이다(159). 재판의 실천에서 나타나는 δίκαιον은 재판의 영역을 넘어 일상생활의 규칙이 되고, 세계의 배열이 된다. 공정하다는 것은 이제 규칙을 적용하고 진실의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 알기를 잊지 않는 것이다(161). 지식의 형태에서 κρίνειν의 필요조건이자 준거점이 되는 진리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우주론적 지식, 신들의 계보, 달력과 기원에 관한 지식, 순환과 시작에 관한 지식이다(162). 이러한 지식은 유프라테스와 오리엔트의 대제국들에서, 히타인들과 앗시리아인들에게서, 바빌론에서 형성되고 발전했다. 그것들은 정치권력의 형태와 직접적 관계를 맺으며 구성됐다(163).
8강. 1971년 2월 17일
지식의 비밀스러운 성격은 글로 된 것과 말로 된 것이 모종의 방식으로 분배되는 가운데 표시된다. 거기서 희랍의 변환이 일어난다. 지식은 국가 기구와 직접적 권력행사에서 분리된다. 지식은 정치적 최고권의 직접적 적용에서 떨어져 나가 자연적, 신적, 인간적 질서로서의 공정(δίκαιον)의 상관물이 된다. 따라서 두 가지 변형이 있다. 하나는 진리를 사물, 시간, 질서에 관한 지식으로 출현하게 만든다. 다른 하나는 권력의 영역에서 정의의 지역으로 지식을 이동시킨다. 이런 변환은 한편으로 정치적, 사제적 기능과 연결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소수의 개인, 전통적 수장에게 독점되어 왔던 사법적 실천이 진리와 연결된다(171).
기원전 7~6세기 농지 위기 - 도리에이스 인의 잇따른 침략의 여파로 불균등이 심해져 격렬한 갈등을 낳았다. 극빈층이 더욱 빈곤화되었고 부유층의 경우 상속 시 토지 분할과 관련해 문제를 겪었다. 상황 개선을 위해 찾아낸 빈자와 부자의 공통의 해결책은 개인의 이주와 식민지 개척이었다(175). 식민지 개척으로 인구문제는 완화됐지만 빈자의 상황은 악화된다. 빈자들이 지속적인 악화 상태에 맞서는 방어수단은 수확과 파종을 위한 최선의 시기가 언제인지, 빚을 갚을 적합한 만기일이 언제인지 알게 해주는 시간 계산 체계의 확립, 수확물을 숫자로 나타내고 일정한 교환율을 유지하며 빚진 것을 셈할 수 있게 해주는 도량형의 확립. 빈자의 소유물을 보호하고 부자의 폭력을 저지하는 새로운 권력의 확립이었다(177).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의 정치 변환 - 귀족정의 한 분파와 아직 분화되지 않은 장인-농민집단 사이에 동맹체계가 수립되자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의 정치적 대격변이 일어난다(181). 기원전 7~6세기 참주는 정치권력을 장악할 때마다 가장 비천한 자들, 빈자들, δῆμος라 불리기 시작한 자들에게 기댔다(182). 일반적으로 기원전 7~6세기 희랍에서 일어난 정치 변환은 농민들과 장인들이 일시적인 승리를 나타냈다고 말할 수 있다. 귀족정의 소수파와 장인들과 농민들이 이해관계로 묶인 동맹은 이 변환의 정치형태를 설명해 주는데 다시 말해, 참주정 또는 성문법의 지배를 수립하는 한 명의 개혁가나 개혁가 집단의 개입이다. 참주들은 대개 법적 틀 내에서 통치했고, 완숙기에 접어든 참주정은 성문법을 조직했고 때로는 민주주의로 가는 매개 역할을 했다(185).
결론 - 이 변환들을 통해 희랍사회에서 정의 담론과 지식 담론의 관계(공정, 측정, 질서 참 사이의 관계)가 재분배된다. 희랍 전통을 계승한 진실-도덕과 오리엔트에서 이오니아를 거쳐 그 모델이 전수된 지식-권력은 서로 순응해 이제 어떤 진리-지식으로 변형된다. 그 진리-지식은 그 뿌리에서 정의, 분배, 질서와 연결되고 ἀρετή의 도덕과 교육의 기술에 의거한다(186).
9강. 1971년 2월 24일
1. 화폐 제도
계산으로서의 측정, 규범으로서의 적도(適度). 이 측정은 7~6세기 참주정 시기에 확립됐고 참주들 본인에 의해 확립됐다(187). 이 대대적인 측정 활동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솔론의 것이다(188). 참주든 입법자든 권력을 보유한 자는 도시의 측량사다. 토지, 사물, 부, 법, 권력, 인간의 측량사(189). 이 측정 실천의 핵심에서 화폐 제도가 출현한다(190).
A. 해석들 - 전통적 해석에 따르면 시장 경제가 발전함에 따라 화폐사용이 생겨났다. 하지만 희랍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화폐가 채택되고 사용되었다(191). 화폐의 사용은 본질적인 부분에서 상업적 사용과 달랐던 것 같다. 어떤 측면에서는 종교 의례를 참조하고 다른 측면에서는 사회 조절을 참조하는 이런 화폐의 실천은 도대체 무엇인가?
B. 하나의 예 - 다른 곳보다 화폐제도가 잘 알려진 곳은 코린토스이다. 전설에 의하면 장인인 아버지와 바카이다이의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큅셀로스는 자신이 코린토스에서 권력을 잡으면 그 영토를 제우스에게 바치겠다는 소원을 빌었고 일단 권좌에 오르자 모든 지주에게 부의 1/10을 내도록 강요했다(193). 큅셀로스의 정책은 경제적 독해와 종교적 독해가 가능하다(195).
C. 희랍 화폐의 세 기능 - 권력의 전위. 화폐를 보유하기 때문에 권력을 획득하고 행사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이 권력을 쥐었기 때문에 화폐가 제도화된 것이다(197). 화폐의 표식에 각인된 것은 일반적인 기호학적인 본성을 갖는 기호가 아니라 정치권력을 위한, 그리고 정치권력을 둘러싼 투쟁이다. 그것은 정치권력의 이동, 유지, 강화이다(199).
2. 화폐-모상
기원전 7~6세기 희랍 사회에서 화폐는 (자신을 보존하면서) 이동하는 과정에 있는 권력, 새로운 조절 작용을 통해 계급 지배가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권력이 사용하는 도구이다. 화폐는 종교적, 경제적, 정치적, 사회변혁의 요구를 권력 이동으로 대체한다. 이 대체들은 중첩되고 서로가 서로를 대체한다. 이것이 모상이다(200). 기호는 ‘표상하지만’ 모상은 하나의 대체를 다른 대체로 대체한다. 모상의 실재성 덕분에 화폐는 경제적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일종의 하중과 내력에 의해서 권력으로부터 유래해 권력으로 돌아가는 사물로 오랫동안 남을 수 있다(201). 화폐는 모상으로서 권력과 연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202).
3. 화폐-적도
희랍사회에서 화폐는 무엇보다 도시를 구성하는 상이한 요소들 사이의 조절도구이다(202). 솔론의 “지나치게 많지도 않고 지나치게 적지도 않고”라는 격언은 화폐 제도의 맥락 안에 있다(203). 화폐-적도: 적도(비과잉)의 요소 안에서 사물은 참이 된다(205). 화폐가 진리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화폐가 사회를 조절하고, 조정하며, 정정하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화폐 덕분에 큅셀로스 같은 참주들이나 솔론 같은 입법가들은 도시를 제 질서에 맞게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이다. 화폐는 도시의 조화 및 실질적 힘이다. 화폐의 진리는 국가를 지배하는 δίκη(정의)의 이면 같은 것이다 (206).
10강. 1971년 3월 3일
성문법의 출현은 기록으로서 도입된 것이 아니라 권력과 권력을 위한 투쟁이 문제가 되는 사건 내부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성문법과 불문법
A.θεσμός - θεσμός[thesmos]는 불문규칙이다. θεσμός가 불문이라는 사실은 그것이 기억 속에 보존되어 사건이나 정황이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경우·순간·때에 환기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210). θεσμός가 작동하려면 의례적으로 발언될 필요가 있다. 상고기 희랍 사회에서 기억은 그다지 개인적이거나 집단적인 의식의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일군의 담론의 비밀을 전승하는 집단들은 기억의 제도를 구성하게 된다. 그런 제도는 엄격한 배제 규칙, 그리고 아주 특수한 암기술을 포함한다(211). θεσμός의 유지는 권력 행사 도구인 소유 재산과 기억이라는 쌍둥이 형태로 보장된다.
B. νόμος - 성문법은 석판이나 벽에 모두가 볼 수 있게 공개적으로 새겨진다. 하지만 νόμος는 불문법도 가리킨다. 기록은 παιδεία[paideia/교육]와 마주해, 그리고 παιδεία 옆에서 νόμος가 취할 수 있는 가능한 형태들 중 하나이다. 교육과 기록은 공동으로 또는 대안적으로 기능함으로써 νόμος를 보장하고 보호하며 유지한다(213). θεσμός는 불가침이지만 νόμος는 λόγος에 영향받거나 λόγος로부터 획득될 수 있다(215). 진리들이 이야기할 때 λόγος는 본성의 존재와 합류한다. 단어들이 어떤 방식으로 존재에 참여할 때, 진리는 가르쳐진다. 그러자 서구의 거대한 철학적 물음들이 형성된다. 진리는 효과이길 그치고 조건이 된다. 의미론적 장은 제도로서, 사회적 절단으로서 분리된다. 철학, 과학, 진리 담론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권력을 창설하며, 권력을 비판하는 것이다(217). 그러나 사실 그 장은 권력으로부터 조직됐다(218).
경제와 정치
1. νόμος와 εὐνομία - 처음 보기에 νόμος는 법이고 εὐνομία는 좋은 법제이지만 이 의미는 유지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εὐνομία라는 용어는 희랍에서 νόμος라는 단어보다 훨씬 앞서 등장했기 때문에 εὐνομία를 모색했기에 νόμος가 창시된 것이다(218-219). εὐνομία는 재산의 공정한 배분, 부와 그 순환의 좋은 분배, 지출, 상환, 분배게임에서 이루어지는 규칙적 운동이다. εὐνομία에 대한 이런 요구에서 도시의 법적-정치적 구조인 νόμος가 생겨나는데 이를 가능케 한 조작의 전개방식을 솔론의 업적에서 살펴볼 수 있다(220).
2. 솔론의 εὐνομία - 솔론 무질서에 맞서 εὐνομία를 창시한 것이 본인의 업적이라고 규정한다(220) 부자와 빈자의 규칙 없는 투쟁을 대체하는 εὐνομία에서 분배된 것은 자산이 아니라 법적-정치적 권력이다(222). 솔론은 εὐνομία의 경제적 나눔을 정치적 나눔으로 대체하면서 경제와 정치 사이의 새롭고 복잡한 관계를 도입했다(224). 경제와 정치 사이의 이 새로운 관계란 무엇일까. 솔론의 개혁에서 극빈자는 권력을 갖지 않은 자가 아니라 권력의 몫이 가장 작은 자이다(225). 솔론의 εὐνομία의 또 다른 차이는 다음과 같다. 상고기의 형태에서는 부유할 경우 권력을 갖는데 반해 솔론의 경우, 사람들은 각자의 자산에 비례하게 권력의 몫을 보유하게 된다(226). 솔론은 권력을 남용해 부정의를 행할 경우 온 도성이 그런 남용의 피해를 입기 때문에 νόμος는 그런 남용에 대한 처벌을 정해둬야 한다. νόμος는 부의 할당 원리를 (은폐하면서) 유지하는 구실을 하는 권력 분배 원리에 주어진 이름이다. νόμος는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의 분리가 취하는 형태이다. 그 분리는 실제적인 단절의 허구이다. 우리는 화폐의 근본적 역할을 모상이라고 특징지었다. 화폐는 모든 사람들의 수중에 배분된 권력의 모상이다(227). 화폐와 법은 틀림없이 다른 자리를 차지하지만 정치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권력과 부의 게임에서 보완적 역할을 맡는다. 그 게임은 모든 사회에 존재하지만 기원전 7~6세기의 경제 변환과 뒤이은 계급투쟁은 상고기의 게임 형태를 극단으로 끌어당겼다.
결론 - νόμος는 특정한 어느 누구도 차지할 수 없는 담론이다. 따라서 νόμος는 아무 데도 아닌 곳에서, 중앙 지점에서, 공통 장소에서 말해야 한다(228). 불가침하고 불변하는 기록으로서, 모두가 공적으로 차지하는 담론으로서, 부와 불평등에 대한 무관심을 가르치고, 법의 준수를 가르치는 교육으로서, 본성으로서. 이 은폐를 만천하에 드러내도록 요구하자. 누구에 의해서도 이야기되지 않는 νόμος는 어디서 그 자체의 권위와 활력을 끌어올 것인가? 어떤 담론의 필요성이 그려진다. 군주를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νόμος 자체 분배 원리, 그것의 가치와 지혜, 그것의 바탕이 되는 기원, 인간만이 아니라 별, 바다, 동물, 식물 위에 군림하는 질서를 노래하는 담론의 필요성(229).
11강. 1971년 3월 10일
부정不淨이라는 법적-종교적 범주의 확립 - 정화는 상고기의 의례이다. 그런데 재추적할 필요가 있는 어떤 변천 과정 속에서 정화는 두 가지 대립과 연결된다. 정화는 원래 무관했던 두 가지 대립과 연결된다. 범죄 행위/무결, 무지 /지식.
Ⅰ. 호메로스에서 ‘정한 것’의 범주
처음 보면, 정화 의례는 살해, 학살, 전투, 부상 이후에 하는 것이 관례인 것 같다. 먼지와 피 등은 씻어내야 하는 부정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의례적 몸짓이 오점을 지우기 위한 것이라는 증거는 없다(235-236). 범죄-오점-제거의례-무결 회복의 도식은 호메로스 시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238).
Ⅱ. 이 전도는 어떻게 일어났는가?
이 전도는 기원전 7~6세기 종교 생활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들과 연결된다(239). 인민 계급의 의례주의 강화. 이 의례들은 따르기에 비해 규정 준수 여부를 확인하기 쉽고 잘 준수하면 직접 신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의례는 모두의 손에 닿는 곳에 있어야 한다(240). 기원전 7~6세기에 일어난 종교적 변환의 다른 측면은 부유한 가문의 전유 게임에서 벗어나는 종교 형태가 출현했다는 것이다. 선두에 디오니소스 숭배가 있다(241). 디오니소스 신앙의 특징은 개인적으로 이루어지며, 소속됐다는 징표는 무아지경에서 개인적으로 표시되고, 희생제의는 모두의 평등한 참여를 함축한다. 비밀은 어느 가문이나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참가자의 것이며 신과의 연결은 개인적이다(242). 호메로스의 신들이 세계를 나눠 가졌고 자신들의 권능과 분노로 세계를 지배했다면 헤시오도스에게 있어서 신들은 계보상의 특권이나 특별한 선호로 묶인 채 등장하지 않는다. 힘들과 영역들에 묶여 있다. 아직 κόσμος의 단일성 속에 사유되지는 않는다(243). 기원전 7~6세기에 일어난 정치권력의 대규모 재조직화 즉, 화폐를 확립하고 νόμος(법)을 수립한 바로 그 새로운 정치권력의 구성이 새로운 유형의 종교적 실천을 가능케 했다(243). 도시 내의 신이 바깥에서 역수입되고, 이 숭배를 보유한 가문은 역으로 이 바깥 위치에서 숭배를 받는다. 그렇다고 해서 귀족 가문이 가진 숭배의 특권을 박탈당한 것은 아니다. 귀족 가문은 제도적으로 이런저런 숭배를 거행하도록 임명된다. 대규모 공사, 신전의 건축, 봉헌물과 집단적 희생제의 체계는 이제 국가적 숭배의 외양을 한 숭배들의 경제적 상관물을 이룬다(245).
Ⅲ. 개인적 오점
화폐경제의 탄생, 새로운 유형의 정치권력 형성, 종교 구조의 확립, 이 모든 것은 개인에 대한 어떤 법적 정의에 이른다. 개인에 대한 이 법적 정의는 당대의 대대적 정치 변화에 일정하게 연결되는 법제에서 정식화된다. 이 법제는 상속, 장례, 살해와 관련된다(246). 이 법은 넓은 의미의 가족에게서 집단 상속권을 부분적으로 박탈하고 애도 행위를 제한한다. 그것은 법적으로나 의례적으로나 만인에게 불멸을 내어주는 것이다(247). 장례에 관한 솔론의 법제는 불멸의 일반화 가능성의 기틀을 마련했다. 불멸신앙은 지배계급에 의해 부과된 이데올로기로서, 극빈자들로 하여금 다른 곳에서 보상받을 수 있으리라 여기며 이 삶을 감내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248).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살해 관련 법제이다. 이 법제는 아테나이에서 드라콘에 의해 확립됐다. 그 법제는 다음의 것을 포함한다. 살해자를 살해하는 것을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기. 이제 살해의 효과가 아닌 행위자체의 수준에 대한 성질부여가 일어난다(고의적, 비고의적,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 살해 혐의로 고발당한 자는 의식, 축제, ἀγορά [agora/광장·시장]에 대한 접근이 거부된다. 도시 안에서 도시에 대해서 부정은 위험한 것이다(249). 호메로스의 오래된 법제, 고르튄의 입법에 명시된 δικάζειν[dikazein]에서 권력은 소송 절차의 적법성에 대해서만 개입했다. 이제 권력은 행위와 그 행위를 한 자들에 대한 법적-종교적 성질 부여의 수준에서 개입한다. 도식은 뒤집혔다. 오점 다음에 정화가 온다(250).
* 정한 것/부정한 것의 대립이 무결/범죄의 대립에 들어맞게 됐다. 개인의 배제 가능성은 사회 공간 형성의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252). 부정한 것은 도시에 위험을 퍼뜨리는 것이고 부정함에 대한 신앙은 어떤 실천의 효과이다. 살해의 효과들에 대한 정치권력의 개입이 그 안에서 꼴을 갖추게 되는 실천의 효과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과 진실이 무슨 관계일까? 부정한 죄인은 νόμος에 의해 배제된다. 부정한 것은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253).
12강. 1971년 3월 17일
상고기에 무엇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탐구는 소송 절차의 결정적인 제1요소가 아니었다. 범죄가 오점을 만들어낸 때부터, 오점이 도시에 해를 끼친 때부터, 배제가 요청된 때부터 이제 다음을 알아야 한다. 했는가 안 했는가, 누가 했는가, 어떻게 했는가(257). 오이디푸스 비극 전체는 인간의 사건(살해, 역병)과 신들의 위협의 흩어져 있는 수수께끼를 (확인된) 사실로 변환하기 위한 도시 전체의 노력으로 점철된다(258). 부정함의 효과는 곧바로 지식의 덫을 친다. 이 지식은 적용해야 할 규칙에 관한 지식이 아닌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지식이다.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자는 예언자(보는 자)가 아니라 봤던 자이다(259).
희랍 사유에서 중요했던 형상들과 정함과 질서의 드러냄 사이의 귀속관계
1/ 현자는 중간에 자리한 자(정치권력의 창설자의 자리)이며 사물의 질서를 아는 자이고 어떤 범죄에 의해서도 오점이 묻지 않는 자이다(264). 그런데 이것은 허구적 형상이며, 그 형상의 가면 아래에는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조작이 보존되어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2/ 인민권력이라는 형상은 νόμος를 준수하지 않고 연설, 토론, 투표, 유동적 의지에 의해 νόμος를 변화시키는 권력이다. 인민권력은 지식에서(정치적, 사물에 대한 지식)에서 배제된다.(265). 인민권력은 νόμος에 대해, 도시의 실존의 토대가 되는 법에 대해 죄를 범한다. 지식과 νόμος의 정한 보유자인 현자는 도시를 도시 자체에 맞서 지켜야 하고, 도시가 도시 자체를 스스로 통치하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266).
3/ 현자와 인민권력 사이에 있는 참주 - 부정한 자는 사물의 질서를 인식할 수 없다(266). 사실보다 진실, 그리고 지식을 요청하는 부정함이 아닌 지식을 방해하는 부정함에서 우리는 오이디푸스와 다시 만난다. 오이디푸스는 도시를 바로 잡고 똑바로 세운 자이지만 가장 근본적인 νόμος에 맹목적이었기에 부정해진다. 정함은 지식과 권력을 연결한다. 부정함은 지식을 가리고 권력에서 내쫓는다(267). 가장 중요한 것은 7~6세기에 정치가 대대적으로 재조직되고 재분배되는 가운데 허구적 자리가 고정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권력은 정함이 보증되어야만 접근 가능한 진실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다. 이 허구적 자리의 위치는 계급투쟁, 권력이동, 결탁과 타협의 게임으로부터 투사를 통해 탐지된다(269).
담론적 사건은 텍스트에서 일어날 수 있었을 사건을 뜻하지 않는다. 담론적 사건은 제도, 법, 정치적 승리와 패배, 요구, 태도, 반란, 반동 사이에 분산되는 사건이다. 다양체는 한 유형의 담론이 차지하는 자리와 역할, 담론을 진술해야 하는 자의 성질 부여, 담론이 말을 건네는 대상 영역, 담론이 야기하는 언표들의 유형을 정의하는 효과가 있는 한에서 담론적 사건으로 인정받고 특징지어질 수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발견되는 그런 진리의 출현을 담론적 사건으로 취급하기 위해서는 담론적 실천 수준에서 가져온 효과로 보이도록 시도해야 한다. 프리드리히 니체가 말했던 전혀 다른 것을 재발견할 것. 이 관계들의 총제를 가능성의 조건, 기능, 전유, 코드화 같은 용어들을 통해서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272~273).
구두 강의 녹취록에 보존된 단편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희랍이 진실에 부여했던 어떤 형태를, 한편으로는 진실이 권력과 맺는 관계들, 다른 한편으로는 진실이 정함과 맺는 관계들에 부여했던 어떤 형태를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가 자신에게 욕망에 대해 말한다고 여겼지만, 오이디푸스가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의 본능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의 진실의 이야기이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 수준에서가 아니라 우리의 참된 담론을 들으면서, 프로이트는 욕망이 말하는 것을 듣는다고 믿었다. 우리는 이렇게 구속 체계가 그려지는 것을 본다(275). 기표의 체계가 사건을 표시해 분배 법칙 속에 도입할 수 있게 해주는 체계라는 사실을 덧붙인다면, 기표의 체계는 오이디푸스적 구속에서 주요한 도구적 요소이다. 그러므로 기표의 질서를 전복해야 한다.
나는 역사의 차원에서 위치함으로써 텍스트성의 원리를 걷어내려고 시도했다. 다시 말해 텍스트 또는 여러 텍스트 속에서가 아니라 한 사회 내에서 다양한 담론들에 주어진 기능이나 역할의 사실 속에서 일어나는 담론적 사건을 탐지하려고 시도했다. 텍스트 바깥으로 나가서 한 사회 내에서 담론이 맡는 기능을 찾아내기, 내가 외부성의 원리라고 부르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허구의 원리와 관련해, 진리의 효과가 어떻게 진리와 무관한 어떤 것에서 생겨날 뿐 아니라 허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어떤 것에서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지 보이려고 시도했다. 나는 적도가 어떻게 화폐에서 생겨났는지 보이려고 시도했다. 사물의 질서와 인간의 질서에 관한 이 인식이 어떻게 정경분리에서 출발해 계급 불평등을 유지하는 구실로서 생겨날 수밖에 없었는지 보이려고 시도했다(278).
니체에 관한 강의
* 어떻게 니체와 더불어 진리에 의거하지 않고 진리의 역사를 사고할 수 있는가.
Ⅰ. 인식의 발명
인식은 발명됐다. 하지만 진리는 훨씬 뒤에야 발명됐다(286). 실증주의 역사에서 진리는 역사의 결과로써 주어진다. 인식은 진리의 인식이기 위해 만들어진다. 니체는 거침없이 이 함축을 풀어버렸다(287). 인간도 사물도 세계도 인식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인식은 전혀 다른 것으로부터 발생하면서 나중에 온다. 인식은 진리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는다. 진리는 나중에 온다. 진리는 참의 나눔에 낯서 것에서 발생한다(288).
Ⅱ. 진리 이전의 인식이란 무엇인가?
진리와 연결되지 않은 인식. 니체는 그것을 참인 것으로 향하는 인식의 도식화·단순화에 대립되는 순수한 ‘인식의지’로 묘사한다(288). 니체가 “인식 자체는 없다”라고 말할 땐 이는 즉자의 인식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인식의 폭력 속에서 인식 활동이 전개하면서 실행해야 할 불변의 본질적이고 사전적인 관계는 없다는 말이다. 주체-잭체 관계가 사실상 인식의 토대 구실을 하는 게 아니라 인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하는 것이다(292).
Ⅲ. 진리의 사건
1. 진리의 의지
니체는 진리의 뿌리와 존재 이유를 의지에 둔다. 이는 철학 전통과 관련해 중요한 이동이다(297). 철학 전통에서 진리-의지 관계는 의지가 진리를 받아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특징으로 갖는다(298). 진리를 의욕 한다는 것은 진리에게 자리를 내준다는 것이다. 진리에 자리를 내주기 위해 의지는 자신의 개별적 성격 일체, 욕망 일체, 폭력 일체를 제거해야 했다. 따라서 진리의 의지는 주의(attention) 또는 지혜의 형태로만 사고될 수 있었다. 신체의 제어, 욕망의 중지, 욕구의 차단의 형태로만 말이다. 니체에게 의지-진리관계는 전혀 다르다. 진리와 의지를 절합하는 것은 자유가 아니라 폭력이다(299).
2. 진리 의지의 역설
진리는 인식의 산물 내지 효과이다. 진리는 인식의 규범도 조건도 정당화도 아니다(300). 니체는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회의주의적 언명을 “진리는 참이 아니다”라는 명제에서 파생된 일련의 역설로 변환한다. 진리의 역사를 진리에 의거하지 않고 사유하기. (진리의 역사를) 진리가 존재하지 않는 요소에서 사유하기. 이 요소는 가상이다(301). 가상. 그것은 참의 무한정이다. 환영, 오류, 기만은 진리가 가상의 게임에 도입한 차이들이다. 그러나 이 차이들은 그저 진리의 효과들이 아니다. 그 차이들은 진리 자체인 것이다(302).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인식에 대한 의지는 인식의 선행성에 붙들렸다. 그 의지는 인식(감각이라는 가장 기초적인 형태의 인식)이 진리와 이미 관계를 맺었던 한에서만 가능했다. 니체에게, 인식은 진리라는 허위 언명이 야기하는 환영 효과이다. 인식과 진리를 한꺼번에 짊어지는 의지는 다음의 두 가지 성격을 띤다. 인식에 대한 의지가 아닌 권력의지. 인식과 진리 사이에 상호 잔혹 및 파괴의 관계를 수립하기. 권력 의지는 진리와 인식의 관계가 끊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파괴하는 폭발 지점이다. 권력의지는 존재에서 해방된 현실, 즉 생성이다. 그리고 생성을 드러내는 인식은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진리 없는 진리를 드러낸다.
‘진리 없는 진리’의 두 가지
- 오류, 기만, 환영인 진리. 참이 아닌 진리.
- 이 진리-기만에서 해방된 진리. 진실한 진리, 존재와 상호성을 갖지 않는 진리(304-305).
오이디푸스의 지식
『오이디푸스 왕』에는 진실된 이야기(ὀρθὸν ἔπος)를 형성하는 두 지식이 있다. 동일한 것(살해와 근친상간)을 아는 두 지식, 그것은 신탁, 예지, 점술의 형태로 공표한다. 반대로 다른 쪽 지식은 증언, 기억, 고백의 형태로 끌어내어진다. 그것은 자신이 보고 행한 것만 알 뿐 그 너머의 것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할 수 없다. 이 두 지식 사이에 오이디푸스가 있다(328). 오이디푸스는 도시를 구한 지식과 자신을 불행에 빠트린 무지 사이에 대립한다. 그런데 소포클레스의 텍스트에서 오이디푸스가 그저 단순히 알지 못하는 자는 아닌 것 같다. 오이디푸스 역시 지식의 인간이다. 그것의 성격, 그것이 행사되는 조건, 그것의 효과를 갖는 아주 특수한 지식을 가진 인간, 신과 노예의 (지식들) 가운데 있는 이 지식은 ‘참주’의 지식이다. 오이디푸스의 ‘참주제’. 오이디푸스가 행사하는 권력의 형태(328).
오이디푸스는 스스로 행복을 손에 넣고 그 행복을 지배했다. 이런 위업은 한동안 권력을 행사하고 전통을 깨뜨리고 자주 희랍 사회의 상고기적 구조를 뒤엎었던 참주 내지 입법자의 역사적-전설적 형상의 특징이다(332). 오이디푸스의 담론에서 자주 반복되는 단어 중 하나는 εὑρίσκειν(heuriskein/찾아내기)이다. 오이디푸스는 찾아내는 사람이다. 오이디푸스는 도시를 구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을 발견하려고 마음먹는다(340).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찾아내는 기술 때문에 신탁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게 된다. 신탁을 대수롭지 않기 여긴다는 것은 신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말이다. 점쟁이가 인간에게 예정해 놓은 듯 보이는 운명을 다른 운명으로 대체하는 것이 항상 가능하다는 것이다(343). 오이디푸스는 오만하게도 자신이 Τύχη의 아들이라고 큰소리치게 된다. 이 점에서 역시 오이디푸스는 전통적인 참주의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형상에 합류한다(344). 『오이디푸스 왕』은 오점을 제거하고 죄인을 수사하기 위해 선(先)-법(法)과 희랍의 법에서 쓰이던 세 가지 주요 절차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346). 각각의 지식 형태는 의례에 따라 시행되는 권력 행사와 연결된다. 소포클레스의 비극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오이디푸스의 무지나 무의식이 아니라 다수의 지식들, 그 지식들을 산출하는 다양한 절차들, 지식들의 대결들을 통해 이뤄지는 권력투쟁이다(347).
우리의 사유 체계 안에서는 지식을 권력의 관점에서, 그러므로 과잉·위반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대단히 어렵다. 우리는 지식을 정의, 순수한 ‘무관심성’, 인식에 대한 순수 열정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우리는 지식을 의식의 관점에서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오이디푸스와 오이디푸스 우화를 부정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오이디푸스를 지식의 결함 쪽에 놓는다. 신들의 신탁과 도시의 증언이 그것의 특정한 절차 및 그로부터 산출된 지식 형태에 따라 과잉과 위반의 인간으로 몰아 쫓아낸 권력-지식의 인간으로 오이디푸스를 받아 들기보다는 말이다. 오이디푸스에 관한 모든 것, 오이디푸스를 둘러싼 모든 것은 과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