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에 없던 불시착
파로는
포르투갈 남쪽 끝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인구 7만이지만 알가르브 지방의 어엿한 행정수도로, 지방 내 가장 큰 국제공항을 가지고 있다. 파로는 자체 관광지로서 보다는 해당 지방의 관문으로서 벤나질동굴, 라고스 해안절벽을 보러 가기 위한 남부지방 교통 중심지이자 기착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예정에 없던 파로여행
세비야에서 포르투로 넘어가기 위해 세비야 공항에서 라이언에어에 탑승했다. 라이언에어는 여러모로 까다로운 저가항공이다. 기내 탑승 시 가방의 사이즈를 재고 초과하면 현장에서 비용을 부과할 정도로 깐깐하다. 하지만 그만큼 저렴하고 무엇보다 운항 편이 다양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이미 유럽 저가항공과 관련된 예측불가 상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나는 긴장을 놓지 않았다. 기내에 탑승해 좌석에 자리를 잡고 출발까지 다행히도 일사천리였다. 계획대로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여서 일행과 웃고 떠들며 1시간이 채 안 되는 비행시간을 즐기고 있던 그때, 기내방송이 나오며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비행기는 곧 목표를 바꿔 빠르게 움직여 1시간 후, 파로라는 도시에 어수선한 승객들을 늘어놨다. 약 200명 정도 되는 승객들은 항공사의 후속대처를 기다리며 공항에 하나 둘 자리를 잡았다. 저녁 9시를 넘은 시각, 일부 승객들은 라이언에어가 대체 항공편 혹은 교통편을 마련하지 않을 것이라 판단해 일찌감치 숙소를 잡아 공항을 떠났고, 대부분은 하염없이 기다렸다. 나 역시 자리를 비울 경우 혹시나 불이익을 받진 않을까 불안해하며 공항에 자리를 잡고 기다렸다.
3시간 후, 밤 12시가 넘은 시각 라이언에어는 지친 승객들에게 공식 입장을 전달했다. 짧게 말해 알아서 가고 비용은 청구하라는 통보였다. 저가항공의 피해자가 내가 될 줄이야.
하지만 벙쪄있을 필요가 없다. 한국인의 신속한 실행력을 발휘해 다음 날 기차표를 바로 예매하고 빠르게 호텔을 찾았다. 잡히지 않는 우버를 열심히 부르며 시내까지 도착해 체크인하고 잘 준비를 하니 새벽 2시였다. 나와 일행은 라이언에어를 저주하며(?) 지친 몸을 누였다.
다음 날 오후에 포르투행 기차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아쉽게도 멀리까지 나가지는 못했다. 다행히 파로 시내는 크지 않아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다. 자그마한 시내를 구경하고 항구까지 걸어가서 근처 섬까지 운행하는 왕복 셔틀 페리에 탑승했다. 오랜만에 바닷바람을 맞으니 그래도 와서 좋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점심으로는 일본식 초밥집에 방문했는데 뷔페식이었고 꽤나 저렴했다. 포르투갈에서 일식 스시를 이렇게 저렴한 가격에 또 좋은 품질에 먹게 될 줄 몰랐기에 단순하게도 또 기분이 좋아졌다.
잠깐 들르게 됐지만 지친 방문객에게도 청량한 날씨와 여유로운 분위기를 선물해 준 도시, 그렇게 파로는 우리에게 계획에 없던 특별한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회항하게 된 비행기 안의 탑승객 중에는 스페인 사람들도 많이 있었는데, 회항 공지가 나오고 나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오히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기대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그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인생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싶다. 살면서 어떻게 모든 일이 계획대로만 될 수 있을까. 효율 위주의 관점에서 물러나 인생이 주는 다양한 경험을 포용하고 삶의 면면을 즐길 수 있는 멋진 태도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