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의 도시 그리스 아테네

그리스 정교 행사에서 만난 할머니

by 동동
아테네는

그리스의 수도로, 중심부에는 64만 명이 거주하지만 연간 이에 10배를 웃도는 8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도시이다. 지중해성의 따사롭고 건조한 기후를 자랑하는 아테네를 연상하면 시원한 바다가 함께 떠오른다. 아테네 곳곳에는 그리스 및 로마 시대의 유적지가 있어, 걸어서 시내를 탐방하기 좋다. 특히 관광지가 중심부에 몰려 있기 때문에 부지런한 여행객들은 2박 3일 내에 알맹이만 쏙쏙 빼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먹거리로는 꿀(아티키), 그릭요거트, 기로스(고기, 야채를 납작한 빵 안에 넣은 길거리 음식)와 무사카(라자냐와 비슷하게 생긴 음식)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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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사카 / 기로스 / 토핑을 얹은 그릭요거트


짧은 만남

당시 나는 타지생활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어하고 있었다. 새로운 회사에 계약직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군중 속에 고독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가족과 떨어진 타지에서 지내다 보니 직장을 마치고 숙소에 와서도 종일 혼자에 마음 둘 곳 하나 없어 이 악물고 오기로 버티던 시기이다.


그러다 휴가시기가 맞물린 덕에 조금 멀리 떠날 수 있게 되었다. 기분전환 차 어디로 갈까 고민하다가 그리스라는 곳에 4박 5일 짧게 여행을 가기로 결정. 그때는 어디론가 떠나면 둘 곳 없는 마음이 달래 지지 않을까 막연한 기대를 하고 설레는 마음 반, 절박한 마음 반으로 여행길에 올랐다.


하지만 미리 말하건대, 그리스는 밝은 분위기의 휴양지이다. 특히 6월에는 더욱 그렇다. 따뜻하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지중해의 햇볕 아래 가벼운 복장의 서양인, 동양인 등이 가족 단위로 삼삼오오 몰려다닌다. 내가 무엇을 바란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분위기에서 군중 속의 고독은 더욱 심해져 버렸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아크로폴리스 근처 언덕에서 동방정교 행사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침 숙소도 근처고 딱히 할 일도 없었던 나는 언덕 위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중에 찾아보니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대축일(Feast of Saints Peter and Paul)이었다. 매년 6월 29일에 개최되는 행사로, 사도 바울의 사역기가 적혀 있는 아레오파고스(신의 언덕)에서 진행된다고 한다. 당시에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하고 가볍게 산책 나온 나는 선선한 저녁바람을 맞으며 아레오파고스 앞 벤치에 앉아 행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경찰과 군악대 등이 제자리를 찾으며 어엿한 국가행사의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마침 내가 앉은자리는 차에서 내린 고위급 및 종교인물들이 걸어가는 길 근처에 있는지 그 자리를 경계로 경비원들이 벤치를 기점으로 군중을 정리했다.


그 때, 내 옆에 독실한 그리스 정교로 보이는 빨간 머리의 현지 할머니가 자리를 잡았다. 나는 옆에 둔 가방을 치우며 할머니가 앉기 편하게 조금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할머니는 나와 특별히 거리를 둘 생각이 없으신 듯했다. 그분은 나에게 다가와 짧은 영어로 어디에서 왔느냐, 이름이 무엇이냐를 물었다. 나도 간단한 영어로 나의 국적과 이름을 밝히고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분은 이 행사가 매우 중요한 행사며, 높은 사람들이 올 거라고 나에게 언질을 줬다. 그러려니 짐작은 했지만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할머니의 말씀을 열심히 들었다. 그 분은 또 나에게 본인이 직접 뜬 이콘(종교화) 자수를 보여주며 신앙심을 내보였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며 조금 기다리다 보니 검은 옷을 입은 종교인들과 양복을 차려입은 정치인(으로 추측)들이 하나둘씩 차에서 내리며 길을 따라 아레오파고스로 걸어갔다. 옆에 앉아 계신 할머니는 중요한 사람이 차에서 내려 걸어올 때면 알 리가 없는 나에게 열심히 설명해 줬다. 저 사람은 시장이고, 저 사람은 그리스정교의 어떤 사람이고.. 특히 대주교가 걸어갈 때에는 너무나 급하셨는지 주교에게 축복을 구하러 황급히 다가가셨다. 제지당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일 없이 주교는 할머니에게 빠르게 축복을 내려 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행사 현장 중심으로 빠른 발걸음을 옮겼다.


할머니 역시 나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허겁지겁 군중을 따라 현장으로 가셨다. 나도 벤치에서 일어나 행사를 조금 구경하다가 한 김 식은 지중해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언덕을 걸어 내려왔다. 참고로 이 날은 내 여행의 마지막 날이었다. 비록 할머니와의 짧은 대화였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과 가볍게 나눈 이 날의 만남은 그날 저녁의 바람과 함께 그리스의 기억으로 나에게 새겨졌다. 새빨간 머리로 염색한 선한 눈의 그리스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지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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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교의 행사, 명당에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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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직접 수놓은 이콘화 / 아레오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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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의 그리스 일반 가정집 건물과 숙소에서 바라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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