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로, 마지막 날

타지에서 만난 한국인의 친절과 예상 밖의 운

by 동동
카이로는

아프리카 대륙 북부에 있는 국가 이집트의 수도로 아프리카와 중동을 연결하는 도시이다. 이집트는 피라미드 등 각종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명하다. 또한 고대의 선진 의료기술과 농업 및 관개 건축기술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최근에는 기자 피라미드 인근에 대형 ‘그랜드 이집트 박물관(GEM)’이 개관하여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물가도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투박하지만 친절하여 즐길 거리가 많은 관광 및 상업, 산업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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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수 좋은 마지막 날

이집트와 나의 인연은 두 차례 있었다. 2013년, 러시아 유학 중이었던 나는 친구들과 이집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이집트는 러시아 사람들이 자주 찾는 휴양지인데, 마치 한국의 동남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2013년은 위험한 시기였다. 군부 쿠데타로 인해 카이로에는 각종 시위와 위험이 넘쳤다. 안 그래도 와일드(?)한 곳인데, 정치상황으로 인해 평소보다 더 안전하지 못하다는 말을 들은 우리는 과감하게 카이로 방문을 포기했다. 대신 홍해 근처의 휴양도시인 후르가다를 기점으로 남부의 룩소르와 아스완만 방문하고 돌아왔다. 이를 들은 사람들은 이집트 가서 피라미드도 못 보고 오면 어떡하냐고 놀렸다. 하지만 왠지 나는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10년 후 방문을 예감했기 때문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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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다녀온 룩소르, 아스완



2023년, 약 1년간 카이로에 머무르며 일을 하게 되었다. 1년 후, 귀국할 당시에는 타지생활로 인해 많이 지쳐있었다. 그렇지만 마지막 날인만큼 가고 싶었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한 후 좋아하던 디저트를 먹고 공항에 가서 기다릴 예정이었다. 먹고 싶었던 식사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음식이다. 쫀득한 꿔바로우와 새콤한 소스가 잘 어우러져 내 입맛에 꼭 맞았고, 마지막날에는 이 식당을 찾아야지 결심했다. 맛있게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하필이면 현금 계산밖에 안 된다는 것. 현지 계좌와 카드를 모두 해지하고 현금도 달러밖에 남아있지 않은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달러로 계산이 안되냐고 다른 결제수단이 없다고 읍소했지만 냉담한 반응만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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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게 먹은 중국음식, 오른쪽이 꿔바로우


어떻게 하지 머리를 굴리는 와중에 한국 아저씨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분들에게 부탁해보자 하는 생각에 대각선 건너편에서 반주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던 그분들에게 용기를 내 다가갔다. 나는 사정을 설명하며 한국 계좌로 돈을 보내드릴테니 현금을 빌려주시면 안 되겠냐고 사정했다. 그분들은 당황했는지 처음에 굳은 표정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역시 너무 무례한 부탁이었나, 오만 생각이 드는 와중에 한 분이 계좌로 돈을 보내줄 필요 없다, 우리가 지불해 주겠다라고 대답했다. 예상외의 반응에 당황한 나는 그럴 수 없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꼭 돈을 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아저씨들은 오히려 역정을 내시며 타지에서 한국인들 사이에 그런 게 어딨냐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라고 나를 밀어냈다. 나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식당을 나올 수 있었다. 타지에서 한국인들의 투박한 정을 느낀 에피소드로 지금까지도 그 마음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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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ISHI 피스타치오 쉐이크, 강추한다


그 후 우버를 불러 택시를 타고 최애 피스타치오 쉐이크를 마지막으로 음미한 후 공항으로 갔다. 이때까지 쌓인 마일리지로 카이로에서 두바이행 비행편은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를 했고, 그 후 두바이에서 인천까지 장거리 비행은 고생한 나를 위한 선물로 추가비용을 지불해 엑스트라 레그룸 좌석을 예매했다. 항상 길게만 느껴졌던 네 시간 비행이 비즈니스 좌석에 있으니 너무 짧아 아쉬웠다. 그 후 두바이에서 4시간을 쉬고 인천 가는 비행기를 타려는데 말로만 들었던 그 일이 나에게도 벌어졌다. 수속을 하던 직원이 내 티켓을 찢은 것.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이 행동의 의미는 내가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되어 새로운 티켓을 발급받는다는 뜻이다. 마지막 날에 이렇게 운이 좋을 수 있다니, 카이로에서 있었던 힘든 일들이 다 날아가는 느낌이었다. 고생했다 잘 가, 하고 인사를 받는 것 같았다. 마지막에 이렇게 환송해 주다니, 고맙다 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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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석과 창 밖




모든 일에는 마무리가 있듯이 카이로 생활도 힘들었지만 그 끝이 있었다. 당시에는 힘들게만 느껴졌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만 남는다. 내 돈을 내고 가는 여행도 내 맘처럼 흘러가진 않지만 뒤돌아보면 그 어긋난 순간들 안에서 가장 좋은 추억을 만날 수 있었다.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면 그 또한 완벽함을 위해 발을 동동 구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어떤 선물을 받을지 우리가 감히 예측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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