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에서 직장인이 되어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이다. 제정 러시아 때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전된 것을 제외하고는, 러시아의 수도는 줄곧 모스크바였다. 모스크바에는 현대 러시아를 볼 수 있는 금융지구(모스크바시티) 뿐만 아니라 소련시대, 그리고 제정 러시아 시대의 건축물까지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우리에게 테트리스 성당으로 유명한 바실리성당, 붉은광장과 크렘린궁, 스탈린의 7자매 등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10년 전
대학에서 주관한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통해 1년 간 모스크바에 지내게 되었다. 소련이 해체된지 20년이 지났지만, 그 때까지도 어른들은 '소련'이라는 국가명이 더 익숙했던 것 같다. 내가 모스크바행 비행기를 타기 몇 주 전, 삼촌이 "그래, 소련에 간다고?"라고 했던 말씀이 생생하다. '소련이 붕괴된지 20년이 지났는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도착해서 본 러시아는 공산주의 탈을 벗고 20년이 지났음에도 소련시대의 건물과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나와 같은 나이대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소련에 살아본 적이 없었지만, 학교 선생님만 하더라도 젊은 시절을 소련에서 보냈기 때문에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었던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는 공산주의라 하면 터부시되고 좋지 않은 이미지만 한가득인데, 소련 시절을 지난 사람들은 소련이 망했고 힘든 시절을 겪었음에도 그 시절을 추억한다는 게 내 생각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어쨌든 가난한 유학생이었던 나와 친구들은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아껴가며 열심히 지냈다. 택시를 타본 적은 손에 꼽고 매번 지하철을 이용했고,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집 앞 마트를 놔두고 트램을 타고 대형 할인점에 가서 5L짜리 물을 끙끙대며 이고지고 왔다. 돈은 없었지만 어렸고, 처음 지낸 해외생활이라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게 지냈던 기억이 난다. 러시아는 양기가 있다고들 한다. 그게 정말인지는 모르지만 신기하게 나와 여자인 친구들은 살집이 불었고, 남자 동기들은 다들 말라깽이가 되어 갔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디저트가 맛있어서 그런 탓이 크지 않을까 싶다. 여담으로 내가 가장 사랑한 디저트는 '나폴레옹'이었는데, 너무 맛있게 먹었던 기억에 계속 언젠간 다시 찾으리 벼르고 있었다.
10개월밖에 되지 않던 유학생활이 그때는 왜 그렇게 힘들고 한국이 그리웠는지 모른다. 지나고 나면 더 즐기지 못해 아쉬운 기억만 남고 당시에는 순간의 장점은 느끼기 힘든 것 같다.
10년 후
유학에서 돌아오고 10년이 지나, 러-우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출장 차 모스크바를 다시 찾을 기회가 있었다. 물론 일정이 빡빡해 마음 놓고 즐길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일과 후에는 최대한 기운 내 시내를 돌아다니려 노력했다. 출장으로 왔기 때문에 운 좋게도 회사 돈으로 붉은 광장과 의회(두마) 바로 앞에 있는 호텔에 묵을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 꽤 기분이 좋았다. 바로 앞에 쇼핑몰과 러시아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있기 때문. 덕분에 일이 끝나고 난 저녁에도 가볍게 옷을 갈아입고 산책차 붉은 광장에 다녀올 수 있었다.
당시는 크리스마스가 조금 지난 때라서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남아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찾은 것은 바로 그리워하던 디저트 '나폴레옹'. 교환학생 시절에는 마트에 가서 가장 싸고 먹음직스러운 케이크를 골라 먹었지만, 이번에는 시내 중심의 핫하다는 카페에 가서 딱 하나를 시켜 먹었다. 하지만 내가 더이상 유학생이 아니라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그 때 상상하던 그 맛이 아니었다. 추억은 항상 더 빛이 나 보이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도 추운 거리를 돌아다니고, 쇼핑몰에 가서 이 옷 저 옷을 입어보며 분위기와 가능성을 한껏 만끽했다.
이후 지하철을 타고 일부러 자주 가던 'Ashan(Ашан)'이라는 마트 체인을 찾았다. 다행히 10년이 지난 그 때에도 망하지 않고 잘 남아 있어 주었다. 아직까지도 연락하는 유학시절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에 사진을 찍어서 남기니, 친구들이 반가워하고 향수에 젖는 걸 보며 나 역시 기분이 좋았다. 딱히 살 건 없었지만 예전에 자주 먹었던 것들을 구경하며 슬슬 돌아다녔다. 현대사회의 추억탐방은 대형마트라니, 조금 우습기도 하다.
물론 일을 하러 간 터라 시간이 촉박했고, 프로젝트에 대한 압박으로 인해 일과 후에도 온전히 마음 놓고 즐기지 못했다. 교환학생때에는 돈이 없었지만 자유와 편안한 마음이 있었고, 사회인이 되니 돈은 있지만 마음 한 구석에 무거운 책임감이 자리잡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완벽한 때는 없다는 게 새삼 느껴진다. 다만 그때그때 장점과 내가 가진 것에 집중하며 현재를 보내는 방법이 최선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