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백수의 직업과 인생에 대한 고찰
얼마 전에 가족모임차 의림지에 다녀왔다. 의도하고 간 건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의림지에는 행사가 진행 중이었는데, 줄지어 늘어선 푸드트럭에 전통 수공예제품 및 지역특산품 체험부스도 있었고 미니 놀이공원까지 가히 본격적이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나도 행사분위기에 들떠서 아주 오랜만에 투호, 활쏘기 등 전통놀이도 체험하고 해먹에서 멍 때리기 등 가족들과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의림지역사박물관 앞 공원 잔디밭에서 사람들이 둥글게 원을 그린 가운데 진행자의 주도 하에 행사가 한창이었는데, 전통옷을 입은 곡예사가 집중해서 줄타기를 하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2m 정도 띄워진 줄 위로 곡예사가 의지하는 것 하나 없이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조심조심 그러나 과감하게 줄을 건너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넋을 놓으며 곡예사가 줄을 건너는 모습을 지켜보았고 그가 반대편 끝까지 다 건너자 관객들 사이에 감탄의 박수와 안도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요즘 다른 직업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내가 이제 직장이 없기 때문에 이것저것 물색하는 가운데 이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던 다양한 직업과 그 안에 서린 노고가 한층 더 깊이 다가온다. 줄타기 곡예사도 그중 하나가 되었다. 아마 협회가 하나(혹은 여러 개) 있겠고, 일을 분배하거나 혹은 각자도생이려나. 하는 생각들을 하며 그날 하루가 지나갔다.
그다음 주에는 운이 좋게도 정명훈 지휘자의 공연 티켓을 구하게 되어 기대를 가득 안고 공연을 보러 다녀왔다. 아마 나처럼 클래식을 모르는 문외한도 그 이름을 들어봤을 정도면 정명훈 지휘자의 명성은 말이 필요 없지 않을까 싶다. 클래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집중해서 들어봐야지!라는 다짐이 무색하게 배경지식이 없는 나는 십 분도 안 되어서 잡생각의 소용돌이에 빠져든다. 협주자의 양말색깔이 정열의 빨간색인 건 이유가 있을까..라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다가 이내 지휘자라는 직업에 대해, 정명훈 지휘자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냥 강남 어디쯤 혹은 삼청동 단독주택가에서 산책하는 그를 그려보다가 이내 왠지 모르게 지난 주말에 봤던 곡예사에게까지 생각이 닿았다.
요즘 많은 직업은 AI가 대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새로운 직업이 생기겠지만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은 얼마나 될까? 내가 영위하던 통번역사라는 직업도 그중 하나다.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은 정확한 프로토콜을 따르는 업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판사가 판례와 법조문만을 기반으로 판결을 내린다고 가정하면 그는 대체될 수 있는 직업이 되겠다. 그에 반해 대체되지 않는 직업은 창의력을 기반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인데, 예술가도 그중 하나이다.
하지만 인생은 이처럼 간단하지 않다. 어떤 예술가는 힘겹게 살아가고 다른 예술가는 집 앞 삼청동 거리를 거닌다. 개인의 역량 차이도 있겠지만 그가 선택한 분야가 사양되는지 인기를 얻는 분야인지에 따라 그 안에서 생업을 영위할 수 있는 종사자의 비율 등 많은 것들이 좌우된다. 하지만 직업을 선택할 때 그걸 어떻게 예측할 수 있을까? 참고로 내 주식은 파란불밖에 없다. 나는 다양한 산업의 근 미래도 예측하지 못하는데 직업이라는 중대사에서는 내 결정이 옳을 것이라는 보장이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지금까지 묵묵히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해오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이 듦과 동시에 그런 용기와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가, 만약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고 보상도 잘 따르지 않는다면 과연 그 모든 것의 의미는 무엇이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나 같은 부족한 사람이 그런 분들의 노고와 깊은 뜻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생각 끝에 결론을 내렸다.
모든 인생은 시지프스와 같은 무의미한 바위 굴리기의 연속이 아닐까. 어떤 보상이 있건 없건 결국 혼자서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리고 그 바위가 다시 건너편에 굴러 떨어지면 그렇게 무의미해 보이는 반복을 묵묵히 이어 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게 바로 스스로의 존엄(dignity)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생의 의미는 남이 부여해 주는 것도, 인정해 주는 것도, 돈으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혼자서 반복하는 매일의 노고와 치열한 싸움 그 자체인 것이다.
이렇게 거창하게 쓰니 새삼 웃기다. 당연한 말 아닌가?
나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마치 성당에 들어갈 때와 나와서 주중에 생활할 때가 다르듯, '아 그건 알겠고 근데 일단' 하면서 나 스스로의 기준과 존엄보다는 돈과 보상, 인정을 좇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아무런 인정, 보상도 얻을 수 없는 상황이 되니 나만의 기준과 존엄이라는 주춧돌 없이 쌓아온 모래성이 하릴없이 무너지고 있다.
나만 이런 걸까? 아마 많은 한국인들이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일단 공부를 잘해야 해, 일단 대학부터 가, 일단 취업하고, 결혼하고... 이런 커리를 따라온 많은 사람들은 숙제를 끝내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기준을 세우기보다 남의 시선을 만족시키는 것이 더 익숙하고 편하다. 나 역시 내 길을 개척한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해서 오히려 누군가 나에게 뭔가를 하라고 시키면(마치 수능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할 자신은 있는데 갑자기 스스로 정해서 만들어 가라고 하니 황당하여서 길 잃은 아이처럼 황망히 서 있을 따름이다.
AI 대변혁(!) 시대에 나와 같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리라 생각한다. 그런 때에 의림지에서 외줄 타기를 하던 곡예사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세상엔 이처럼 멋진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데, 스스로 개척하려는 의지와 자신의 선택을 믿어주는 힘이 가미되어 찬란한 빛을 발한다. 그게 돈이 되건 안되건, 인정을 받건 못 받건 어떤가. 인생 자체가 불완전한 자신을 연마해 나가며 자기 존엄을 지키는 과정 그 자체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