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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테크니컬라이터를 '굳이' 채용하는 이유

by 피넛버터

대부분의 회사는 테크니컬라이터를 ‘안 뽑는 선택’을 하면서 시작한다. 회사 입장에서는 당장 제품을 생산해서 매출을 올려야 하는 시급함에 비해 '기록'과 '공유'는 부차적인 요소기 때문이다. 보통 테크니컬라이터를 채용하는 회사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곳이다.


그렇기에, 보통 회사가 어느 정도 조직이 갖춰지고 살짝 먹고살만해졌을 때 테크니컬라이터를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먹고살만해졌다는 의미는, 조직은 커져가고 생산하는 제품 라인업과 브랜치는 복잡해졌으며, 이걸 회사 내부와 외부에 공유해야 하는데, 도무지 정리가 안되고 뒤죽박죽이 되는 시점이다.


참고로 내가 이 브런치북에서 말하는 문서화란 어떤 국제 표준화나 인증 등의 절차에 따라 반드시 형식을 갖춰 제출해야 하는 즉, 어딘가에 '검사'받기 위해서 작성해야 하는 그래서 외부 기관에서 정해준 형식대로 채워 넣어야 하는 문서 작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런 '기관 제출 용 문서'는 테크니컬라이터를 특별히 채용하지 않는다. 이미 내용의 기준과 포맷이 명확하게 정해져 있기 때문에, 관련 부서에서 알아서 작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 회사에서 테크니컬라이터를 '굳이' 채용하는 경우는 언제일까. 내 경험이 IT업계에 한정되어 있기에 이에 기준해서 적어보려 한다.


많은 회사가 처음에는 이렇게 생각한다.

“개발자 혹은 엔지니어가 제일 잘 아니까, 문서는 개발자가 쓰면 되지.”


하지만 회사가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곧 문제가 드러난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1단계: 개발자가 문서를 (쓰기 싫지만) 일단 썼다. 본인 이해 기준으로 쓰여서 독자가 이해하기 어렵다. 심지어 같은 팀에 있어도 다른 컴포넌트를 개발하는 동료는 이 문서를 이해하지 못한다.

2단계: 팀마다 부서마다 문서 형식, 용어 및 구조가 제각각이다.

3단계: 문서가 업데이트되지 않고 방치된다. 도대체 이 문서가 어느 제품 버전에 해당하는지 표기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결국 아무도 이 문서의 주인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신입 온보딩이 느려지고,

QA / CS / 영업 / 파트너 문의가 폭증하며,

"그거 문서에 있어요”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 반복된다.


이 지점에서 회사는 깨닫는다.

“문서 작성은 부가 업무가 아니라, 전문 역할이구나.”


그렇다면, 특히 IT 회사에서 테크니컬라이터가 더 필요한 이유가 뭘까?


IT 회사의 특징은 이렇다.

기술 변화가 빠르다. 지난주에 새 버전 릴리즈 한 것 같은데, 이번 주에 또 패치가 있단다.

제품이 추상적이다. 손에 만져지는 물성이 없기에 말과 도식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만든 사람 아니고서야 이해가 어렵다.

태평양만큼 방대한 IT영역에서 엔지니어도 각자가 경험한 필드와 기술 이해도가 제각각이다

IT라는 특성상 제품이 특정 국가에만 판매되는 경우는 드물며 글로벌 확장이 잦다


그렇기에, 문서 없이는 스케일이 불가능하며 '지식 정리 담당자'가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그런데, 이 산업에 오래 있다 보니 유독 우리나라는 테크니컬라이터 채용에 대해서 더 야박하다는 느낌을 받아왔다.


국내: 제품 사용에 문제가 생기거나 제품의 사양에 대한 문의가 있으면, 같은 회사 동료에게 (다짜고짜) 바로 전화를 건다. 작은 회사일 수록 이런 방식은 만연하다. 그나마 이메일이나 내부 메신저 앱으로 문의하고 기다리는 문화가 있다면 그건 양반이다.

해외: 같은 상황에서, 이러이러한 게 문제이고 궁금한데 관련 문서가 있나요 로 질문이 시작하는 경우가 월등히 많다.


국내는 같은 나라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같은 한민족(?)이라는 이유로 뭔가 바로바로 처리해줘야 한다고 여긴다. 이런 문화에서는 문서화의 필요성이 체감되기 어렵고, 문서를 만들어도 결국 사람을 찾게 된다.


해외 (주로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의 경우, 일단 기술 문의에 1:1로 대응하는 인건비가 예전부터 높았기 때문에 뭔가 프라이빗한 대응을 받으려면 티켓을 득한 후 기다려야 한다. 몇 시간이 될지 며칠이 될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회사가 제공하는 문서를 통해 스스로 해결하는 게 본인에게 이득임을 일찍부터 체감하고 있다.


그래서 문서와 실제가 다른 부분이 있다면, 제품 사용자는 굉장히 강하게 클레임을 걸 수도 있으며, 이는 다시 문서화의 중요성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테크니컬라이터라는 직업을 '별도로' 탄생시킬만한 충분한 배경이다.


구조적으로 보면, 2018년 이후 최저시급이 큰 폭으로 오르며 한국도 더 이상 ‘사람으로 버티는 게 싼 나라’는 아니다. 2025년 올해는 10,000원을 이미 넘었다.


여기서 궁금하다.


그러면 테크니컬라이터를 '굳이' 채용하지 않는 회사는 과연 어떤 회사일까. 사람 갈아 넣기가 아직 가능한 회사다. 핵심 인력이 오래 버티고 있고, 야근과 개인 헌신이 당연시되고,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정리”가 반복되는 회사다.


테크니컬라이터는 이런 회사에서 '사치'로 본다.


정리해 보자.


문서화에 대한 프로세스나 담당자가 없으면, 지식이 필요한 순간이 나타나면 에이스가 모든 걸 설명한다. 그 사람이 나가면 지식도 나감을 의미한다. 테크니컬라이터는 문서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회사가 사람 의존 조직에서 시스템 조직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가장 분명한 신호다.


회사가 계속 흥하고 싶다면, '굳이' 테크니컬라이터를 채용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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