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굴데굴 땅콩트립 | 쿠바 편
쿠바의 신고식

변기커버가 필요해

by 정땅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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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신고식


멕시코시티에서의 짧고 아쉬운 여행을 끝내고 다시 3시간을 날아왔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아바나의 광경은 다른 도시들의 야경과는 퍽 달랐다. 도시가 정전이라도 된 듯 어두컴컴했다. 아바나 공항에 내렸다. 느릿느릿 움직이는 컨베이어 벨트를 한참 지켜보다 공항 화장실에 들른 나는 그곳에서 생각보다 빠르게 쿠바의 거친 신고식을 당했다.


‘다리 근육 키워가세요. 스쿼트 하며 볼일을 봐야 하니까요’라는 후기를 이렇게 빠르게 만나게 될 줄이야. 저 글을 읽고 ‘다 포기할 수 있지만, 변기만은 편하게 쓰고 싶어!’라며 나는 에어비앤비를 이잡듯 뒤져 멋진 집이 아닌 ‘변기 커버’가 있는 집을 예약했다. 그런데 그 노력이 무색하게 쿠바는 커버 없는 변기로 나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여기는 아바나 국제공항. 쿠바의 수도.

쿠바에서 가장 큰 공항의 화장실 첫 번째 칸입니다.

변기 커버는 없습니다.

화장실에서 쿠바의 매운 첫인사를 건네받고 아직 정신을 못 차릴 때쯤 입국장을 나오자 호스트가 예약해준 택시 기사가 나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줘’ 그에게 잠시 기다려달라 하고 2층 출국장으로 뛰어 올라가 ATM기를 찾았다. 1층 입국장과는 다르게 한산하다. 급히 쓸 돈을 조금 뽑고 우리가 탈 택시를 향해 기사를 따라 주차장으로 갔다. 쿠바를 떠올리며 상상한 클래식하고 컬러풀한 멋진 올드카는. 없었다. 7살 때쯤 아빠가 몰던 티코? 프라이드? 만한 차가 잔뜩 찌그러진 채 주차되어 있었다. 이게 아직 굴러간다고? 창문으로 손을 넣어 잠금장치를 풀고 차 문을 열었다. 뒷좌석에 올라 지친 몸을 기대자 쿠션의 스프링이 몇 개인지 셀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창문을 올리고 내리려면 한참을 손잡이를 돌려야 했다.

리얼 쿠반 올드카였다.

창을 넘어 들어오는 바람에선 매캐한 매연 냄새가 났다. 왜인지 차가 한 대도 없는데 달릴수록 더 심하게 매연이 들어왔다. 배기관에 코를 박고 달리는 느낌이었다. 들어온 매연을 내보내려 창문을 활짝 열어도 오히려 더 독한 매연이 들어올 뿐이었다. 한참을 달리고서야 깨달았다. 이 매연은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차가 내뿜는 매연이 바람을 타고 차 안으로 그대로 들어온 것이라는 것을.

쿠바의 아주 독한 두 번째 인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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