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정확하게는 무언가를 써서 온라인에 게재하려니 부끄럽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페이스북이 흥행하던 때부터였습니다. 그래서 한동안 온라인에 글을 잘 쓰지 않았습니다. 원체 겁 많고 소극적인 성격도 한몫했겠지만, 어떤 요인이 내 소심한 성격을 자극했는지 고민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이 세 가지가 문제 같습니다.
온라인 환경
웹사이트에 무언가를 게재한다는 것은 적어도 두 가지 의미에서 노트에 기록하는 것과 다릅니다. 첫 번째는 대중에게 공개가 된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복제가 용이하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나보다 이 주제를 잘 아는 누군가에게 노출될 수밖에 없고, 이곳저곳 퍼져나가 영영 지울 수도 고칠 수도 없게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이 동시에 일어나게 되면 영원히 부끄러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안이나 사실에 대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정확하게, 또 많이 알고 있을 확률은 극히 낮습니다. 사실상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옳아요. 내가 설사 어떤 주제에 관해 깊이 연구한 학자라 하더라도, 내가 실험에 사용한 물질 A에 대한 것은 재료공학을 전공한 김단단씨가, 실험에 사용한 장비 B에 관한 것은 장비 담당자인 최물렁씨가 더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요.
문제는 웹사이트에 게재한 글은 무한히 많은 사람들에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친구 한둘을 모아놓고선 말하기가 쉽지만 숫자가 늘어날수록 - 예컨대 300명쯤 사람들이 모인 강의실을 생각해 보자 - 마음이 영 불안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느끼기에 온라인 환경은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진 청자가 수백 명 모인 강연장에서 떠드는 것 같습니다. 웹사이트에 게시된 글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분명히 그중에는 전문가가 넘치도록 많기 때문입니다.
더 무서운 일은 디지털화된 자료는 너무나 쉽게 복제가 되고 퍼져나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단 한 사람만 어떤 글을 복사하고 다른 곳에 게재한다면 그 사본은 더 이상 원작자가 손댈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잘못된 내용을 수정하거나 삭제하고 싶어도 원본에서 갈라져 나온 사본은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증식하게 됩니다. 이렇게 사본이 다시 사본을 낳고 또 사본이 생기다 보면 이제는 걷잡을 수 없게 되어 내 글은 웹 상을 영원이 떠다니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어요. 중학교 때 썼던 댓글이 박제가 되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 아이디를 검색하면 엄한 개인 홈페이지에서 댓글을 볼 수 있었습니다.
게시와 발행
페이스북은 글이나 사진을 담벼락에 '게시' 합니다. 그리고 그 글을 플랫폼이 이곳저곳 퍼 나르고, 사람들은 이메일을 받듯이 페친의 글을 받아 봅니다. 브런치나 요즘의 많은 블로그 서비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적어서 포스트를 '발행' 하면 RSS 서비스나 메타블로그 사이트들이 이를 '게시'합니다. 저는 이게 글쓴이 입장에서 굉장히 공격적인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마치 내가 쓴 글을 읽어주라고 이곳저곳에 들이미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저는 싸이월드 시절 싸이월드 다이어리 메뉴를 애용했고 당시에는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데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고 난 뒤로는 무언가 쓴다는 게 어려워졌어요. 그래서 곰곰이 생각하다 든 생각입니다.
싸이월드는 미니홈피라는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름처럼 작은 창에 오밀조밀 여러 게시판을 모아놓은 나만의 홈페이지를 꾸밀 수 있는 서비스였습니다. 블로그와 홈페이지의 경계가 모호하던 때였는데, 그 시절의 웹사이트들은 대개 그런 식이었습니다. '방명록'이라는 메뉴가 보여주듯, 내가 만든 집에 누군가가 방문하고 구경하고 떠나가는 모양새였습니다. 게시판은 가만히 있고 독자가 움직이는 모양새입니다.
페이스북은 좀 다릅니다. 독자가 가만히 있고 게시글이 찾아갑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내가 보고 싶어 할 만한 이야기들을 골라주니 편안합니다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좀 더 부담스러워졌습니다. 마치 내가 이걸 읽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요. 앞에서 말한 미니홈피는 내 방에 숨겨둔 글들을 남들이 와서 몰래 보고 가는 것이었으니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는 내가 가서 글을 뿌리고 다니니 좀 더 정제된 글을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읽는 사람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별로 관심 없어할 만한 이야기를 떠벌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작은 차이지만, 저에게는 꽤나 큰 영향이었어요.
내 생각이 변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
어릴 때는 항상 환경과 고민이 금방 변하기 때문에 같은 주제를 다시 고민할 일이 잘 없었습니다. 나는 쑥쑥 자라고 또 금방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다시 대학교로 옮겨 다니면 자연스럽게 고민거리도 변하기 마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항상 새로운 문제를 고민하고 있었고, 예전에 했던 생각들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게 잘못됐을 거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른 시각을 듣게 되고 또 한 가지 주제를 다시 곱씹는 일들이 많아지다 보니 제 생각이나 가치관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나의 세계관이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내린 결론이 임시저장 정도의 의미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나중에 바뀔 수도 있는 생각을 고작 서른 남짓 산 내가 만인에게 공개한다는 것은 제게는 좀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널리 퍼져나가 지울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온라인 어딘가에는 특히나 말입니다.
사실 '뭔가를 써서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하려니 부끄럽다'의 긴 버전이었습니다만, 나이가 들면서 생각이 변하면서 또 플랫폼이 변하면서 부끄러움이 더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어쩌다 마음이 변하게 된 걸까 생각을 하다가 세 가지 꼭지를 잡아 정리해 보았습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하실지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