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다른 종들과 다른 점 중 하나는 환경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다른 종들이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해 왔다면, 인류는 어느 순간부터 환경을 우리에 맞춰 왔습니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긴 털을 가지는 대신 불을 지폈고, 천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빠른 다리를 가지는 대신 무기를 들고 집을 지었습니다. 실제로 인류의 해부학적 특징은 직립 원인의 출현 이후 그다지 변화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쩌면 긴 진화의 시간 동안 인류는 어떤 환경에든 적응할 수 있는 일반해 중 하나를 찾아낸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특이성은 아마도 인간의 높은 지능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수많은 생물종 중 어떻게 인간만이 이런 방향으로 진화하게 된 것일까요. 처음 그 변화를 유발했을 작은 차이는 무엇이었을까요. 저자는 그 답을 불에 익힌 음식에서 찾았습니다.
무엇이 생명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변이의 하나인 호모속을 탄생시켰는가? 이 책은 새로운 답을 제시한다. '전환의 계기를 제공한 것은 불의 사용과 익힌 음식의 등장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불로 요리하기'는 우리가 먹는 양식의 가치를 높이고 우리의 몸과 두뇌, 시간 사용 방법, 사회생활 방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 때문에 우리는 외부 에너지 소비자가 되었고 그럼으로써 땔감에 의존하며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 관계가 되었다. - p.14
유인원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하빌리스, 직립 원인으로 이어지는 두 번의 큰 변화를 거쳤다고 합니다. 두 번의 변화를 통해 인류의 두뇌는 비약적으로 커졌습니다. 기존의 학설인 '사냥꾼 인간 가설'은 이러한 큰 변화를 인류가 육식을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높은 에너지를 가지는 고기를 섭취하면서 여분의 열량이 생기고, 이것이 두뇌의 용적을 키우는데 기여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저자는 기존의 이론으로는 진화가 두 번 일어난 것을 설명하지 못한다고 주장합니다. 육식의 시작 외에 한번 더 섭취하는 음식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그 답은 화식에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음식을 익혀 먹음으로써 보다 많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불에 조리하는 과정은 음식 재료를 더 부드럽게 만들고, 자르고 으깨기 쉬운 상태로 만들어 줍니다. 덕분에 익히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많은 부분이 소화기관을 통과하는 동안 흡수되지 못하고 그대로 배출되는 반면, 익힌 음식은 대부분 소화되어 흡수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화가 쉬워졌기 때문에 크고 비효율적인 소화기관이 필요 없어졌습니다. 인간의 소화기관은 다른 영장류 동물들에 비해 부피가 훨씬 작다고 합니다. 이것은 소화 행위에 더 적은 에너지가 소모되어 잉여 에너지가 뇌에 공급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류는 익힌 음식을 먹는 데 적응했다. 암소가 풀을 먹는 데, 벼룩이 피를 빠는 데, 그리고 다른 모든 동물들이 각자 고유의 음식을 먹는 데 적응한 것과 동일한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화식에 적응했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그 영향은 우리의 육체에서 정신에 이르는, 삶의 모든 분야에 두루 미치고 있다. 우리 인류는 불로 요리하는 유인원이며, 불의 피조물이다. - pp.30-31
요리는 식사 시간을 만들었고, 불을 중심으로 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때 인류는 사회화 되었고, 역할 분담을 시작했습니다. 사냥하는 남자와 채집과 요리를 하는 여자의 분담도 불 덕분에 생겼다고 저자는 말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진화한 인류가 불을 이용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불을 이용하게 된 인류가 불에 적응하여 진화한 것입니다.
사족. 사실 저는 진화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실제 이 분야에서 주류로 인정받는 학설이 어떤 것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많은 연구들이 그렇듯, 이 책도 주장에 맞는 증거만을 짜깁기 해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그 점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인간은 익힌 음식에 적응한 사실입니다. '날고기를 먹는 사람들'이라는 에스키모도 사실 불에 익힌 음식을 먹는다고 합니다. 많은 원시 부족들에 관한 연구가 있지만, 익힌 음식을 먹지 않는 부족은 알려진 바 없습니다. 소가 풀을 먹고 사자가 고기를 먹듯, 우리의 주식은 익힌 음식인가 봅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저는 이 책이 생식의 위험성에 관한 책으로 읽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