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지루합니다. 버스를 기다릴 때도, 버스를 타서도, 버스에서 내려서도 지루합니다. 심지어 이 글을 보고 있는 순간도 (분명히!)지루합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지루해합니다. 지루함은 너무나 친숙하고, 그래서 우리는 지루함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고쿠분 고이치로의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는 우리가 언뜻 잘 안다고 생각했던 그 '지루함'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한 책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지루함에 관해서만 이야기하지는 않습니다. 지루함에서 시작한 고쿠분 고이치로의 철학은 인류의 진화와 소비 사회의 비평, 노동 문제와 인간의 원형에 대한 고찰을 거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데 이릅니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철학자들의 사상과 과학적 증거들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분량이나 소박한 제목에 비해 방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물론 한가함과 지루함에 대해 논한 책이지만, 실은 '자유'가 커다란 테마입니다. 우리들은 자유를 원합니다. 그런데 자유롭게 되면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몰라 괴롭습니다. - 저자 인터뷰 중
지루함의 의미에 대한 고찰은 하이데거의 지루함에 대한 철학에서 시작됩니다. 하이데거는 지루함의 제 1 형식과 제 2 형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제 1 형식은 우리가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느끼는 지루함입니다. 이 시간 동안 우리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에 붙잡히게 되고, 지루함 그 자체를 '느끼게' 됩니다. 주변의 나무와 길과 의자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정보도 주지 못하고, 관심을 끌지도 않습니다. 공허한 무의 순간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기분 전환'을 위해 낙서를 하고, 신문을 읽으며 무언가에 몰두하면서 지루함을 회피합니다. 그리고 지루함의 제 2 형식은 이런 '기분 전환'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이데거는 파티에 초대된 어느 날을 예로 듭니다. 특별한 일이 없던 어느 날 파티에 초대를 받고, 음식을 먹고 담소를 나누고 돌아옵니다. 음식은 훌륭했고, 파티는 즐거웠습니다.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기분입니다. 하지만 문득 깨닫습니다. '오늘 나는 무척 지루했어.' 저자는 하이데거를 따라 제 2 형식의 지루함을 분석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파티가 즐거웠음에도 지루한 이유가 파티가 지루함을 회피하기 위한 '기분 전환'이었기 때문임을 깨닫습니다. 여기서 보다 깊은 지루함, 심연과 같은 지루함. 그러니까 제 3 형식의 지루함을 언급합니다.
가장 '깊숙한' 지루함, 지루함의 제 3 형식은 과연 무엇일까? 답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데, 하이데거는 아무 준비도 없이 갑자기 대답을 내놓는다.
"아무튼 그냥 지루해" - p.213
다시 한번, 우리는 언제나 지루합니다. 이 정도면 인간의 원죄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우리는 보통 지루함과 '기분 전환'의 얽힘 상태, 그러니까 제 2 형식에 사로잡혀 살아가다가 때때로 제 1, 3 형식의 지루함을 마주하며 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논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해 하이데거는 윅스쿨의 '환경 세계'의 개념을 가져옵니다. 동물들은 저마다의 환경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진드기와 인간이 보는 세상은 다릅니다. 서로가 느끼는 시간도, 사물의 의미도 다릅니다. 심지어 진드기가 피를 빨아먹을 동물을 찾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감각은 냄새와 온도뿐입니다. 인간과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보고 있고, 또 동물들은 자신의 환경 세계에 '갇혀'있습니다. 그리고 갇힌 세상 속에서 충동에 온전히 몰입해 있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요컨대, 인간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지루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하이데거의 철학으로부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힌트를 찾습니다. 동물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자신의 환경 세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천문학자가 보는 밤하늘과 우리가 보는 밤하늘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고정된 환경 세계 속에서는 지루함을 느낍니다. 일상은 습관이 되고, 많은 정보들은 생략됩니다. 그렇게 우리는 생각하지 않게 되며, 지루함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생각하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습관을 창조하고 환경 세계를 획득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중에 생각하지 않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 p.298
하지만 인간은 훈련을 통해 자신의 환경 세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천문학자가 바라보는 밤하늘의 환경 세계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듯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끊임없이 배워야 합니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면서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 주어진 환경 세계의 이탈에서 지루함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지루함을 이겨낸 세상, 한가로움의 왕국을 꿈꾸며 이야기를 마칩니다.
듣고 보면 당연한 결론입니다.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넌지시 알고 있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은 간단치 않습니다. 이 포스트에서 소개하지는 않았지만, 결론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의 소비문화와 그 공허함, 마르크스의 노동 문제, 여가에 관한 고찰 같은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친숙한 주제에 대한 깊은 사색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