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도 더 된 일이다. 맥도날드에서 햄버거 세트를 먹고 남은 콜라를 쪽쪽 빨고 있었다. 같이 햄버거를 먹던 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뭘 그걸 다 먹고 있냐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10여 년이 지난 아직도 그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햄버거 세트의 콜라는 당연히 다 먹어야 하는 거였다. 콜라를 남기고, 남은 콜라를 버려도 된다는 생각은 이상할 정도로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이런 생각은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나는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그날 처음 알았다.
아무튼 그날의 별 일 아닌 그 일은 내 소비 성향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 남겨도 된다, 내가 필요한 만큼만 취하면 된다. 비용을 지불했다고 해서 그걸 다 써야 하는 건 아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게 필요한 만큼의 콜라 외의 잉여는 내게 득 될 게 없다. 괜히 배가 불러오고 살도 찐다. 먹느라 시간도 걸리고, 앞에 앉은 형은 나를 기다려줘야 한다. 오히려 굳이 다 먹는 게 손해다.
콜라뿐만 아니라 모든 서비스와 물건이 그렇다. 내게 최대의 효용을 주는 적정 구간이 있다. 내가 필요한 만큼만 이용하면 된다. 그때 최대의 만족을 느낄 수 있고, 나머지는 잉여다. 그래서 소비의 모든 기준이 '내'가 됐다.
바꿔 말하면, 내가 만족할 만큼의 서비스와 물건을 제공하면 그 이상은 따질 필요가 없다. 1리터에 2천 원인 콜라나 500밀리에 2천 원인 콜라나 내가 필요한 양 이상이면 둘 간에 차이가 없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살 때도 스트레스가 덜하다. 이게 가장 싸고 좋은 옵션일까를 고민하면 항상 힘들고 만족도 없기 마련인데 (언제나 나은 옵션이 있기도 하고 비슷한 옵션도 많아 비교는 끝이 없다), 내게 충분한지가 기준이 되면 물건을 살 때 고민도 후회도 적다.
아무튼 나는 그날 처음으로 남은 콜라를 버렸다. 남은 콜라와 얼음을 쏟아붓던 장면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그날 버린 세 모금 남짓의 콜라 덕분에, 나는 내가 산 것들을 소위 '뽕' 뽑느라 애쓰지 않게 됐다. 그래서 오히려 내 모든 소비가 만족스럽고, 더 효율적이게 되었다. 묘한 일이다.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고 생각을 써봅니다. 퇴고도 없고, 미리 정해둔 주제도 없습니다. 그날그날 생각나는 주제로 생각나는 순서대로 정제되지 않은 포스트를 올려볼까 합니다. 10분 땡 하면 쓰다 만 글이더라도 마감을 합니다. 목표는 매일인데, 일주일에 한 번쯤 쓰면 다행입니다. 머릿속의 구상이 구체화되는 게 너무 느린 것 같아 해 보는 연습입니다. 1년쯤 지나 그동안 썼던 글들을 보면 점점 나아지는 모습이 보였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