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홍수(2025), 인터스텔라(2014), 플래시(2023)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남극에 소행성이 충돌하여 빙하가 녹고 해수면이 높아졌다. 6살 아들 신자인(권은성 扮)과 살고 있는 구안나(김다미 扮)는 UN산하 연구기관인 이모션엔진의 책임 연구원. 구안나가 살고 있는 아파트가 물에 잠기기 시작하고, 이들을 구하러 온 이모션엔진의 인력보안 요원 손희조(박해수 扮)가 합류하면서 이들은 함께 아파트에서 탈출을 시도한다.
구안나는 아이와 함께 가까스로 옥상으로 대피해 구조된다. 구안나를 위해 구조대가 파견된 것은 지구의 대홍수로 멸망한 인간을 대신할 신인류를 만들기 위해 구안나의 이모션엔진이 필요하기 때문. 구안나는 신인류를 제작하는 공장이 있는 우주의 이사벨라 랩으로 향한다. 이때, 앞서가던 우주선이 소행성 잔해와 충돌하여 폭발하고 구안나는 다시 아파트에서 눈뜬다.
영화는 재난 영화로 시작해서 사실 모든 것이 신인류에 탑재될 AI를 완성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이었다는 SF적인 설정을 곁들인 타임루프물로 변한다. 구안나가 침대 위에서 다시 눈을 뜨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영화가 갑자기 반전되는 순간이었다. 영화가 한 시간쯤 진행된 상태에서 예고도 없이 장르가 바뀐 게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속은 기분.
SF 영화는 아주 뻔뻔하든지 아니면 그럴듯해야 한다. 대놓고 얼렁뚱땅 넘어갈 게 아니라면, 설득해 내는 것이 SF의 본질이라는 생각도 든다.
신인류는 인간이 아니다. 3D 프린터로 프린팅 되고 인공지능이 설치된 '인공-인간'이다. 영화에서는 인류를 보존한다고 하지만, 로봇이나 다름없다. 인류는 포기하고 로봇을 만들겠다는 사명을 가진 영화 속 인물들의 희생이 전혀 납득이 되지 않았다. AI 대신 엄마와 아들의 정신을 복사해서 넣었어야 했다. 하다못해 '인터스텔라'의 인구폭탄처럼 냉동 수정란을 쓰든가. 인류의 연속성을 가진 무언가여야 했고, 이를 위해 그럴듯한 설명을 곁들인 'SF적인' 상상력이 동원되어야 했다.
영화에는 '왜'가 없었다. 왜 구안나가 이렇게나 급하게 지구에서 탈출해서 이모션엔진을 삽입한 신인류를 제작하는 것만이 인류의 희망인 상황이 되어야만 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왜 AI가 필요한가. 정신을 만들고 뇌에 업로드할 정도면 이미 있는 사람의 정신을 다운로드하는 게 낫지 않을까. 혜성에 의한 충격이 아니라 홍수가 문제라면 우주에 공장을 만들 노력으로 산속에 벙커를 짓지 않았을까. 왜 미리 우주로 연구원들을 보내지 않고 이렇게 급하게 탈출하는 걸까. 혜성을 요격하는 시도는 없었을까. 아니! 자인이의 AI칩은 블루투스만 달려있었어도 원격으로 다운로드할 수 있잖아! 설득력이 부족하니 영화가 삐그덕거린다. 시간이 반복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설정을 끼워 맞춘 느낌이다. 성의의 문제다.
AI가 인간성을 획득하기 위해 수만 번의 시도를 하는 건 '플래시(2023)'처럼 영겁의 사간과 간절함이 좀 더 드러났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매 시도마다 구안나의 기억이 초기화되기 때문에 마치 게임을 껐다 켜는 것처럼 매번 새 구안나로 느껴져 연속성이 사라졌다. 오히려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건 아들 자인이었는데, 왜 이렇게 설정했는지 모르겠다 (사실 의도는 알겠으나 논리적으로는 억지스러운 설정이다. 매 시뮬레이션마다 초기화를 하면서 자인이의 기억이나 핸드폰의 그림을 남겨둘 이유가 없다). 꼭 구안나의 기억이 초기화되어야 했다면 양자 컴퓨터에서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양자 어쩌구로 중첩된 상태에서 동시에 시뮬레이션하는, 그리고 그걸 모두 경험하는 하나의 자인이 가 등장했으면 어땠을까. 뻔뻔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