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quid Jade: The Story of Tea from East
※ 2012년 '차의 세계사 - 동양으로부터의 선물'이라는 제목으로 '열린세상'에서 출판된 책의 개정판이다.
동방에서 시작된 차 문화가 유럽과 미국까지 퍼져나간 역사와 그 영향을 다룬다. 짧은 글들을 모은 형식인데, 그런것 치고는 전체적인 흐름이 잘 들어온다. 책의 마지막에 배치된 공정무역과 명상에 관한 난데없는 글을 보면 어딘가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서 출판했는지도 모르겠다. 차의 역사에 대해 아주 자세하지는 않고, 일부 모호한 부분이 있지만 전반적인 맥락을 살피기에 좋았다.
책의 원제(Liquid Jade: The Story of Tea from East to West)에서도 알 수 있듯 이야기의 최종 목적지는 유럽이다. 차나무의 산지인 중국과 인도, 그리고 유럽과 미국이 주 무대다. 그래서 그 외의 지역 - 중국 인근 아시아 국가들과 중동 등 - 에 관한 내용은 따로 찾아보아야 한다. 특이한 점은 전체적인 맥락과 관계없이 일본의 다도 문화를 비중 있게 다루는데, 저자가 로마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활동하는 '서양인'이다 보니 서양 사람들이 갖는 '일본의 신비'같은 스테레오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래에 책에 실린 주된 내용을 기록을 겸해 적어둔다.
차를 언제부터 마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중국의 신화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신농이 처음 차나무를 발견하여 이를 우연히 물에 끓여 마신 게 차의 시초라고 한다. 기원전 2732년의 이야기다. 다만 신농이 썼다고 알려져 있고, 차에 대한 언급이 있는 <신농본초경>은 사실 이보다 훨씬 뒤인 후한 시기(25~220)에 쓰인 것이라고 하니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 중국 특유의 과장이 많이 섞여있겠지만, 차의 기원은 중국이었다.
차나무의 기원도 중국으로 알려져 있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인도의 아삼이나 동남아시아의 다른 지역에서도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고, 중국에서도 승려이자 학자인 오리진(吳理眞)이 인도에 불교를 공부하러 갔다가 차나무를 가져와 심었다는 전설도 있다. 실제로 인도 동북부에서도 차나무 잎을 오래전부터 음식으로 만들어 먹어왔다. (따로 찾아보니 유전학적으로는 중국과 인도 아삼 지역, 캄보디아에서 차나무가 독립적으로 진화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차를 물에 우려 마신 것도 중국이고, 여기에 사용된 차나무도 중국이 원산지이니 차나무의 기원도 중국으로 봐도 무방한 셈.)
차를 마시는 방법은 시대가 지남에 따라 변화해왔다. 당대 이전에는 차가 지금 같은 기호식품이라기보다는 약에 가까웠고, 야채나 생강 같은 것들을 넣고 죽처럼 끓여 먹었다고 한다(자차법, 煮茶法)[1]. 이후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차를 끓여 마시는 전다법(煎茶法)이 자리를 잡았고, 도교 사원에서 자란 육우(陸羽)가 <다경>을 저술하면서 차가 문화와 예술의 범주에 들어오게 되었다. 육우는 도가와 유가 사상에 영향을 받은 <다경>에서 예술성과 의례를 강조했는데, 이는 이후에 일본의 다도 문화의 근간이 되었다.
당나라 시대의 차는 주로 긴압차(緊壓茶)로, 압력을 가해 둥글거나(병차, 餠茶) 네모난(전차, 塼茶)였는데 이걸 부스러뜨려 주전자에 넣고 끓여 마시는 식이었다. 이후 송대에 이르러서 찻잎을 가루 내어 물을 붓고 대나무 다선으로 휘저어 마시는 걸 선호했다. 이를 일본의 에이사이 선사가 1191년 송나라에서 차 문화와 함께 일본에 들여와서 일본에 말차를 기본으로 하는 다도 문화가 자리 잡게 된다.
차에 대한 유럽의 최초의 기록은 1559년 베네치아의 잠바티스타 라무시오가 기록한 <항해와 여행>이다. 차를 유럽으로 들여오기 시작한 건 1550년대의 포르투갈 상인들이었으나, 본격적인 차 수입이 시작된 것은 1610년 네덜란드에 의해서였다[2]. 이때 유럽은 복건성으로부터 해양을 통해 차를 수입했기 때문에 차를 이르는 복건어인 'Te'를 기반으로 한 단어가 만들어졌고 이는 영단어 Tea의 어원이 된다. 다만 포르투갈은 일찍이 광동성을 중심으로 활동하였기 때문에 광둥어를 근간으로 하여 '차이 Cha'라고 발음하는데, 아시아나 중동 같은 육로를 통해 차를 받아들인 나라들은 대부분 '차 Cha'와 유사한 발음을 사용한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茶를 '차' 또는 '다'로 발음한다. 이 차이는 방언보다는 들여온 시기에 따른 차이로 보는 견해가 있다. '다'는 통일신라 시대에 유입된 중고음이고, '차'는 고려 시대에 유입된 상고음이라는 것이다[3]).
유럽의 차 수입은 초기엔 전적으로 중국에 의존했으나, 19세기 들어 영국과 중국 간의 외교적·경제적 갈등이 심화되며 공급망의 위기를 맞이한다. 이에 영국은 자국 식민지인 인도에서 직접 차를 생산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 1830년대부터 인도 동북부 아삼 지역에서 자생하던 야생 차나무(아삼종)를 재배하기 시작했고, 이후 로버트 포춘(Robert Fortune)이 중국에서 소엽종 차나무와 가공 기술 반출에 성공하면서 인도 다질링 등 고산 지대까지 재배 지역을 넓혀갔다.
이후 차 재배지는 점차 주변 지역으로 확대되었는데, 대표적인 곳이 현재의 스리랑카인 실론 섬이다. 본래 이곳은 세계적인 커피 생산지였으나 1860년대 커피 녹병(Leaf Rust)으로 농장이 전멸하는 위기를 겪는다. 이때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커피 대신 차 재배를 시도해 처음으로 성공하며 산업의 기틀을 닦았고, 이후 토머스 립톤(Thomas Lipton)이 이를 대규모로 사업화하고 유통 혁명을 일으키며 실론 티를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켰다.
책에서는 그 외에도 차에 관한 흥미로운 일화들을 여럿 소개한다.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꼽아보면, 오늘날 영국의 상징과도 같은 차 문화가 실제로는 1650년대 무렵에야 유입되어 유럽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출발이 꽤 늦은 편이었다는 것. 영국에서 녹차 대신 홍차가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게 된 배경에는 당시 기승을 부리던 '가짜 녹차' 문제로 소비자들이 상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었던 홍차를 선호하게 된 영향이 있었다는 것 등이다.
[1]: 이경남, 세계 최초의 차 덕후茶德厚 육우 陸羽, https://www.teaculture.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1, 차와 문화
[2]: 홍익희, 두 번의 전쟁을 불러일으킨 중국차 이야기, https://www.chosun.com/opinion/2023/06/11/ADPSUR4RDRGXTGXMAORK7LEAXE/, 조선일보
[3]: 양세욱. "‘茶’의 漢字音/다/와/차/에 대한 재해석." _중국문학_ (2018): 22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