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쓴 세종대왕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제목은 '킹 세종 더 그레이트'인데, 풀이하면 "세종대왕"이니 정직한 제목입니다. 소설을 쓴 조 메노스키는 스타트렉 시리즈의 작가라고 하는데, 한글과 세종대왕에 반해 책을 썼다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역사소설이긴 하지만 대부분이 픽션인 것 같습니다. 작가도 걱정이 되었는지 책 서두의 작가의 말에서 많은 부분이 허구이고 불편한 분들도 있겠지만 이해해 달라는 이야기를 적은 점이 기억에 남네요.
결론을 말하자면 전 좀 별로였습니다. 소설은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고, 개연성이 없어 보였습니다.작가는 스케일을 키워서 조선과 주변국을 아우르는 스릴러를 그리고 싶었던 것 같지만 실패했습니다. 병렬로 전개되는 여러 이야기들이 억지로 이어붙어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대하던 세종대왕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이건 좀 비겁한 이야기 같습니다만, 소설은 우리가 (적어도 제가) 원하는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답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해요. '천재적인 왕'이 '백성을 어엿비 너겨' 문자를 만들었다는 거요. 우리는 사실 마음속으로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생각도 못할 방법으로 글자를 만드는 방식으로든, 요즘 메타에 맞게 유학자들의 반대에 맞서는 치열한 수싸움으로든 그 천재성이 충분히 보여지는 걸 기대합니다. 물론, 여기에 여러 음모나 국제정세 같은 양념들이 들어가기도 하고, 세종의 약해지는 모습을 섞거나 유학자들의 주장에 좀 더 무게를 준다거나 하는 식으로 변화를 줄 수는 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대하는 세종대왕 이야기는 역시 세상에서 제일 똑똑하고 백성을 굽어 살피는 어진 임금님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그런 이야기는 아니에요. 소설 속 세종은 날카롭다기보다는 감성적이고,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또렷하지 않고 몽환적입니다. 긴장되는 장면도 어딘지 담담한 구석이 있어요. 좋게 표현해 보자면 아다치 미츠루의 만화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좀 듭니다.
한글을 만드는 장면은 어영부영 지나갑니다. 그보다는 여러 관계에 집중을 하고 있는데, 신하와 임금의 관계, 조선과 명나라의 관계, 세종과 (전 좀 뜬금없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사실 소설 속 대부분의 이야기들이 뜬금없는 면이 있습니다.) 장영실과의 관계 같은 것들 말입니다. 문제는 그들과의 이야기가 그다지 설득력 있지도, 새롭지도, 치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세종대왕은 소설 내내 무력하게 모든 걸 지켜볼 뿐입니다. 영 맥이 빠져요.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책은 아니었습니다. 세종대왕에 관한 것도, 한글에 관한 것도 아닌 소설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마케팅을 잘 한 책 정도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 스케일이 제법 큰데 비해 일어나는 사건들이 소박합니다. 우주를 다루지만 결국 엔터프라이즈 호에 타고 있는 승무원들의 이야기인 스타트렉과 닮은 점입니다.
% 아무래도 서양 사람이 쓰다 보니 우리에겐 당연한 것들을 설명해야 해서 어색한 부분도 많고, 묘하게 책으로 배운 것 같은 말들도 눈에 띕니다. 외국인의 시각에선 어떨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고, 우리가 서양 중세시대를 소설로 쓰면 어색한 느낌이 들까 싶은 생각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