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좋은 이야기는 다른 분들이 많이 하셨을 테니까 저는 주로 영 마음에 안 들었던 것들을 주로 횡설수설 늘어놓아 볼까 합니다.
한 마디로 정의를 해보자면, 잡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영화입니다. 영화의 템포가 빠른 편은 아니었는데, 지루하지 않았던 건 절반 정도 이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보는 내내 딴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게 그러니까 시간이 이렇게 되면 저 장면이 저렇게 되는 게 맞나? 저게 그러니까 손을 놓으면 이렇게 되니까 가만 놔두면 이렇게 되나? 차에서 나오는 사람이 지금 저렇게 보이니까 들어갈 때는 방향이 그러니까..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몇 장면씩 놓치기 일쑤였고, 저는 심지어 마지막에 꽤 중요한 장면도 놓치고 말았습니다. 재미있었어요. 영화가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 이런 식으로 유도된 행동을 하도록 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영화 초반부에 괜히 엔트로피니 인버전 된 물건들이니 하면서 설명을 하는데 사실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닙니다. 다 발라내고 보자면 시간을 거꾸로 갈 수 있는 장치가 있어서 시간축을 정방향으로, 반대 방향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세상에서의 일종의, 그러니까 007입니다. 내용은 단순해요, 세상을 없애버릴 장치를 악당들이 가지는 걸 저지하기 위해 주인공이 분투한다. 여러 영화적 장치들이 눈을 홀리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좀 특이한 무기가 나오는 007 영화예요. 드라마는 오히려 약한 편이에요. 주인공은 왜 갑자기 저렇게 이 일에 열심인지, 여자 주인공은 뭘 또 그렇게 남편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두 남자 주인공은 언제부터 그렇게 절친이 되었는지. 납득이 안 갈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이야기들이 강하진 않아요. 새로운 설정과 그 묘사가 주가 되는 영화예요. 거기에 일종의 시간여행 영화니까 클리셰처럼 미래의 동료도 한 명 넣고, 이런저런 그럴싸한 설명들을 좀 섞어주고, 과거와 미래가 꼬이는 분기점을 몇 개 만들어서 타임라인을 꼬아주면 짜잔-.
영화라는 형식은 어쨌든 선형적입니다. 우리는 영화를 시간 순서대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시간축으로 보자면 정방향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매체입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을 영화로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영화 속에서 어느 한 가지 시간 축을 따라갈 수밖에 없고, 대개는 그게 주인공입니다. 이리저리 자르고 붙여 놓아도 결국은 주인공의 시간축을 따라 선형적인 감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똑같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걸 이미 봐 버렸기 때문입니다. 반바지님이 그린 '시간 요원 훈련 만화'라는 12컷 만화인데요, 이런 이야기는 영화보다는 만화가 표현하기에 더 적합한 매체인 것 같습니다. 이번처럼 드라마보다는 시간축에 대한 설정을 강조할 거라면 말입니다.
시간을 다룬 이야기라면 응당 결정해야 하는 설정이 하나 있습니다. 세상은 불변인가, 과거는 바꿀 수 있는가. 이 이야기는 전자를 택하고 있는데, 이 점이 상당히 맥이 빠지게 합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고정된 사실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모두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든 순간, 영화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완성된 무언가가 되면서 이건 어차피 영화일 뿐이라는 생각 이상으로 그래 이제 얘네들이 뭘 어쩌든 뭐 어때! 하는 생각이 들어 버렸습니다. 영화 속 인물들이 갑자기 인형처럼 느껴졌어요.
사족입니다만, 영화 테넷에서는 테넷이라는 단어가 두세 번 밖에 나오지 않아서 좀 당황했습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동료는 사실 미래에서 온 주인공의 동료였다는 설정인데, 이게 타임머신이 나오는 건 아니니까 꽤 오랜 시간을 시간 역행 상태로 살았다는 거잖아요? 이게 그러니까.. 젊어 보이던데.. 그게.. 음.. 되나? 아 그리고, 반바지 님은 좀 천재인 것 같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