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것들에 대한 고찰

8월의 크리스마스를 따라가본

by 이대진

얼마전 군산에 다녀왔다.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는 철길마을, 아름다운 향을 담은 향수가게 그리고 초원사진관.


4년전 아무런 계획 없이 훌쩍 떠나온 군산. 길게 체류할 시간이 없었다. 날은 흐렸고 그날도 구름이 잔뜩 하늘을 뒤덮었다. 이번에 마주했던 군산과 마찬가지로 어두침침하고 습한 기운이 거세게 올라왔다. 정처없이 가보고 싶은 곳을 정해 걸었다. 철길 마을에서 한참을, 이곳에서 일제의 수탈이 이루어진 철길이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그저 군산가서 볼만한 곳으로 변모해있음이 조금은 안타까웠다.


그러곤 초원사진관으로 향하던 길. 이곳이 8월의 크리스마스가 배경이 된 도시란걸 까맣게 잊었다. 초원사진관이란 이름이 같은 허름한 사진관 앞에 나를 안내하던 네비. 이곳이 영화를 촬영한 곳이었나라는 착각마저 들게 만든 고즈넉한 곳이었는데.


사실 초원사진관이란 곳은 촬영 세트장일 뿐이었던 것이란걸 몰랐던 나는 다시 한참을 차를 돌려 그곳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아저씨 한 분이 그 앞을 지키고 서있었다. 내가 사진 찍는걸 방해하면서 말이다. 약간 불쾌했지만 양해를 구하고 옆으로 살짝 비켜주실 수 있느냔 제법 공손한 어투였는데. 그분에겐 낯선 이방인의 요청이 썩 달갑진 않았던 모양이다.


사진을 남기고 주변 오래된 일본 가옥들을 둘러보고 다시 돌아온지 4년 만에 이젠 평생을 함께할 짝궁을 데리고 군산에 온다. 전에 혼자 왔던 곳에 누군가를 데려온다는 건 참 묘한 일이다.


그리곤 문득 8월의 크리스마스 라는 영화가 궁금해졌다. 당대 최고의 영화배우들이 만들어낸 심금을 울리는 영화라는 것만 알고 있었는데 나에게도 그런 감동이 찾아올 것인가 뭐 그런. 저녁을 함께 먹으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오래된 필름이 주는 세피아톤 감성은 언제나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든다. 그때 서울 말씨도 그렇고 말이다.


사실 내용은 별건 없다. 사진관을 운영하는 정원(한석규). 그리고 지금은 낯선 직업인 차량단속원 다림(심은하). ‘허허’ 하며 너털웃음을 자아내는 정원에게 어느날 급한 용무가 있다는듯 다림이 찾아온다. 그리곤 차량 단속한 사진을 얼른 인화해달라며 재촉을 하는데 그녀에겐 업무를 처리하는 것보다 더위를 피할 도피처가 필요한 듯 보인다. 그리곤 수시로 초원 사진관을 들락날락하며 그 둘은 뭔지 모를 사랑의 감정에 휩싸인다라는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스토리가 주를 이루지만 영화 초반부에 잠깐 비춘 지나간 인연인 첫사랑과의 우연한 재회, 오래된 친구에게 자신의 비밀을 시원하게 털어놓는 애잔함을 정말 진부하지 않고 담담하고 뭉클하게 표현해내는게 왜인지 모르게 좋았다.


요샌 많은걸 생각하지 않고 살아간다. 그저 옆에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평안함이 가득해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련한 것들을 무척 곱씹으며 우울했던 때도 있던것 같은데 잘 기억은 나질 않는다. 아련한 것들이 분명 내 맘속 어딘가에 있을텐데 잘 기억나진 않는다. 첫사랑과 헤어져 펑펑 울었던 그때가, 정말 소중한 친구가 세상을 떠나갔던 그때가 있었던 것도 있었을텐데 말이다.


혹시 마음 속에 묻어둔 아련한 것들이 있으신가요. 삶에 치어 그 아련한 것들을 잊으며 사는 하루하루 겠지만 가끔은 그것들을 꺼내어 보는, 그 아련한 것들을 끄집어내는 오래된 필름을 뒤적여보시길 바랍니다. 그 과정이 생각보다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모쪼록 평온한 일요일 밤 되시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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