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한 어떤 것들에 대한 고찰
나를 살게 하는 건 언제나 추억이었다. 추억의 부유물이 어떤 것이 든 간에. 중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그러니까 무려 17년 전. 그 당시에도 출간된 지 10년도 넘은 작품이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들 사이에 열풍을 일으킨 것이 있었다. 바로 ‘슬램덩크’란 농구 만화였다.
당시 체육 교과과정 중 농구 과목이 있었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주인공들이 학생들이며 무언가 조금씩 모자라지만 투지와 집념 하나만큼은 전국을 씹어먹을 기세를 지닌 그들의 패기가 마냥 멋있어 보였던 것도 같다. 나는 그중 ‘강백호’를 제일 좋아했었다. 제일 꼴통이었으면서 멋에 살고 멋에 죽는 그리고 스스로를 천재라 부르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내 마음을 울렸달까.
그렇게 즐겁게 만화를 보던 아이는 한 살 한 살 먹어가며 조금씩 현실에 집중하게 되고 어릴 적 기억들은 마음 한켠에 묻어둔 채 그저 하루하루를 아등바등 살아내는데 급급한 어른이 되어버렸다, 가슴이 뛸 일도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일도 적었다. 그저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척하는 어른아이가 되어가던 중 내가 그렇게 좋아했고 마음 졸이며 봤던 그 만화가 극장판으로 다시 개봉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를 예매하는데 심장이 콩닥거렸다. 기대와 설렘이 가득한 밤을 보내고 다녀온 극장. 이미 내용도 결과도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애정했던 성장형 천재 ‘강백호’ 서사가 아닌 그때 당시엔 별 관심 없던 ‘송태섭’의 서사로 영화가 흘러갔다. 보는 내내 마음 졸였다. 그땐 몰랐다. 만화의 주인공처럼 내 삶도 재능으로 얼룩진 멋진 삶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사회에 내동댕이쳐지다 보니 알게 되었다. 꼭 주인공일 수는 없구나. 그리고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구나. 그저 묵묵히 맡은 바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송태섭’ 같은 사람도 있어야지. 밝게 빛나진 않더라도 은은하게 세상을 비추는 사람이 되는 삶도 제법 멋지구나.. 나이가 들어보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었다.
극장에 찾아온 이들은 대부분 내 또래 거나 조금 많은 분들이었다. 다들 추억과 향수에 젖어 조용히 관람을 하는 모습이 뭔가 찡했다. 나 스스로에게도. 열네 살의 내가 친구들과 같이 정신없이 뛰어놀던 생각도 나고 나름 반항한답시고 학원을 늦게 간 기억도 난다. 17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이 마치 엊그제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나를 살게 하는 건 언제나 추억이었다. 때론 그것들이 잘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떤 계절, 어떤 상황, 어떤 음악이나 향기가 나타날 때면 종종 추억에 잠긴다. 그리고 나를 다시 걷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