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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Aug 19. 2021

노래가 마렵다

라이브러리언 랩소디

첫 학교에서 근무를 시작할 때 내 나이는 겨우 스물 넷이었다.


  첫 근무지는 고등학교였기에 엄밀히 따져도 아이들하고는 나이 차이가 그다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선생이라기보다는 언니나 누나 같은 느낌이 더 짙었던 것 같다.


   그 중 유난히 친하게 지내게 된 아이들이 있었다. 아스트랄 막부라고 불렀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이 4명, 다른 학교 다니는 아이들까지 해서 6~7명 정도가 되는 그룹이었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유머센스와 쿨내나는 성격이 참 잘 통했다.


   졸업하고 난 후에도 직접 창작한 코스프레 의상을 만들 곳이 없다고 해서 겨울방학 때 도서관은 비어 있으니 언제든지 오라고 했다. 아스트랄 아이들은 겨울방학 내내 도서관에 와서 창작한 코스프레 의상을 만들곤 했다.


   어느 날이었다. 같이 놀러가자고 제안을 하길래 그러자고 했다. 이미 학교는 졸업했고 편한 아이들이다 보니 망설일 이유도 딱히 없었다. 함께 놀러간 장소는 노래방이었다.


   아마 다른 곳에 가자고 했으면 안 갔을지도 모르지만, 워낙 노래방을 좋아하는지라 망설임 없이 아이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다. 처음엔 살짝 뻘쭘하기도 했는데 곧 친구들과 노는 것처럼 익숙해졌다.


   아이들이 노래를 고르고 나에게도 노래방 책을 내밀었다. 항상 분위기 맞춘 선곡을 잘 못하는 편이라 다른 아이들이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나 좀 들어본 후에 선곡을 하기로 했다. 코스프레를 좋아하는 아이들 답게 초반엔 애니메이션 노래 위주의 선곡이 이어졌다.


   내가 아는 애니메이션 곡이 뭐가 있나 고민을 하다가 카드캡터체리의 오프닝 곡인 "Catch you Catch me"를 선택했다. 노래를 들으면 모두가 아실만한 곡이다.


   아이들의 노래가 한 바퀴 끝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나는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은데 그런 슬픈 기분인 걸~ 말할 수 없어 말하고 싶은데 속마음만 들키는 걸~ 내 사랑에~ 마법의 열쇠가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세상이 아름다운 이유"


   "오오오옷!!!"


   노래를 하는데 지수가 갑자기 탄성울 질렀다. 그러더니 말했다.


   "방금 앞부분 완전 원곡 성우 목소리랑 똑같았어요."


   "맞아. 맞아."


   다른 아이들도 동의를 표시했다. 왠지 민망해져서 1절만 부르고 끊었다. 민망했지만 내심 기분이 좋았다. '만화 성우 목소리랑 비슷하다니 좋은 말인 거 맞지?'하고 생각하며 싫지 않았다.


   재미있게 놀고 헤어졌다. 나중에 아이들이 멋지게 완성한 의상과 함께 찍은 사진을 구경시켜 줬다. 퀄리티가 예술적이었다. 직접 만든 의상과 포즈, 사진까지 수준급이었다.


   오늘 왠지 그때의 노래방이 생각났다. 코인노래방이 생기기 전부터도 스트레스가 쌓이면 종종 혼자 노래방에 가서 두 세 시간씩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었었다.


   코인노래방이 생긴 후로는 자주 혼자 가서 부르고 싶은 노래들을 실컷 부르다가 오곤 했다. 우리 동네는 천원에 네 곡을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겨 '완전 계 탔다'고 생각하며 자주 갔었다.


   코로나 상황으로 인해 코노를 못 간지 어언 1년은 된 것 같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노래가 너무 마렵다. 노래가 너무 고프다. 노래가 부르고 싶어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방법을 찾아야 했다.


   종종 집에서 유투브로 TJ미디어 반주를 틀어놓고 블루투스 마이크를 이용하여 부르곤 한다. 아무리 그래도 노래방에서 같이 신나게 불렀던 그 느낌은 도통 나질 않는다. 언제쯤 자유롭게 다시 코인노래방이라도 갈 수 있을까.


   오늘도 블루투스 마이크와 유투브 반주로 아쉬운 마음을 달래어 본다. 아아~ 제대로 노래하고 싶다.


#혼코노 #노래마렵다 #노래방의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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