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아빠는 회사 사람들을 데리고 오셨다. 그 때는 집에서 회식을 하셨다. 주임을 맡고 계셨던 아빠와 함께 일하는 후배이자 동료들이었다. 식사가 어느 정도 마칠 무렵이면, 나는 노란 꽃무늬 원피스를 차려 입고 '보랏빛 향기' 같은 노래를 부르곤 했다.
노란 꽃무늬 원피스는 그렇게 특별한 날, 특별한 상황에서만 입는 옷이었다. 원피스의 몸통 부분은 노란 색이고 팔과 치마에는 연한 상아색 베이스 위에 예쁜 꽃들이 여기저기 무늬가 되어 있었다. 그 옷을 입고 있으면 TV에 나오는 가수가 된 것 같았다.
어느 주일 아침, 엄마를 따라 교회버스를 타고 교회에 갔다. 나는 초등학교 2학년이었고, 연년생인 오빠는 초등학교 3학년이었다. 오빠는 그때부터도 좀처럼 날 여동생으로 취급해주지 않아서, 오빠에게 지기 싫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교회 버스 안에는 여러 어른들-집사님들, 권사님들, 장로님들이 앉아 계셨다. 뒷자리에는 아이들이 앉아 있었는데 특히 맨 뒷자리는 오빠와 그 친구들인 초등학교 3학년 남자아이들이 우르르 앉아 있었다. 버스가 교회 근처 넓은 공터에 정차하며 쉬익~ 하는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른들이 한 명씩 버스에서 천천히 내리기 시작했다. 놀고 싶고 움직이고 싶어 좀이 쑤신 열 살짜리 남자아이들에게 너무도 답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오빠 친구 하나가 말했다.
-야, 우리 여기로 내리자
-오. 그럴까?
-여기로 나갈 수 있어?
-이 정도는 쉽지.
오빠 친구들과 오빠는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버스 맨 뒷 창문을 활짝 열고, 그 사이로 빠져나간 후 버스 아래 쪽으로 뛰어내렸다. 버스가 정차하고 있었고, 열 살 남자아이들은 거칠 게 없었다. 오빠에게 지기 싫었다. 당시 나는 아주 조그만 아이였다. 창문을 통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손쉽게 오빠의 뒤를 따라 버스 뒷 창문으로 뛰어내렸다.
그 순간, 노란 꽃무늬 원피스 치마끝이 창문 손잡이에 걸렸다.
나는 버스에 거꾸로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 버스 옆구리에 얼굴을 박았다. 날 발견한 어른들이 치마가 걸려 버스 뒤편에 거꾸로 매달린 나를 바닥에 내려주었다. 아픔과 동시에 억울함과 수치심으로 눈물이 났다.
엄마는 "가시나가 겁도 없이 뭐 하는 짓이냐"고 매섭게 혼을 냈다. 그 와중에도 똑같이 뛰어내린 오빠는 혼이 안 난다는게 억울했다. 나는 계속 "오빠가 먼저 그랬어. 오빠가 먼저 뛰었어." 라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내가 혼이 나는 건 다 그놈의 노란 꽃무늬 원피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버스에 대롱대롱 매달려 얼굴을 박은 곳에 까만 멍이 들었다. 까만 멍은 이마를 시작으로 한 달이 넘게 온 얼굴을 돌아다녔다. 멍든 내 얼굴을 볼 때마다 엄마는 "가시나가 겁도 없이~"를 시전하셨고, 그때마다 나는 같은 잘못을 하고도 혼자만 쏙 빠져나간 오빠가 얄미웠다.
그 후로 그 노란 꽃무늬 원피스는 내 옷장에서 사라졌다. 나도 더 이상 노란 원피스를 찾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