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무지막지하게 더운 7월 중순의 한여름이었다.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온도계에, 곳곳마다 가득 찬 아이들이 내뿜는 열기까지 더해지다 보니 도서관은 마치 한증막을 방불케 했다. 덥다고 아우성치는 아이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숨이 턱턱 막혔다.
여름철이 되어 에어컨을 가동하기 전에는 창문을 열어 덥고 습한 공기를 모두 내보내야 했다. 이어 에어컨을 틀면 습기 찬 바깥공기와 맞물려 도서관 안은 냉장고처럼 시원해졌다. 매일 아침 에어컨을 틀기 위해 치러지는 이 의식은 쾌청한 공간을 만드는데 아주 효과적이었다.
곧 학교 전체에서 가장 시원한 곳이 도서관이라는 입소문이 나면서, 도서관은 매일 꾸역꾸역 몰려드는 아이들로 터져나갈 것처럼 붐볐다. 커다란 목소리에 복식호흡이라는 스페셜한 무기를 장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진정시키려는 나의 시도는 매번 들릴 틈도 안 주고 무산됐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던 어느 더운 날이었다. 딱 적당한 수의 아이들이 시원한 도서관 안에서 각자 조용히 책을 읽는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만나는 고요함과 여유로움을 누리고 있었는데, 한 여학생이 코를 막은 채 쪼르르 달려왔다. 도서관 구석에서 이상한 썩은 냄새가 난다고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악취를 호소했고, 곧이어 나도 계란이 썩은 것 같은 역한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나는 "누구야! 누가 방귀 뀌었어. 지금 자수하면 용서해준다."며 짐짓 큰 소리로 외쳤다. 자수하는 학생은 없었다. 도저히 역한 냄새를 참지 못한 아이들이 "윽.. 선생님 토할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필두로 일제히 코를 막고 도서관 밖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서로 발을 헛디디고 부딪치고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그 와중에 철구는 티셔츠를 배까지 올린 채 의미 없는 비명을 지르며 춤을 추고 있었다. 평소에도 종종 그런 과잉행동을 하는 아이였다. 거의 재난영화를 방불케 하는 시급한 상황이라 철구까지 자세히 체크할 마음의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모두가 탈출하는 동안 나는 황급히 창문으로 달려가 창이란 창은 모두 열고 에어컨 가동을 멈췄다. 창문도, 자동문도 활짝 열어 고정해 두었더니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냄새는 사그라들었다.
이제 냄새의 근원지를 찾아야 했다. 물 샐 틈 없는 수색 끝에 서가 구석에 누군가 방귀탄을 던지고 도망 간 흔적을 발견했다. "이거 누구야! 누가 방귀탄 던지고 도망갔어. 잡히면 혼난다 진짜!" 지독했던 냄새는 15분이 지나서야 어느 정도 빠지기 시작했다. 그제야 안심한 학생들은 다시 도서실로 하나 둘 돌아왔다.
나도 열어두었던 창문을 일일이 닫고 다시 에어컨을 가동했다. 분위기가 다시 고요해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원함을 즐길 수 있었다. 그 무렵,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났다. 그날 점심시간에만 무려 세 번이나 모르는 사이에 방귀탄이 투척되었고, 내 짧은 인내심도 한계에 도달했다.
"지금부터 방귀탄 던진 범인이 잡힐 때까지 에어컨은 못 틀어준다."
"아, 샘 그런 게 어딨어요. 말도 안 돼요. 너무 더운데요."
"그러니까 범인을 본 사람들은 작은 단서라도 다 말해줘! 누군지 알려주면 더 좋고."
집단지성의 힘은 놀라웠다. 아이들은 순식간에 방귀탄을 던지고 간 범인을 특정했다. 예상했던 대로 도서관에 올 때마다 자주 사건사고를 일으키는 15반의 영현이 무리들이 범인이었다. 한두 번 사고를 친 게 아니라서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무리들이 겁내는 담임 선생님께 사건에 대해 말씀드렸다. 또 방과 후에 책임을 지고 반성할 수 있도록 도서관으로 올려 보내달라고 메세지를 드렸다.
그렇게 잠시나마 폭풍 같은 점심시간이 무사히 끝난 줄로 알았다. 예상치 못했던 더 놀라운 일은 그다음에 일어났다. 겨우 한숨 돌리고 있는 중에 학생부장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신지 여쭤보았더니 철구가 아까 도서관에 있었는지를 물으신다. 그렇다고 했더니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복도에서 우연히 만난 철구가 계속 주머니에 손을 넣고 안 빼는 게 이상해서, 주머니에 뭐가 들었냐고 넌지시 물어보며 손을 빼 보라고 했더니 거기서 라이터가 나왔다는 거다. 왜 라이터를 학교에 가지고 다니냐는 학생부장 선생님의 물음에 철구는 상상도 못 한 대답을 했단다. "도서관에 불을 질러보고 싶었어요."라고. 황당했던 학생부장 샘은 라이터를 뺏고 잔소리를 하셨단다. 유심히 철구를 잘 지켜보셔야 하겠다는 학생부장의 말에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갑자기 온몸에 힘이 쭉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나무와 종이로 가득 채워진 도서관에 불을 지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는 아이가 있다는 게 무서웠다. 몇 시간 동안 넋이 나간 채로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다독여야 했다. 얼마 후 영현이를 비롯하여 모두 네 명의 남학생이 올라왔다. 담임선생님께 이미 호되게 혼이 난 것 같았다. 몇 번의 추궁 끝에 방귀탄 사건의 진범들임을 자백받을 수 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학생부에 호된 처분으로 넘겨버리고 싶었지만, 반성문을 쓰도록 하고 반성의 마음으로 도서관의 청소봉사활동을 하도록 지도하는 선에서 마무리했다. 무엇보다 그날은 내가 아이들을 더 이상 지도할 정신적 여력이 남아있지 않기도 했다. 지나치게 충격적이었던 그날 이후로 12년이 흘렀지만, 감당하기 힘들 만큼 어렵던 학교생활의 기억으로 여전히 새겨져 있다.
평소보다 두 달 가까이 늦게 채용이 되어 그 시간을 기도와 말씀으로 풀 충전한 상태에서 의욕 넘치게 근무를 시작했었다. 그 의욕은 두 달도 안 되어 바닥까지 무너졌고 지하 땅굴을 파고 들어갈 기세로 괴로워했던 애증이 가득한 학교다. 10개월 동안 날 버티게 해 준 것은 사고뭉치 아이들로 인해 펑펑 울던 나를 매번 달래주시고, 함께 기도해주시던 신우회 동료 선생님들이었다. 귀한 인연을 맺어주신 감사한 동료 샘들 덕분에 삭막하고 막막했던 그 시절 참 많은 위로를 얻을 수 있었다.
라이터와 방귀탄 사건 범인들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상하고 기이했던 중2의 시간을 다른 친구들과 사서 샘을 괴롭게 하는데 썼던 아이들. 이제는 최소한 자신의 잘못에 대해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기를 간절히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때 피폐해진 나를 보듬어주셨던 동료 선생님들께 다시 한번 마음을 다해 감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