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리 알려진 우스갯소리 중에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 이유가 중2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심지어 이 나이대의 아이들을 외계인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만큼 사춘기를 겪는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존재라는 생각이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각인되어 있다. 자동문이 설치된 학교도서관에서 일하던 때는 바로 그런 중학교 2학년의 위력을 가감 없이 체험해 볼 수 있던 해였다.
어느 날, 평소처럼 4교시에 이른 점심을 먹고 학생들을 맞이하기 위해 도서관 문을 활짝 열어두었다. 자동문에서 맞은편 끝 벽에는 도서 검색을 위한 컴퓨터 4대가 일렬로 놓여 있다. 검색용임에도 가끔 지뢰 찾기나 프리챌 같은 게임을 하는 아이들 때문에, 정작 필요한 아이들은 이용하기가 힘들었다.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학생 몇 명이 도서관으로 들어왔다. 아직 도서부 당번이 오지 않았고, 밀려드는 대출 반납을 혼자 처리해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바로 그때, 동현이가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와서 큰일이 났다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평소에 언제나 밉살스러운 짓을 골라하던 아이라 심드렁하게 뭐가 큰일이냐고 물었더니, 도서관 컴퓨터에 누가 이상한 걸 깔았단다. 마침 도착한 도서부 당번에게 대출대를 넘기고, 컴퓨터 쪽으로 이동해서 인터넷 화면을 켰다.
맙소사!! 인터넷 창을 켜자마자 이른바 수십 개의 19금 사이트 창이 팝업으로 다다다닥 뜨기 시작했다. 몹시 당황스러웠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침착하게 모든 창을 닫고, 인터넷 옵션에 들어가 초기화면을 검색 화면으로 다 수정했다.
동현이는 눈만 빼고 온 얼굴을 양손으로 감싸 쥐며 내게 외쳤다. “선생님!! 어떻게 그런 걸 보실 수가 있어요? 한다. 동현이의 말에 기가 찬 나는 “니가 깔았잖아!”하고 응수했다. 동현이는 “어떻게 알았지? 에이~ 재미없어”하더니 친구들과 함께 도서관을 나가 버렸다.
이를 악물고 부글부글 솟구치는 화를 꾹 누른 뒤, 4대의 검색용 PC에 깔린 19금 사이트 링크를 차근차근 모두 삭제했다. 동현이가 같은 장난을 또 칠 게 너무 뻔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조치가 필요했다. 점심시간이 끝나자마자 PC 유지보수 기사님께 도서 검색대에 PC Keeper를 설치해달라고 부탁했다.
PC Keeper를 설치하면 관리자가 아닌 사람이 다른 프로그램을 깔 경우, 재부팅만 하면 잘못 깔린 프로그램이 자동 삭제된다. 완벽한 보안장치도 깔았으니 내심 안심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그리고 며칠 후 검색대를 사용하던 다른 학생이 내게 울상이 되어 찾아왔다.
검색을 하려고 하는데 마우스가 안 먹는다고 했다. 검색대를 살펴보니, 내가 보지 못한 사이에 마우스 속의 볼을 전부 빼 갔고, 거기에 키보드의 key 중에서도 엔터키나 화살표 키 3~4개를 빼서 없앴다는 것을 알았다.
뒷골이 당기고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빡침이 속에서부터 올라왔다. 안 봐도 범인은 동현이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동현이 담임 선생님이신 체육샘께 그동안의 사건에 대한 메시지를 드렸다. 담임 선생님의 닦달로 다시 도서관에 온 동현이는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언제쯤 철이 들 거냐고 했더니 자기는 마우스 볼만 가져갔고, 키보드 Key는 건드리지도 않았다며 부득불 우겨댔다. 전적이 너무도 화려해서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더니, 그제야 도서관 서가 구석에 감춰둔 키보드 Key를 찾아서 들고 온다. 동현이에게 빠진 키보드 Key와 마우스 볼을 고스란히 제 자리로 돌려놓고, 반성문을 쓰도록 한 후에야 끓어오르던 화를 간신히 가라앉힐 수 있었다.
학교도서관에는 주로 착한 아이들만 오지 않냐고 이야기하는 분이 많다. 학교도서관에는 착한 아이들도, 장난이 심한 아이들도, 조용한 아이도, 시끄러운 아이도 모두 온다. 가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의 한계를 넘는 아이들을 만날 때면 속상해진다. 혹시라도 내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솔직히 말하면 아이에게도 화가 나지만, 감당하지 못하는 스스로가 가장 화나는 것 같다.
감사하게도 이제껏 그런 순간들이 생길 때마다 나를 믿어주고 애정해 주는 예쁜 아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가 주시는 동료 선생님들이 그런 마음을 잠재우고,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는 버팀목이 되어주셨다. 겉으로 보기에는 조용해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매일매일 바람 잘 날 없는 학교도서관에서 사춘기 아이들과 함께 오늘도 무지하게 파란만장한 하루가 또 이렇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