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첫 학교에 근무할 때만 해도 아이들이 쉬는 시간에 다녀가면, 재빨리 서가를 정리했다. 촘촘히 책이 꽂혀있는 서가에서 중간에 한 권을 빼면 양쪽의 다른 책들이 기울어진다. 오랫동안 기울어진 자세로 놓인 책들은 본래의 반듯한 모습을 잃게 된다. 정리하지 않고 계속 놔두면 전체적으로 판형이 뒤틀려 책이 쉽게 낱장으로 뜯어지게 되기도 한다. 그런 것들이 불편해서 L자 모양의 북엔드로 책이 가지런하게 세워지도록 꽉 눌러 정리를 했었다.
정리도 한두 번이지. 아이들이 다녀갈 때마다, 쉬는 시간마다, 점심시간 이후마다 계속 정리를 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 점점 배열이 틀어진 책들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가 쌓여 갔다. 어느 순간부터 서가에 자주 들어가지 않게 되었다. 서가에 들어가면 보이는 것이 온통 잘못 배열된 책이다 보니 스스로의 정신건강을 위해 그게 옳다고 생각했고, 덕분에 마음의 평화도 찾았다. 이후로는 가끔 새 책이 들어오거나, 책이 많이 섞여 있거나 할 때만 따로 시간을 잡고 정리를 했다.
4월 중순부터 일을 시작하게 된 학교가 있었다. 학기 중간부터 투입이 되면 그런 아이들이 있다. 선생님이 어느 정도까지 장난을 허용하는지, 테스트해 보는 것이다. 흔히들 '간 본다'라고 얘기하기도 한다. 처음엔 그저 북트럭에 있는 책들을 섞어놓는 정도였다. 반납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다음부터가 진짜 문제의 시작이었다.
어느 날, 남자아이 하나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미묘한 얼굴로 안에 누가 뭘 해놨다며 나를 찾았다. 항상 같이 다니는 같은 반 3명까지 총 네 명이 무리 지어 다니면서 이미 여러 번 나를 분노하게 했었던 아이들이다, 조금 의아하기도 해서 “뭘 했는데?” 하고 물어보니 가보시면 안다고만 했다. 서가 안쪽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책들이 50여 권 정도가 서가와 서가 사이 길목마다 여러 군데 쌓여 있었다. 문제는 그 책들이 다 다른 곳에서 뺀 책이라는 것이었다.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빡침이 올라왔지만, 반응을 크게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일단, 가볍게 대처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원래대로 돌려놔. 탑이라도 쌓게?" 했더니, "왜 저한테 그러세요." 한다. 순간 참지 못하고 약간 욱해서 "네가 한 거잖아."라고 말했더니, 그 남학생의 반응은 "오. 눈치 빠르시네."였다. 남학생의 이름은 염동현, 정리하라는 말에 동현이는 대충 빈 곳에 여기저기 책을 끼워 넣으려 했다. 애초에 번호대로 정리하는 것보다 이미 섞어놓은 걸 정리하는 게 백배는 피곤하고 눈 빠지는 일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번호대로 정리해야지. 그럼 차라리 북트럭에 가져다 놔."
"네에~ 네에~"
아이는 싱긋거리더니 책을 북트럭에 가져다 놓는다. 북트럭에 놓인 책들은 점심시간에 도서부 아이들과 함께 번호대로 다시 정리해서 꽂아두었다. 그렇게 정리가 된 줄 알았다. 첫 번째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도서부원인 지연이가 다급히 나를 불렀다. 서가에 들어가 보니 아까보다 훨씬 많은 무려 100여 권의 책들이 더 여러 곳에 마치 바벨탑처럼 쌓여 있었다. 통행이 어려울 정도였다.
동현이와 무리들의 만행은 그 후로 한 달이 넘도록 계속되었다. 매일 매 시간마다 정리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녀석들은 도대체 언제 들어왔는지 내 데스크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는 위치에 바벨 책탑을 곳곳마다 쌓아두었다. 나는 점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다. 책탑을 쌓는 권수는 100권에서 150권, 200권, 300권으로 갈수록 점점 늘어났다. 녀석들은 손 닿는 곳이라면 여지없이 책탑을 쌓았다. 잘 보이지도 않는 창문틀까지 책들을 죄다 세로로 세워 탑을 만들어 놓곤 했다. 심지어 책이 잘 안 세워졌는지 책과 책 사이에 껌을 뱉어 책들을 붙여 쌓기도 했다.
어느 날은 발판을 밟고 올라가 책을 정리하던 도서부 아이가, 서가 꼭대기에서 책을 발견했다. 책탑 사건의 범인들이 책으로 레이업 슛을 하겠다며 위로 던진 책들이었다. 서가 꼭대기 위로 그렇게 농구하듯 던져서 올라가 있던 책도 무려 3~40권이 넘는 수였다. 발판을 밟고 일일이 올라가 책들을 다 꺼냈다. 책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고, 분실된 줄 알았던 책과 대출하지 못하는 만화책들도 가득했다. 교복 속에 숨겨서 몰래 책을 가지고 나가 운동장에 버려두어 비를 맞게 하기도 했다.
책탑이 쌓여갈 때마다 꽤 튼튼한 제본의 책이어도, 아무리 두꺼운 양장본이어도 책이 계속해서 찢어지고 훼손되어 가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책이 망가져 가는 것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찍어둔 책탑의 사진들을 포함하여 출입 금지 경고문을 작성하였다. 다른 선량한 아이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조치였다.
이런 일이 한 달 넘게 반복되니 이대로 참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스스로 제어하기도 힘들었다. 담임선생님께도 메시지로 동현이와 그 무리를 도서관에 출입 금지한다고 전달했다. 이번 일로 인해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계속해서 신경이 모두 곤두서 있었고 고통과 인내심의 한계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 아이들을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불가능했다. 그 와중에도 도서관은 늘 북적였고 하루에도 3~4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녀갔다. 그야말로 미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결국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학년을 나누어 먹는 2시간의 점심시간 동안, 한 무리가 자동문 바로 앞 소파에 모여 앉아 도서관이 떠나가도록 떠들어댔다. 온 힘을 다해 질서를 잡으려 했지만, 내 목소리는 소란스러운 아이들의 목소리에 묻혀 지워졌다. 직접 아이들을 지도하기 위해 대출 데스크에서 일어나자마자, 소파에서 소란을 주도하던 아이들이 일제히 자동문 밖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손 닿지 않는 곳까지 도망갔다가 다시 들어와 소란을 피우고, 다가가면 또 밖으로 도망가고. 계속되는 술래잡기 같은 장난질을 받아줄 마음의 여유 같은 건 내게서 진작에 사라지고 없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도망가는 무리를 어떻게 해서든지 잡기 위해 책상 위에 놓여있던 드럼 스틱을 창처럼 소파를 향해 집어던졌다. 솔직히 손에 잡히는 것은 그게 무엇이든 죄다 던져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뿔싸! 이미 도망간 아이들 대신 소파에 남아 책을 읽던 아이의 얼굴에 날아간 드럼 스틱이 부딪쳤다. 안경을 쓴 아이였다. 잘못을 깨닫고 아이에게 바로 사과를 했지만,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신 아이의 어머니께서 크게 화를 내셨다. 아이의 어머니께는 사과 전화를 드렸고, 다행히 사과를 받아주시고 학교의 상황들도 이해해주셔서 원만하게 잘 해결되었다.
분명 처음 이 학교에 왔을 때는 몇 달 동안 기도했고 여유롭고 평안한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한 달 반 만에 나는 내 분노에 대한 통제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그나마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던 건, 방과 후에 마음 맞는 학교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던 기도 시간이었다. 매주 모일 때마다 우느라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마음이 저리고 괴로웠다. 왜 이런 일을 겪는 것일까. 대체 나한테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수백 가지 생각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흑흑. 제가 뭘 틈을 줬을까요? 뭘 잘못한 걸까요?"
"샘이 잘못하신 게 아니죠. 걔네가 유난스러운 거지."
"근데 진짜 어떡해요? 너무 힘드실 거 같아요."
"일단 담임 선생님한테도 신고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아요."
사건은 그렇게 동현이 무리들에 대한 출입 금지로 한 달 반 만에 일단락되었다. 바벨 책탑 사건은 나의 한계를 경험하고, 내 바닥을 철저히 보게 했던 사건이었다.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지고 끔찍해질 수 있는지를 다시 한번 절감하기도 했다. 너무 괴로웠던 기억이 대부분이라 애써 잊으려 했던 곳이지만, 가장 의지가 되는 좋은 동료 선생님들을 만난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 인생에 커다란 상처와 깨달음을 동시에 남긴 바벨 책탑 사건. 다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답답해진다. 솔직하게 말하면 다시는 이런 일을 겪고 싶지 않다. 학교에서 일하는 것을 관두어야 하나 생각할 정도로 아이들 때문에 고생을 했던 기억이기 때문이다. 우리 삶에서 행복한 기억만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인생은 보통 그렇지 않다.
그렇게 고생했던 기억을 잊고 여전히 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나를 보면 내가 참 좋아하고 존경하는 오선화 작가님의‘우리는 사람들 때문에 절망하지만, 사람들 덕분에 힘을 낸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중요한 건 힘든 아이들에 관한 기억들도, 고마운 아이들에 관한 기억들도 모두 나의 삶이라는 것이다.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행복한 지금을 더 소중하게 느낄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