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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가 시작하면 학교는 눈이 핑핑 돌 정도로 바쁘게 돌아간다. 특히 새로운 학교로 옮겼다면 더더욱 그렇다. 업무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데 기본적인 운영상황 파악도 하고 적응도 해야 한다. 공교롭게도 이전 샘이 주문해두고 가신 새 서가(책장)까지 들어온단다. 먼저, 2주간 휴관을 하고 도서 정리부터 하기로 했다.
2주간의 휴관 안내를 문 앞에 붙여두고 책에 파묻혀 한참 도서를 정리하고 있는데 도서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도 들지 못하고 큰 목소리로 ‘미안한데 지금 휴관 중이라 들어오면 안 돼요’하고 말했다. 아이는 반납만 해주면 안 되냐고 부탁했고, 나는 책상 위에 책을 두고 가면 반납해주겠다고 대답했다.
다음 날 점심시간, 여전히 책 정리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다시 도서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데스크로 나와보니 어제 왔던 그 친구가 다른 아이들 3명과 함께 온 거였다.
“새로 오신 사서 샘이세요? 저는 현경이라고 하는데요. 혼자 하시기 너무 힘드실 거 같아서 도와드리고 싶어서 친구들하고 같이 왔어요.”
“아냐, 괜찮아. 마음만이라도 고마워.”
“저희 도서정리 진짜 잘해요. 초등학교 때 도서도우미 했던 정윤이도 있어요.”
“물론 샘은 고마운데 너희가 너무 힘들잖아.”
“그럼 혹시 도서부 있어요?”
“아직 못 뽑았어. 이제 막 시작해서.”
“그러니까 저희가 도울게요. 저희 진짜 정리 잘해요. 믿고 맡겨보세요!”
“그래 주면 나야 너무 고맙지. 근데 너무 힘들면 언제든지 그만해도 돼. 알겠지?”
네 명의 소녀들 현경이, 정윤이, 다해, 솔빈이는 2주간 하루도 안 빼놓고 매일 점심시간마다 도서관으로 모였다. 틈틈이 방과 후, 쉬는 시간까지 와서 서가 정리와 도서 정리를 도와주었다.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수월하게 서가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그동안 나는 이 발랄하고 적극적인 소녀들과 급속도로 친해졌다.
다해는 동글동글하고 귀여운 얼굴과는 다르게 힘이 천하장사였다. 잡지 서가를 둘이 같이 옮기자고 했더니, ‘에이~쌤, 이런 건 한 손으로도 들어요’ 말하고는 정말로 잡지 서가를 번쩍 들어 내가 말한 위치에 가져다 놓았다. 입을 못 다물 정도로 놀라워했더니 자기는 남는 게 힘밖에 없다며 언제든 필요하면 다해를 불러달라고 했다. 그럼 도서관이 혹시 무너지면 네가 기둥을 받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먼저 빠져나가겠다고 했더니 유쾌하게 옛썰~ 하고 대답한다.
솔빈이는 친구들이 지루해할 때마다 각종 노래와 댄스 커버로 분위기를 살려주었다. 그냥 대충 하는 게 아니라 노래와 댄스 실력이 아이돌 저리 가라다. 발랄하고 애교도 많고 생기가 넘치는 스타일이다. 손재주도 좋아서 비즈공예로 열쇠고리와 각종 장신구를 만들어 친구들에게 나누어주고, 도서관 행사를 할 때면 선물포장도 제일 예쁘게 한다. 거기에 차트체와 POP 등 글씨까지 잘 쓰는 타고난 금손 솔빈이 덕분에 도서관 게시판은 언제나 빛났다.
현경이는 사람을 좋아하고 친구들에게 세심하게 반응해주는 감수성 풍부한 아이다. 조용조용한 듯하다가도 관심 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폭풍 수다를 떨어댄다. 보면 볼수록 나랑 닮은 점이 너무 많은 데다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것도, 노래하는 걸 좋아하지만 부끄러워하는 것도 비슷하다. 공감 능력이 높아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빨리 알아차리는 만큼 눈치도 자주 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도 했다.
정윤이는 한 마디로 어른스럽다. 솔빈이와 현경이가 티격태격할 때마다 뭘 그런 걸로 싸우냐며 기가 막히게 중재를 한다. 네 명의 소녀들이 서로 관계가 틀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아이였다. 매사에 신중하고 차분해서 다른 세 아이가 정윤이를 신뢰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학업 성적도 우수하고 논리적인 데다 토론도 잘해서 정윤이가 무언가를 말하면 반박할 수 없었다.
학기 초 도서 정리를 도와준 것으로 시작된 인연은 계속 이어져서 결국 네 명의 소녀 모두가 도서부에 지원했고, 도서부에서 함께한 2년 동안 수많은 추억들을 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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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대학교 때 함께 자취를 했던 네 명의 과 동기이자 동아리 동기인 친구들이 있다. 네 명의 소녀들을 볼 때마다 자꾸 그 친구들 생각이 떠올랐다.
가끔 넷이서 이야기 나누는 걸 보면 다음에 할 말이 연상되곤 했는데 거의 틀린 적이 없었다. 그중 특히 현경이와는 성향도 너무 비슷해서, 좋아하는 취향과 사소한 습관까지 나와 비슷한 현경이를 보며 스스로를 많이 돌아볼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The little mermaid인 것도,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리기를 좋아하는 면도 그랬다.
하루는 고3 때 소풍 가서 찍었던 내 사진을 아이들이 우연히 보게 되었다. 네 명의 소녀들은 현경이랑 쌍둥이인 줄 알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신기하게도 그때 내가 썼던 안경테까지 지금 현경이가 쓰는 것과 비슷했다. 현경이에도 나처럼 연년생인 오빠가 있었고, 더 놀라운 건 현경이의 아버님 성함과 우리 아빠의 이름이 한자까지도 똑같다는 사실이었다. 현경이와 내게서 비슷한 점을 끝도 없이 찾을 수 있었다.
어느 날 현경이가 혼자서 도서관에 왔다. 기분이 조금 안 좋아 보여 무슨 일인지 물어봤더니 전날 솔빈이와 투닥투닥했단다. 사실 솔빈이와 현경이가 투닥거리는 것은 자주 있는 일이기도 했다. 현경이는 성격적으로 나와 닮은 부분이 많았다. 그러기에 지금 현경이가 힘들어하는 부분들을 잘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현경이에게 솔빈이가 너를 싫어해서 자꾸 싸우게 되는 건 아니라고 말해줬다. 현경이는 아니라며 솔빈이는 자기를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고 한다. 서로 성향이 달라서 오해하게 되는 부분이 많다는 걸 현경이가 이해할 수 있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짚어가며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음.. 현경아 내가 뭐 하나 말해봐도 돼? 맞는지 들어봐.”
“네.”
“평소에 다해가 너를 되게 좋아하고 항상 네 편을 드는 것 같지?”
“네. 맞아요.”
“솔빈이는 네 생각엔 항상 너에게만 시비를 거는 것 같지?”
“네!”
“근데 솔빈이는 자기가 하는 행동에 네가 상처받는다는 걸 몰라. 그러니까 일부러 상처를 주려고 그런 게 아니라 솔빈이의 방식대로 표현한 것뿐이야. 근데 너한텐 그게 너를 힘들게 하는 방식인 거지.”
“그래요?”
“너는 마음이 상했는데 다음 날 솔빈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널 대하잖아. 투닥거려도 까먹고 다시 잘 지내잖아. 일부러 나쁜 의도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지.”
“그렇긴 해요.”
“네가 계속 마음이 불편하면 솔빈이에게 말해.”
“뭐라고 말해요?”
“네가 나한테 이런 식으로 말하면 나는 좀 불편하고 힘들어.”
“그러면요?”
“그럼 솔빈이는 분명히 이렇게 대답할 걸. 진짜? 어 몰랐어. 미안해.”
“아.....”
“잘 몰라서 그러는 거니까. 네 솔직한 마음을 솔빈이에게 잘 말해주면 돼.”
“그런 말 하면 저를 싫다고 할까 봐 무서워서요.”
“에이~ 그럴 리가. 솔빈이도 너 좋아해.”
“한 번, 말해볼게요.”
“마지막으로 솔빈이랑 너랑 싸우면 다해는 항상 네 편 들어주는데, 정윤이는 솔직히 너희가 둘이 싸우든 말든 관심 없지? 이제 그만하라고 한 마디만 툭 던지고 그런 스타일이잖아.”
“네. 샘 진짜 신기해요. 어떻게 아셨어요?”
“샘한테도 꼭 너희들처럼 성향이 다 다른 네 명의 대학 친구들이 있어”
“우와 너무 신기하네요. 뭔가 통한 것 같아요.”
“현경이를 볼 때마다 샘이랑 너무 비슷한 성향인 것 같아서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사람들은 생각보다 타인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고 눈치 보지 않아도 괜찮아. 특히 다해, 솔빈이, 정윤이는 네가 어떻게 하든 너를 잘 받아줄 친구들이니까. 걱정하지 말고,”
“아.. 정말 감사합니다. 엄청 위로가 돼요.”
4인 4색 네 명의 소녀들은 내가 현경이에게 해준 이야기를 전해 듣고는 기가 막히게 똑같다며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했다. 덕분에 네 명의 소녀들은 전보다 훨씬 더 돈독해진 사이가 되었다.
이제 그때의 소녀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 시기를 지나 당당한 사회초년생이 되었다.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매력 넘치는 삶을 멋지게 살아내고 있는 다해, 솔빈이, 현경이, 정윤이의 4인 4색의 삶을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