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 1위는 단언하건대 급식실과 매점이다. 맛있는 점심에 대한 기대와 친구들과의 소소한 간식타임의 즐거움이 없다면, 학교는 지금보다도 훨씬 더 인기가 없는 장소가 될 거다.
매달 말일에 각 반으로 다음 달의 급식 소식지가 발행되면 교실은 소란스러워진다. 최근에는 학교급에 따른 각종 급식 알리미 어플-고등학교는 김급식, 중학교는 장급식, 초등학교는 최급식-이 있어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확인 가능하다. 심지어 매일의 급식을 알려주는 카톡도 있다. 세상 참 좋아졌다.
급식 소식지로만 다음 달의 메뉴를 확인할 수 있던 시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식단 보관법을 볼 수 있었다. 소식지 자체를 4등분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아이, 소식지의 식단을 날짜별로 잘라 순서대로 학생증 뒤에 끼우고 다니는 아이, 식단을 기억해놨다가 매일 아침 칠판에 그날의 식단을 적어주는 아이 등등. 그야말로 급식을 먹기 위해 학교에 온다고 해도 지나친 이야기는 아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자마자 키가 크고 예쁘장한 아이가 바로 도서관에 와 있는 거다. 며칠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조금 걱정이 되어 점심은 먹었냐고 말을 걸었다. 연경이는 다이어트를 해야 해서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내게 말했다. 굶으면 오히려 다이어트가 어려우니 조금씩이라도 먹으라고 해도 속이 안 좋다고 하며 점심을 먹으러 가지 않았다. 강요할 수는 없어서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연경이가 밥을 안 먹는 날은 늘어만 갔다. 내 기억으로는 분명 1학년 때는 점심을 꼭 챙겨 먹고 왔었는데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열흘쯤 지난 후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슬쩍 담임 선생님께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연경이가 2학년이 된 후 계속 점심을 안 먹고 바로 도서관으로 오네요. 무슨 일이 있나 염려도 되고 담임선생님도 아셔야 할 것 같아 메시지 드려요’
담임선생님이 답장을 보내주신 내용은 이랬다. 1학년 때 연경이와 같은 반이던 친구 경선이가 2학년이 되며 다른 반이 되었다고. 가끔 따로 만나서 경선이와 같이 밥을 먹기도 했는데 교실 급식으로 진행되다 보니 반별로 학급에서 식사하도록 지도해야 했고, 같은 학급에서 밥 먹을 친구가 없던 연경이가 자리를 피해 도서관에 가는 걸로 생각이 된다는 거였다. 전후 사정을 듣고 나니 더 신경이 쓰였지만, 매번 물어도 연경이는 괜찮다고만 했다.
그날도 연경이는 점심을 먹지 않고 도서관으로 왔다. 아무래도 여러 가지로 힘들 것 같고 솔직한 마음이 어떤지도 궁금해서 농담처럼 연경이에게 말을 건네보았다.
“연경아~ 이따 수업 끝나면 배고파서 집까지 갈 힘이 있겠어? 오늘 7교시나 된다고.”
“집에서 저녁을 많이 먹어서 괜찮아요. 그리고 아침도 많이 먹고 왔어요.”
“급식비는 계속 나가는데 급식도 먹어야 덜 배고프지.”
“엄마한테 점심 안 먹는다고 허락받았어요.”
“아, 그랬어? 그럼 뭐 간식거리라도 조금 줄까?”
“간식은 먹었어요.”
“다행이네. 혹시 간식 먹을만한 데 없으면 지금처럼 애들 없을 때 잠깐 먹어도 돼. 원래 도서관은 음식물 반입금지라 안 되지만 연경이는 예외로 해줄게. 대신 애들 없을 때만.”
“네. 감사합니다.”
연경이는 그렇게 1년 내내 점심을 거르며 다녔다. 슬퍼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의연하고 씩씩하게 잘 지냈다. 종종 말동무도 하고 간식거리가 생긴 날은 나누어주기도 하며 연경이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담임선생님도 엄마도 여러 번 연경이를 설득했지만, 단호한 연경이의 태도에 더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었다.
드디어 연경이가 3학년으로 진급하는 새 학기, 점심시간 시작을 알리는 종이 쳤다. 연경이는 늦게까지 오지 않았다. 마음속에 안도감이 느껴지며 밥동무를 드디어 찾았구나 싶어 뛸 듯이 기뻤다. 점심시간 예비종이 울릴 무렵, 연경이는 경선이와 함께 도서관에 잠시 들러주었다.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고 말하는 연경이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사실 숨겨진 뒷이야기가 있다. 학년말에 반 편성을 할 때였다. 학년부에서 의견을 달라고 하셔서, 연경이의 이야기를 슬쩍 말씀드렸다. 같이 밥 동무할 친구와 한 반에 넣어주시면 좋겠다고 말이다. 담임선생님도 같은 건의를 해주셨고 그렇게 연경이는 본인의 단짝이자 밥 동무를 되찾았다. 행복한 한 해를 보내고 연경이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5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결혼을 앞두고 인스타에 소식을 올렸다. 여러 사람의 축하글과 함께 처음 보는 아이디로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다. 연경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훨씬 건강하고 행복해진 연경이는 내가 근무하고 있던 학교까지 찾아와 결혼선물로 텀블러까지 건네주고 이야기를 나누다 돌아갔다. 그녀의 성장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뿌듯해졌다.
어려울 수 있던 시간을 잘 이겨내고, 자신답게 잘 성장한 연경이의 더 멋있어질 앞날을 진심을 담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