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 올나이트

고민해도 괜찮아

by Pearl K

20대가 찬란하고 빛나는 청춘의 시기라고 누가 말했던가. 나의 이십 대는 하루하루가 폭풍 같은 비바람 속의 날들이었다. 이상은 높았고 반대로 현실은 초라하기만 했다. 매일 허덕이며 하루를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었다. 짧게는 5개월, 길어도 1년이 채 안 되는 프로젝트 계약직을 전전하며 보이지 않는 앞날에 많이도 좌절했었다.


길고 긴 임시계약직의 늪을 지나 마침내 학교도서관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을 때였다. 상대적으로 몹시 부족한 대우를 받았지만 대충 할 수는 없어 업무든 아이들을 지도하는 일이든 최선을 다했다. 그중 가장 힘들면서도 좋았던 것은 밤새 메신저와 톡을 이용하여 아이들을 상담해 준 것이었다.


보통은 퇴근 후의 연락은 급한 일이 아니면 잘 받지 않았다. 학기 중에 밤을 새워가며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다음날 업무에도 지장이 생기고 나의 피로도가 그대로 학생들에게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이 걸린 큰 고민을 하는 학생들을 차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성 정체성에 관한 고민을 하던 주현이는 어릴 때부터 계속된 아빠의 가정폭력 문제를 겪고 있는 아이였다. 아빠로 인해 초래된 부정적인 인식과 감정들이 주현이가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았지만, 주현이에게는 절박한 문제였고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내게 학습된 가치관에 따른 생각과 판단을 내려놓고 아이의 마음을 그대로 들어주려고 노력했던 시간이었다.


정이는 고3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여러 가지 고민이 많았다. 사실 정이와는 중학교 시절을 함께 지냈는데, 이미 고등학생이 되어 매일 얼굴을 보지는 못하고 가끔 연락만 하고 지내던 중이었다. 그동안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어른들은 먼저 공부나 열심히 하고, 진로는 그 후에 정하라고 말해왔었다. 그래 놓고는 고3이 되면 당연히 진로를 정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막상 진로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도 기회도 별로 없었던 아이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정이의 고민도 같은 맥락이었다. 나는 정이에게 고3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라고 말해주었다. 이제까지 너를 보호해 준 가족을 벗어나 오롯이 정이만의 삶을 만들어 가게 될 거라고 말이다. 그때 당황하지 않으려면 내면의 힘을 기르고, 자신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용기를 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정이는 정이니까. 공부를 잘하든 못하든 그냥 네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한 사람이야. 그건 알지? 누구나 실패해 누구나 넘어져. 단번에 성공하는 사람이 뉴스에 나는 이유는 희귀하기 때문이야. 99% 이상의 사람들이 계속 넘어지고 실패하며 자신의 진짜 길을 찾아가지. 이제 그 출발점이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겁내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넌 이미 첫걸음을 뗐고 그걸로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야.”


영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비서학과로 진학을 했다. 2~3년 정도 한 회사 CEO의 비서로 일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이직 여부를 고민하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게는 아직 낯선 회사생활이었다 보니, 졸업 후였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상담 요청을 해 온 것이었다. 알고 보니 비서의 업무라는 게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고, 오너의 무리한 요구가 더해지면서 실망감이 커졌던 것 같다.


밤새도록 영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고민을 들어주었다. 나 역시 척박하고 막막했던 20대를 지나왔기에 영지에게 충고가 아닌 진심의 공감을 해줄 수 있었다. 아직 수많은 기회가 남은 스물둘의 영지에게는 지금의 상황과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덕분에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고 꽤 후련해졌다는 피드백을 전해받았다.


밤새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은 ‘고민해도 괜찮아’라는 말이었다. 주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낯설었던 세계를 이해하는 시작이 되었다. 정이의 고민을 통해 평생이 결정되는 중요한 진로와 꿈을 마지막 학창 시절에 급하게 정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를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사회초년생으로 고민하는 영지를 위로하며 나의 20대도 위로받을 수 있었다.


우리도 그렇게 하지 못했으면서 아이들을 재촉하기만 하는 어른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대도 20대도 아직은 더 많이 부딪치고 깨지고 넉넉히 고민하는 시간이어야 한다. 그렇게 치열한 고민을 통해서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비로소 체득하고 결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과의 상담은 오히려 내게 용기를 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반백 살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나도 여전히 매일 같은 문제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런 나도 있으니 '아직 충분히 고민해도 괜찮아!!' 하고 자신 있게 외쳐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