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낙엽들

3개월의 초과근무

by Pearl K

매년 12월 말~2월 중순이 되면 치열한 눈치싸움이 시작된다. 이 학교에서 계속 근무가 가능할지 알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딱 그맘때쯤이었다. 교감 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학교 사정으로 더 계약할 수가 없노라고 말씀하셨다. ‘올 게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을힘을 다해 일했는데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아무 대책 없이 내쳐져야 한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고, 그 선택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았다. 여기엔 작은 오해가 있었다. 그날 하루 동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피가 모두 말라버린 것만 같았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론이 났고, 학교를 옮기는 조건으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예고도 없이 울음이 터졌다. 새어 나오는 울음을 들키기도 자존심 상했다. 조인성처럼 입을 주먹으로 막고, 숨죽여 2시간을 내리 울었다.


새롭게 간 도서관을 본 순간, 너무 막막했다. 도서관 바로 앞은 급식실에, 복도는 감옥 같은 쇠창살로 막혀 있었다. 마치 동물원 우리에 갇힌 신세가 된 기분이었다. 오전에는 급식실에서 준비하는 수백 가지 음식 냄새가 뒤섞여 괴로웠다. 오후에는 씻겨지는 식판이 와장창 부딪칠 때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해 질 무렵이 되면 도서관에 잔뜩 안개라도 낀 것처럼 습한 공기가 가득했다.


낯설고 서먹한 마음이지만 용기를 내어 도서부 아이들에게라도 무엇을 같이 하자고 하면 반응이 시큰둥하고 부정적이었다. 학교 분위기가 아무리 쓸어도 잘 쓸리지 않는 젖은 낙엽들처럼 축 늘어져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물에 잠겨 간신히 코만 내놓고 숨만 겨우 쉬는 것 같은 시간이 계속되었다. 나까지 한없이 아래로 아래로만 가라앉았다. 자꾸만 호흡과 손발이 척척 맞던 이전 학교 아이들이 그리워졌다.


무기력하고 의욕 없고, 하루가 멀게 학폭 사건이 넘쳐나는 학교였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다. 너무 답답해서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번에 다시 학교에서 일할 수 있게 해 주시면, 신우회를 다시 섬기겠다고 고백했었다. 그 약속을 지켜야 했다. 같이 기도할 선생님을 찾는 혼자만의 퀘스트가 시작되었다. 점심시간 밥을 먹을 때 기도하고 드시면, 조용히 찜해두었다가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넓고 휑한 학교에서 아는 사람이라곤 없었다. 답장을 기다리다가 자연스럽게 포기했다.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고 생각하며, 매주 목요일 방과 후 도서관에 남아 성경책을 펴 놓고 한 시간씩 혼자서 예배를 드렸다. 3개월 동안의 자체 초과근무였다. 갑자기 모든 것이 좋아졌다는 그런 드라마틱한 일은 전혀 없었다. 삶은 여전히 모래알을 씹은 듯 팍팍했고, 아이들에게 새 활동을 권하는 데도 지쳐갔다. 기도의 효과는 의외의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시험감독을 하러 오신 학부모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그분 직업이 선교단체 간사인 걸 알게 되었다. 같은 단체 간사의 자녀들이 이 학교에 여러 명 있고, 매주 월요일마다 학교 맞은편에 사는 분의 집에 모여 학교를 위해 기도하신다고 했다. 감사하게도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니 좋게 봐주셨다. 그렇게 든든한 소수의 기도 동역자가 생겼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중학교 3학년의 고교 입시가 끝난 바로 다음 주였다. 졸업을 앞둔 3학년 아이들 몇 명이 나를 찾아왔다. 아이들의 얼굴이 왠지 반짝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졸업하기 전에 학생 기도모임을 만들어 자리를 잡아놓고,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가겠다며 장소를 제공해 달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도서관에선 아침에 아이들만 두고 문을 열 수도, 점심시간에 다른 아이들 이용을 금지할 수도 없었다.


다행히 다른 선생님과 아이들을 연결해 주어, 모임 장소를 확보하게 되었다. 스쿨 처치 모임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기도 모임은 후배들을 통해 4년 동안 계속 이어졌고, 매주 한 번 20분 정도 일찍 등교하여 함께 예배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말씀, 찬양, 기도 인도, 광고담당까지 매주 로테이션으로 담당자를 정해 직접 진행했다.


나도 한 달에 한 번은 참석하려고 노력했다. 가끔 갈 때마다 학생들의 기도하는 모습이 풀무불 앞에 선 다니엘의 세 친구 같았다. 그만큼 간절하고 뜨거운 기도의 시간이었다. 계절이 바뀔수록 학교 안의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부정적이던 분위기는 많이 밝아졌다. 복도 끝에서부터 쌤~을 부르고 달려올 만큼 의욕적이고 긍정적인 새내기 학년들이 계속해서 입학했다. 학교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첫 3개월의 성과 없어 보이던 초과근무가 결국 젖은 낙엽들을, 물에 잠겨 숨만 겨우 쉬던 학교를 뽀송뽀송하게 말려주고 날아오르게 만든 첫 계기가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힘들었던 일도, 슬펐던 일도, 화가 났던 일도, 속상했던 일도, 기뻤던 일도, 즐거웠던 일도 많았던 학교다. 가장 오랜 시간 근무한 이곳에서의 처음을 기도로 시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학교도서관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점점 더 아이들이 찾아오기 힘든 시대를 버텨내고 있다. 나는 전진도 후퇴도 불가한 최전선에 서 있다. 단 한 명이 온다고 해도, 그 아이에게는 도서관이 마지막 구명보트일 수 있다. 그때처럼 초과근무 기도로 버텨내며, 최선의 방어인 기도 수비를 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