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심령사진

도서부 야외활동 사건

by Pearl K

한 달에 한 번 동아리 활동 때만 만나는 다른 동아리들과 달리 도서부의 경우는 매일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 도서관에 와서 봉사를 한다. 매주 자신의 당번일에 도서관에 와서 묵묵히 맡은 봉사를 해내는 아이들에게 동아리 시간만큼은 쉼과 즐거움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또 도서부로서 서점뿐만 아니라 공공도서관, 대학도서관 등 다양한 관종의 도서관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기를 원했다.


그런 이유로 코로나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동아리 활동은 98% 이상 외부 활동을 기본으로 하여 운영해 왔었다. 그동안 도서부 동아리 활동으로 참 많은 곳을 다녀왔다. 가까운 근교의 일반 서점과 중고서점, 공공도서관, 마을도서관, 첨단화가 잘 되어 있는 유명한 대학도서관, 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과 시인의 문학관을 비롯하여 한글박물관, 매년 5월~6월 사이에 열리는 서울 국제도서전까지. 적게는 15명부터 많게는 30명까지 아이들을 인솔하여 다니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많았다.


그날은 학교에서 대중교통으로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중고서점으로 도서부 동아리 활동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이곳은 우리 지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중고서점으로 복합쇼핑거리의 꼭대기 층이다. 시험이 끝난 직후여서 바깥에 나가는 것도 좋고, 복합쇼핑거리라서 볼거리와 놀거리, 먹을거리까지 많다는 생각에 아이들도 들떠있었다. 중학생 아이들 26명을 인솔하여 버스에 탑승하고 드디어 활동 장소에 도착했다.


중고서점을 탐방하면서 직접 현장에서 책을 고르는 현장수서도 하고, 각자가 개인적으로 구입하고 싶은 도서도 구입하고, 중고서점의 도서 배치나 환경들을 보면서 우리 학교 도서관에 적용할만한 좋은 점을 찾아보는 미션을 주었다. 1시간 이상 넉넉히 주고 동아리 활동이 종료되기 10분 전 복합쇼핑거리가 시작되는 큰 등나무 앞에 모여 미션지를 제출하기로 했다.


모이는 시간이 가까워 오자 도서부 아이들은 하나둘씩 등나무 앞으로 모였고, 아이들이 제출한 미션지를 한 장씩 확인하면서 빠진 부분을 다시 채워서 내도록 했다. 잘 적힌 모든 미션지가 내 손에 쥐어졌고 마지막으로 단체 사진을 찍기로 했다. 학기 말에 동아리 활동 운영에 관한 보고를 하기 위해 필요하기도 했고, 아이들과의 시간을 사진으로나마 남겨놓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였다.


아이들은 등나무 앞에 자리를 잡고 두 줄로 늘어섰다. 26명이어야 하는데 둘러보니 딱 한 놈이 빠져있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더니 현빈이는 내 뒤쪽으로 도망가 있었다. 마치 순간이동을 한 것 같았다. 지침상 같이 사진을 남겨야 한다며 빨리 자리로 오라고 외쳤지만, 현빈이는 사진을 찍기가 싫다며 계속 고개를 내저었다. 몇 번의 설득과 우격다짐 끝에 겨우 현빈이를 아이들이 서 있는 곳에 같이 세울 수 있었다.


현빈이는 그전에도 학교에서 도서관 행사 때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도망가기 바빴다. 하루는 현빈이에게 왜 그렇게 사진을 찍기 싫냐고 했더니, “얼굴이 너무 못생겨서요.” 하고 대답했다. “넌 충분히 매력적이야. 너만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안 못생겼어.” 했더니 “그게 못생겼단 말이잖아요.” 하고 반문하기도 했다. 흔히들 사춘기는 외모 비수기라고 말한다. 2차 성징으로 인해 성장호르몬이 유발하는 각종 피부질환과 여드름 등이 가장 심각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긴 인생 중에서 가장 못생긴 시기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춘기 시기 특히 중학생 나이의 아이들이 외모에 얼마나 많이 신경을 쓰는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얼마나 많이 의식하는지, 무언가를 나서서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큰 용기를 내야 하는지를 중학생 아이들을 만나며 깨닫게 되는 순간이 많았다. 거기에 원치 않는 신체 변화와 호르몬으로 인해 주체하지 못하는 자신의 감정과 기분까지. 중학생 시기가 참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사서쌤~!” 하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동아리 끝날 시간 다 됐다고, 너무 덥다고 빨리 찍자는 아이들의 말에 서로의 얼굴이 가려지지 않게 잘 서라는 말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하나~둘~셋~ 찰칵! 마치 찰나와도 같은 순간이었다. 한 장은 아쉬우니까 두 장의 사진을 연속으로 찍었다. 수고했다고 하면서 찍힌 사진을 확인해 보니 아뿔싸! 현빈이 얼굴이 없었다. 어디로 갔지?

사진 찍기가 진심으로 싫었던 현빈이는 사진이 찍히는 순간 재빨리 고개를 숙였고, 까만 머리카락으로 덮인 머리 위가 얼굴 대신 찍힌 거였다. 나는 현빈이에게 이건 무슨 심령사진이냐며 툴툴댔고, 현빈이는 “헤헤~ 얼굴은 나오기 진짜 싫어요” 하며 승리의 미소와 함께 달아났다. 결국 그날의 동아리 활동사진은 현빈이의 얼굴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까만 원만 남긴 채 찍혔다.


중학교를 졸업 후, 현빈이는 본인이 희망하던 서울의 특성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절대 얼굴 사진은 찍지 않던 현빈이었는데, 채팅앱의 프로필 사진이 현빈이의 얼굴로 바뀌었다. 화장도 하고 점점 더 예쁘게 꾸민 얼굴이 되어가는 것을 몇 년간 보면서 신기하기도 기특하기도 했다. 마침내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해줄 수 있는 마음을 얻은 것 같아서다.


삶이라는 것이 늘 그렇듯 쉽지만은 않았지만 현빈이는 자신답게 살아내는 법을 배웠다. 이제 취업도 하고 자기 일과 삶을 여전히 씩씩하게 살아내고 있다. 지금도 가장 자주 연락하는 제자 중 하나이고, 같이 나이 들면서 친구가 되어가는 중이다. 적어도 사랑하는 제자 현빈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살기 위해, 나도 스스로를 좀 더 아끼서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