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이게 나야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K Apr 05. 2022

내 인생 최고의 빌런, 그건 바로...

내 인생의 주인공 자리를 되찾기 위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일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만큼의 인생을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주인공이 나라고 진심으로 생각했던 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조연도 아닌 최소한 수많은 엑스트라 중 한 명이라도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지나가는 사람 1, 2이거나 지금 당장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 시간들도 있었다.


   평범해 보이는 가정과 화목해 보이는 부모님,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기로 유명해서 모든 선생님들이 사랑했던 친오빠, 그는 결국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샤대에 들어가며 인생의 정점을 찍었더랬다. 키가 크고 예쁜 데다가 공부까지 잘해서 항상 여러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여동생. 키도 작고 통통하고 공부도 못하고 거기에 아프기까지 한 나는 우리 집 공식 못난이였다. 부모님의 인정도 사랑도 모두 오빠와 여동생에게 모두 향해있었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내가 그분들의 삶에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된 것처럼 느껴게 했다.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고 싶었는데, 내 삶을 주도하는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엄마였다. 엄마의 평가와 판단에 따라 나는 휘둘렸고, 그냥 엄마와 나는 그저 성향이 다른 사람이었던 것뿐인데 ‘너 같은 애는 세상에 없을 거라는 둥.’, ‘정신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등’으로 쓸모없는 존재 취급을 받기도 했었다. 사실 가장 아프고 예민했던 사람은 난데 ‘그 꼴을 해가지고 어딜 나가냐.’,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냐.’ 등의 말들은 내가 사랑받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엄마에게 항상 1순위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시선이었고, 정작 그 과정에서 딸이 받을 상처 같은 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빼앗긴 내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와야만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탈출의 날짜만 세며 그 시간들을 버텼다. 최대한 집과 멀리 떨어진 곳의 대학을 가고 싶었다. 4시간 30분 거리의 도시로 대학을 가면서, 엄마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몸은 독립했지만 정신이 독립하진 못했고, 나의 완벽한 독립과 주도권 쟁탈을 위해 나는 스스로를 탐구하고 또 탐구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른 사람과는 어떻게 다른지, 정말 신경정신과적인 문제가 내게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 같은 것들을 계속해서 찾고자 했다.


   대학에서 상담 심리학 관련 교양과목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수강했고, 실제 상담센터에서 MBTI를 비롯하여 MMPI까지 다양한 검사를 받았다. DISC와 기질 테스트 등 할 수 있는 검사란 검사, 나를 알기 위해 알아야 할 나에 관한 모든 것들 그것이 그저 재미를 위한 것일지라도 혈액형, 별자리까지 모두 섭렵하며 스스로를 알고자 애썼다. 나는 내가 궁금했고, 자라는 내내 타인들과 엄마가 내게 심어준 거짓말에서 제대로 된 나만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 너무 중요했다.


   그런 노력들 덕분에 나는 나를 알아갈 수 있었고, 학창 시절에 겪었던 사건으로 인한 PTSD가 내게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꾸준한 전문 상담과 계속되는 노력으로 나는 나의 실체에 점점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마침내 정신적으로도 부모님께 스스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되었다.


   여전히 부모님은 바뀌지 않았지만 엄마가 내게 ‘넌 비정상이야’라는 말을 던질 때마다, “나 같은 사람이 세상에 16.7%는 존재해. 나는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고 엄마와 다른 성향을 가지고 태어났을 뿐이야.”라고 대답하게 되었다. 물론 그런 내 대답에도 엄마는 코웃음 칠 때도 있고, 엄마를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며 불쾌해하실 때도 있었다.


   결혼 직전 2년 정도 엄마와 지독하게 싸웠다. 나도 물러설 수 없는 지점, 사과를 받아내야 하는 지점이 있었고 엄마는 이미 지난 일을 왜 혼자 그렇게 기억하면서 엄마를 자꾸 나쁜 사람으로 만드냐고 했다. 하루는 내가 30대 중반이 넘었음에도 아직도 결혼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았다고 했더니, 엄마가 무엇 때문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엄마, 왜 전에 나 고2 때 엄마가 그랬잖아. 너 같이 행동하면 결혼해서도 남편한테 평생 맞고 살 거라고.” 전화기 너머로 엄마의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태연한 척 말을 이어갔다. “나 그래서 결혼 안 하는 거야. 평생 맞고 살기 싫어서.” 엄마는 미안해했지만 사과하지 않았고, 나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내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가지고 아이가 태어나도 엄마한테는 소개해 주고 싶지 않아.

-왜?

-내 아이가 엄마의 말 때문에 나처럼 평생 상처받게 하고 싶지 않거든.

-참 나 웃겨 죽겠네. 나도 니 애 할머니 안 할 거다.

  

   그때 비로소 엄마의 사과를 받아내는 걸 포기했다. 이제 원가족과는 영영 인연을 끊으리라 생각했다.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왔을 때 엄마가 보낸 장문의 카톡을 받게 되었다. 이제껏 나에게 했던 수많은 말과 표현들에 대해 진심을 담아 사과하는 내용이었다. 최후통첩으로 내가 했던 선언이 엄마에게 굉장히 충격적이었고 덕분에 정말 많은 걸 느끼게 했던 것 같다. 이제는 알고 있다. 엄마도 그저 엄마가 처음이라 너무 몰랐을 뿐이라는 걸.


   원가족을 끊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너무 많이 했던 지난 시간들 동안, 나에 대해 스스로 배우면서 어린 시절의 나를 보듬어줄 수 있었고, 지독했던 과거의 고통과 응어리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참 질기고 끊을 수가 없어서 내 짝을 만나 결혼을 하고 난 후에야 원가족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었다. 객관적으로 그 관계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지난 시간들이 모두 용서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과 별 차이 없는 엄마의 말에도 그저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어른이니까 아이들의 세상을 내 제한된 시선 속에 가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록 내 생각에 너무 이해가 안 가는 아이라고 해도, 그 아이를 잘 지켜봐 줄 수 있다면 좋겠다. 부모들이 정말로 알았으면 좋겠다. 본인들의 존재가 자녀에게 얼마나 크고 거대할 수 있는지를 말이다. 부모들의 욕망과 소망을 자녀들에게 투영하기보다 자녀들 스스로 자신을 찾아갈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 부모들이, 그런 어른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오늘 밤뿐만 아니라 내일 밤도 모레도 글피도 언제나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를 다독이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