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마법을 믿습니까?” 하일권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는 상대의 눈을 빤히 쳐다보며 질문을 건네는 마술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학로에서 이 작품으로 공연하는 것도 알고 있었고 드라마로 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렇게 본격적인 뮤지컬 드라마일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었다.
마술로 사람을 진짜 베어내고 사람을 진짜 사라지게 한다는 흉흉한 소문. 버려진 유원지에서 사는 정체 모를 한 남자. 그 남자는 진짜 마술사일까? 오프닝 곡인 'Magic in you'는 소문의 마술사 리을과 소문을 듣고 전하는 학생들이 함께 꾸미는 곡이다.
무대가 아닌 영상이라서 가능한 다양한 장치들을 활용한 촬영으로 학생들이 학교 창문 밖으로 걸어 나와 유리 창문 위에서 펼치는 라라 랜드를 연상시키는 군무는 멈춰 있던 내 심장을 두근두근하게 만들었다. “엉킨 길을 닿는 대로 가고 싶어. 여기는 꿈이 아니야 너의 맘속이야 등잔 밑의 밤이야 어지럽혀 믿었던 모든 것들 Let’s make a mess and Let the dreams go on."
혼란스럽고 엉켜있는 다 꼬여버린 세상에서 꿈도 미래도 잃어버린 소녀 윤아이. 어른들의 꿈을 강요받아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도 생각하지 못한 채 무작정 앞으로만 달려가는 소년 나일등. 마술사 리을은 이 두 사람에게 진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찾게 만들어 주는 존재가 된다.
이 작품을 둘러싼 두 가지의 시선이 있다. 나처럼 작품 전체에서 담고자 하는 숨겨진 의미를 추적하며 뮤지컬의 넘버(No.)가 등장하는 순간마다 설레며 보는 관객들, 어른들의 잘못으로 오해만 쌓이지만 아무도 책임져 주지 않는 윤아이의 삶과 성공의 길로 잘 달리다가 중간에 혼란을 겪는 나일등을 현실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관객들이다.
현실의 시선으로 보기에는 안나라수마나라 속 아이들은 여전히 쉽지 않은 삶을 산다. 달라진 것 없고, 해결되지 않은 미래가 답답하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은 리을이 이 아이들의 삶에 상처만 남겼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반대로 이 작품의 주인공들이 리을 덕분에 놓치고 있던 많은 것들을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삶을 오히려 더 큰 괴로움에 빠뜨렸던 각자의 논리를 가진 어른들을 피해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던 윤아이는 계속해서 아이로 남고 싶어 하는 마술사 리을을 만나 잃어버린 아이다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보호해주는 어른보다 오히려 이용하려는 어른만 가득했던 세상에서 윤아이는 마술사 리을을 통해 믿고 싶은, 믿을 수 있는, 믿어도 되는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는 언제부턴가 아저씨 같은 사람들은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렸어요. 정해진 기준에 맞추지 못하면 낙오자 취급을 받으니까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저씨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 도망치며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런데요. 저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언제부터 이 세상은 꿈도 규격에 맞추어 꾸어야 하는 곳이 되었을까요. 인정받는 어른이 되려면 대체 어떤 자격이 필요할까요. 나는 그냥 나다워야 하는데,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의 평균치를 벗어나지 않으려 애를 쓸까요."
부모님이 닦아 놓은 차가운 아스팔트 길 위에서 탄탄대로를 달려가는 것처럼 보이던 나일등은 정작 자신이 왜 달리는지, 어디로 달리고 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1분 1초의 여유도 없이 달려가야 했던 이유는 일등이의 행복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들의 시선에서 보기에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명망 있는 직업을 갖게 하기 위한 부모님의 삶의 방식을 따라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지금 내 의지대로 달리고 있나? 이 길은 너무 빨라서 주위가 제대로 보이지 않아. 끝이 어딘지도 모른 채 언제까지 앞만 보고 달릴 수는 없어, 나도 언젠가 이 차가운 아스팔트 길에서 벗어나 꽃밭을 달릴 수 있을까요? 어떤 어른이 되길 꿈꿨지? 어떤 어른이 좋은 어른일까. 잘 짜여진 시간표대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성공일까? 그렇게 되면 행복해질까? 모르겠다. "
드라마 ‘안나라수마나라’를 보는 내내 윤아이처럼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아이다운 삶을 빼앗긴 아이들이 떠올랐다. 자신들의 문제로 아이를 방임하고 학대하는 어른들이, 집이 괴로워 거리로 뛰쳐나온 소년 소녀들을 이용하는 어른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이 답답해졌다. 또 나일등처럼 어디로 가는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달려가고 있는 이 땅의 수많은 십 대들의 모습이 눈에 선해서 마음 깊이 미안해졌다.
어른들의 역할은 올바른 방향을 알려주고 기다려 주는 것뿐이다. 처음이니까 아직 방법을 잘 모르니까 아이니까 서투른 게 당연하다. 우리 아이들은 자신의 속도와 방향대로 가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어른들이 걱정하는 것보다 훨씬 잘 해내고 있다.
어른들이 생각한 길에서 아주 조금 벗어났다고 자라나는 모든 가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잘라내 버리면 그 어떤 꿈도 꿀 기회가 없다. 아이들이 스스로 해낼 수 있도록 믿어주는 어른들이 점점 더 많아지면 좋겠다. 꽃은 잘 닦인 아스팔트에서가 아니라 울퉁불퉁한 흙에서 피어나는 거니까.
”나는 다시 나를 믿고 뭐든 될 수가 있어 내일은 늘 오늘보다 설레겠지. 나는 다시 날 만났고 이 손을 놓지 않아 반짝이는 내 이름이 날 부르네. 저 구름 너머에 해가 있단 걸 난 항상 떠올릴 수 있어. 다시 피어날 꿈이 내 안에 있는 걸 느껴. In My Heart, Feel My Drea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