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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un 29. 2022

낭비할 줄 아는 삶

누구나 자신이 가진 돈을 주로 지출하게 되는 영역이 있고, 반대로 거기에 돈을 쓰는 것 자체가 매우 낭비 같다는 기분이 드는 영역이 있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비에 돈을 쓸 때는 아깝지 않고, 얼마가 들든 나의 만족을 채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진다.


   나에게 최악의 낭비는 패션이나 옷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이었다. 조금만 가격이 올라가도 쓸데없이 이런 것에 돈을 들이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 정도로 인색했다. 그렇다 보니 입는 것에 있어서 딱히 좋은 것을 산다거나, 오래갈 것을 사는 편이 아니었다.


   항상 몇 번 막 입고 해져서 버리게 되더라도 옷과 신발에 있어서만큼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태도로 살았다. 또 몸에 항상 열이 많아서 항상 반팔, 얇은 천으로 된 옷들을 즐겨 입었다. 어린 시절에는 주로 엄마가 옷을 골라주고 사주었는데, 마음엔 안 들었지만, 잔소리를 듣기 싫어 그냥 대충 입고 다녔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나 쭉 친하게 지낸 윗집 친구의 말에 따르면, 중학생 때도 티셔츠를 바지 안에 넣어 입는 내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단다. 외모에 대한 자신감도 없다 보니 옷과 패션에 더욱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조금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관심이 가는 사람이 생기면서부터였다. 그동안은 바지 두어 개와 티셔츠 몇 개로 충분했는데, 그 사람에게 예뻐 보이고 싶었다. 아토피가 심해서 평생 하지 못했던 색조화장도 시작하고 생전 안 입던 원피스도 사 입었다. 그때만큼은 옷에 돈을 쓰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그 사람과는 잘 안 됐지만, 덕분에 스스로를 꾸미기 위한 노력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가면 갈수록 조금씩 더 자신감이 붙게 되었고 옷차림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덕분에 평생 인연을 만났고 결혼 전 신혼집에 들어갈 때 결심했다. 새로운 옷들로만 옷장을 가득 채우기로. 그동안에 안 입던 옷과 오래된 싸구려들을 모두 처분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신혼을 시작했다.


   요즘 나의 옷차림을 말하자면 편한 바지와 반팔 티셔츠가 기본이고, 그 위에 얇은 바람막이를 같이 입고 다닌다. 원래 조금만 더워도 에어컨을 최저온도로 틀어놔도 계속 더워하는 사람이었다. 체질이 바뀐 건지 나이가 들어서인지 얇더라도 긴 팔 아우터를 같이 입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재작년에 한참 다이어트에 대성공했을 때는 원피스나 치마를 주로 입었는데, 다시 살들이 붙으면서 편한 옷만 찾게 된다.


   예전보다는 조금 더 패션이나 옷에 정기적으로 돈을 쓰게 되었지만, 여전히 패션과 옷을 사랑하는 누군가에게 나는 옷에 있어서만큼은 엄청난 자린고비일지도 모르겠다. 벗고 다니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닌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 체형에 어울리는 옷을 고르는 안목 정도는 있어 주었으면 하는 것뿐이다. 그저 어디 가도 부끄럽지 않고 너무 나이 들어 보이지 않을 정도만 어울리게 입고 다닐 수 있다면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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