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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earl K Jun 13. 2022

쓰기의 역사

무엇이든 쓸 수 있어

예전 모 광고에서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난 어디든 갈 수 있어.’라는 유명한 카피가 있었다. 나의 글쓰기를 이 카피에 빗대어 보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내 글쓰기의 시작과 끝을 모두 포함하는 문장은 다음과 같다. ‘다섯 손가락과 핸드폰만 있으면 난 무엇이든 쓸 수 있어!’


   일상의 소소한 부분에서 글로 표현하고 싶어지는 문장들이 떠오를 때면, 재빨리 핸드폰의 메모장을 열어 일단 첫 문장을 손가락으로 타이핑하기 시작한다. 첫 문장이 정해지면 그 뒤는 아주 수월하게 써 내려가는 편이다. 반대로 떠올린 문장이 마지막 문장이 될 때도 있다. 글을 다 쓴 이후에는 흐름에 맞게 단락의 구성을 재배치하기도 한다.


   때로는 우리 집 거실의 TV 앞에서 TV로 노트북 화면을 연결해 놓고 글을 쓸 때도 있다. 몇 년 전부터 눈이 나빠지면서 가까운 곳의 글자가 오히려 더 잘 안 보이거나 겹쳐 보일 때가 많다. 핸드폰으로 글을 쓰면 잘 보이지 않던 글자도 TV 화면으로 크게 확대되어 아주 잘 보인다. 이 방법으로 글을 쓰면 불필요한 오타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글을 쓰는 것은 나를 정리하고 정돈하는 행위다. 하루를 돌아보기도 하고 어떤 사건을 통해 혼란을 겪던 내 머릿속이나 마음을 정리하기도 한다. 글을 쓰면서 나는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나를 또는 타인을 다시 발견하게 된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할 때는 자꾸만 우울해지고, 나쁜 쪽으로만 흐르던 생각들도 글로 쓰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눈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애매하던 것들이 명확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매일의 일기장부터 시작해서, 학창 시절의 백일장과 교지, 글쓰기 대회까지 한순간도 글을 쓰지 않았던 시간은 없었다. 매번 일기와 독후감, 각종 대회 글짓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학교 대표로 글짓기 대회에 나가기도 했다. 습작 노트를 가득 채울 만큼 끊임없이 소설을 쓰기도 했고, 결국엔 죽기 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을 한 권쯤은 출판하는 게 평생의 꿈이기도 하다.


   대학 방송국에서 주최한 시 쓰기 대회에 참여했다가 입선도 안 되어 크게 좌절하기도 했다. 소강 기간이 있었지만 글쓰기를 포기하진 않았다. 방송작가의 꿈을 가지고 몇 달 동안 혼자 라디오 오프닝과 클로징을 썼고, 드라마 대본과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었다. 싸이월드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등에서도 계속 글을 썼지만, 쓰면 쓸수록 더 잘 쓰고 싶었다.


   몇 년 전 코로나가 터진 해에 건강 문제로 1년간 휴직을 하게 되면서 한 글쓰기 모임을 통해 어수선하고 자유분방했던 나의 글에 규칙과 질서가 생기게 되었고, 어떤 글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진정한 글쓰기의 맛에 눈을 떴고, 매일 쓰기 위해 하루 종일 생각하고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가 밤을 지새우면서도 글을 쓸 수 있어서 행복하고 즐거웠다.


   꾸준히 2년 정도 계속 여러 가지 글을 쓰고 있다. 길거리에서 핸드폰으로 쓸 때가 가장 많다 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생겼다. 친구와 약속이 있어서 서울에 나가는데, 지하철을 타고 나가는 순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지하철에서 내려 버스를 갈아타고 내리는 순간까지도 끊임없이 썼다. 이제 목적지까지는 횡단보도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마침 글의 마지막 부분을 쓰는데 정신이 팔렸다. 초록불이 세 번이나 반복되도록 건너지를 못하고 쓰던 문장을 다 마무리한 후에야 길을 건널 수 있었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주위의 모든 것들을 다른 관점으로 보는 시각과 그 순간을 포착해 내어 좋은 문장으로 옮겨 표현하려는 시도가 중요한 것 같다. 쉬운 일이 아니고 때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여전히 나는 끝까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내 삶에서 계속해서 쓰기의 역사를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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