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은서에게서 오랜만에 전화가 걸려왔다. "샘 잘 지내시죠? 그냥.... 답답해서 전화했어요. 하아.." 어릴 때부터 반복되어 온 상황에 대한 답답함과 막막함을 토로하는 내용이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내 눈에도 눈물이 차올랐다. 은서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할까. 그저 은서의 속상한 마음에 대해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처음 은서와 은준이를 만난 건 두 사람이 중등부에 막 올라왔을 때였다. 은서와 은준이는 이란성쌍둥이다. 은서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오빠 은준이와는 이란성인 만큼 서로 다른 점이 참 많았다. 은준이는 내가 맡은 반 학생이었고, 은서와는 함께 중등부 찬양팀으로 섬기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두 사람에 대해 알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두 아이는 성향도 성격도 취향도 모두 달랐다. 은서는 발랄하면서도 차분하고 침착한 편이었고, 은준이는 얌전해 보이지만 짓궂고 활달하고 활동적인 아이였다.
은서는 찬양팀으로도 섬겼지만 다양한 교육훈련도 앞서서 하고 싶어 했다. 잘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도전해보고 노력하는 태도가 참 예뻤다. 무엇이든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맡은 것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는 아이였다. 언젠가 한 번은 수련회 중에 조별로 수영해서 물품을 가져오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은서는 수영을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몫을 해냈다.
반면에, 은준이는 예배 시간을 불편해했다. 자신이 원해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께 강요받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1년 내내 단 한 번도 성경책을 들고 오지 않았고, 모두가 일어나야 하는 순서임에도 의자에 엉덩이를 딱 붙이고는 절대 떼지 않았다. 자의든 타의든 일단 예배는 참석해야 하니, 말씀도 잘 듣고 예배에도 잘 참여하라고 설득했다. 여러 방법으로 계속 권면해 보았지만, 오히려 점점 더 대놓고 장난을 쳤다.
둘의 차이는 학교생활에서도 드러났다. 공부가 쉽지는 않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은서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고, 때로는 잠도 줄이면서 평소에 열심히 노력했다. 반면에 은준이는 특별히 신경 쓰지 않다가 시험 기간이 돼서야 벼락치기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시간이 가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두 사람의 성적 격차는 예상보다 많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된 은서는 그동안의 노력이 빛을 발해 학교 시험에서 전교 1등을 했고 은준이는 특성화고로 진학하여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의 공부를 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어느 주말 은서네는 갑작스럽게 가족 모임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필 그 주에 은서는 중요한 조별 수행평가 과제로 약속을 잡아둔 상태였다. 조별 수행평가가 있어서 못 간다고 했더니 어머니께서 대뜸 "네가 그렇게 매번 이기적으로 하면서 네 오빠 앞길 막으니까 문제야."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순간 너무 당황해서 은서는 눈물밖에 안 났다고 했다.
단지 주어진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은서가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갔다. 심지어 딸이 전교 1등을 한 상황에서도 칭찬해주거나 격려해주기는커녕 쌍둥이 오빠의 앞길을 막는다고 말씀하시는 게 당황스러웠다.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로 인해, 은서는 일상생활 속에서 계속 상처받고 있었다. 사실 평소에도 어머니께서 은준이를 유독 티 나게 편애하시는 것 같다고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한 번은 은준이가 예배에 집중하지 못해서 어머니와 상담을 한 적이 있었다. "은준이가 예배에 집중도 못 하고, 참여도 안 하려고 해요. 어머니께서 은준이가 예배를 잘 드릴 수 있게 조금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하고 말씀드렸었다. 상담할 당시에는 "죄송해요. 은준이랑 잘 얘기해볼게요."하고 대답하셨었는데 그 후로 은준이 어머니는 나를 볼 때마다 이유도 없이 화를 내셨다. 은준이에게 듣기 싫은 소리를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섬기던 교회를 떠난지도 한참 지난 후였는데 어느 주일 오후 은서에게 전화가 왔고, 은서는 그날도 말없이 한 시간을 엉엉 울었다. 전후 사정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등학교 3년을 잘 마치고 은준이는 취업을 위한 위탁교육을 다니게 되었고, 은서는 각고의 노력 끝에 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동안의 노력을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어머니께 말씀을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또 “너 대학 합격했다고 소문내고 다니지 마라. 대학교 안 간 네 오빠가 얼마나 상처를 받겠냐.”라면서 은서의 마음을 또 아프게 하셨다고 한다.
가장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어머니에게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은서 안의 상처 입은 마음이 곪아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나 역시 자라면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은서의 마음이 더욱 이해가 갔다. 분명 다 똑같이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면서도 알게 모르게 오빠를 편애하는 엄마의 모습들을 보며 나도 참 많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은서를 다독이며 “은서는 충분히 잘하고 있고 진짜 멋진 사람이야. 네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하고 말해주었다.
부모라는 존재는 참 신기하다. 자녀들을 마음 깊이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끊임없는 비교와 차별을 통해 가장 큰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자녀들애개 부모란 가장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대상인데, 알게 모르게 반대의 메시지들을 전달하기도 한다. 부모가 처음이라 몰랐다는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변명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원가족인 친부모로 인해 받은 상처들은 잘 잊히지 않고 삶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저 자녀들이 자라면서 '그때 부모님은 그랬었구나'하고 부모의 입장이나 생각을 조금 더 이해하고 어린 시절의 자신을 보듬어 주는 방법 말고는 딱히 이런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없는 건가 싶어 답답해지기도 한다. 학교에서 근무하고 교회에서 중고등부 교사로 섬기면서 정말 많은 쌍둥이를 만났다. 일란성도 이란성도 있었고 성향이 비슷한 아이도 다른 아이도 있었다. 형제나 남매들도 그렇지만 특히 쌍둥이들을 보면 부모의 사랑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경우가 많다는 걸 느끼게 된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사랑하는 만큼 표현해 주고 알려주셨으면 좋겠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하고 사랑받을 만한 존재인지, 각자의 타고난 성향에 맞게 본인들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시면 좋겠다. 탁월하게 뛰어나도 생각만큼 잘 해내지 못하더라도 그 아이가 부모님께 사랑받아야 할 소중한 자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겉모습과 성향이 닮았든 안 닮았든 아이들 각각이 서로 다른 색의 날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날개를 잘 사용하여 날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고 칭찬해주고 무엇보다 각자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보완해 주신다면 좋겠다.
가족의 최소 단위인 부부는 전혀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다른 점을 맞추어가며 만들어간다. 그렇게 가족이 된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도 닮았든, 그렇지 않든 각자의 고유한 개성과 장단점을 가지고 태어난다. 부모도 자녀도 서로의 타고난 특성이 다름을 인정하고 맞추어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녀들에게 일방적으로 부모의 바람을 주입하고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각 아이에게 맞는 방법으로 사랑을 베풀고 표현해 주었으면 좋겠다. 걱정하는 것만큼 염려하는 것만큼 잔소리 대신 사랑을 부어주시길. 조금 더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보듬어 주시길 이 땅의 모든 부모님께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