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중등부 교사를 시작했을 때의 여름수련회는 그야말로 정신을 쏙 빼놓기에 충분했다. 2박 3일 동안 찬양팀으로 아침, 저녁 예배 전에 찬양과 율동하는 것은 기본이고 조 담임까지 맡아 16명의 아이들을 인솔했다. 그 외에도 각종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는 일까지 전방위적인 역할을 해야만 했다.
수련회에서 가장 기대되는 것 중 하나를 꼽으라면 수련회의 꽃이라 불리는 마지막 날 밤의 캠프파이어일 것이다. 보기에는 예쁘지만, 캠프파이어가 안전하게 오래 타오르게 하기 위해서는 준비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아이들이 오후 프로그램으로 물놀이와 게임에 푹 빠져 있는 동안 바깥 운동장에서는 캠프파이어 준비가 한창이었다. 신나게 놀고 씻은 아이들은 자율활동 시간에 낮잠을 자며 체력을 보충했다.
캠프파이어 준비로 뒤늦게 식사를 하던 선생님들은 자꾸만 와서 “샘~ 언제 시작해요?” 하고 묻는 아이들 덕분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푹 자고 일어나자마자 배부르게 저녁까지 먹고 나니 꽤나 심심했나 보다. 모여야 하는 시간은 1시간이나 남은 상황인데 무언가 재미있는 것을 찾아 운동장으로 아이들이 와글와글 몰려들었다. 결국 캠프파이어 시간을 위해 특별히 초빙한 레크리에이션 강사님께 SOS를 요청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님은 먼저 3학년 조장을 필두로 아이들을 조별로 줄 세워 앉도록 했다. 몇몇 남학생들과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 오후 게임에 사용했던 책상과 의자를 한 곳으로 모았다. 아이들의 눈은 기대감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자, 지금부터 댄스 배틀을 시작하겠습니다! 조장들 먼저 나오세요. 박수!!!!”, “와~~~!!!!!” 하는 열광적인 반응과 함께 잔뜩 긴장한 듯한 모습으로 조장들이 앞으로 나왔다. 댄스 배틀은 총 9개의 조를 세 번에 나누어 진행하기로 했다.
첫 배틀의 대결 상대는 1조, 3조, 6조였다. 각 조의 조장들은 공교롭게도 절친인 세 명의 친구들인 선아, 수영, 유진이였다. 음악이 흘러나오자 처음엔 쭈뼛거리더니 이내 체념한 듯 선아가 막춤을 추기 시작했고, 앉아서 구경하던 선아의 조원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수영이도 이어서 디스코 춤을 추기 시작했다. 선아와 수영이를 번갈아 보며 난감해하던 유진이도 리듬에 맞추어 살살 몸을 흔들었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님은 중간중간 박자를 맞추며 추임새를 넣어주셨다. 장르라 할 것도 없이 옛날 옛적의 개다리춤부터 막춤까지 형형색색의 몸짓들이 이어졌고, 그만큼 아이들의 환호도 커져갔다.
그렇게 시작된 책상 위의 댄스 배틀은 신나게 이어졌고, 덕분에 선생님들은 모든 준비를 마무리하였다. 드디어 캠프파이어와 함께 하는 저녁집회가 시작되었다. 캠프파이어 주변에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댄스 배틀의 열기를 이어 열정적인 찬양으로 예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재미있게 놀아 말씀 듣다가 조는 거 아닐까 피곤해하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예배와 말씀에도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집중하는 모습이 너무 예뻤다. 수련회를 무사히 마치고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기억에 남는 프로그램을 물었다. 아이들 대부분이 물놀이와 캠프파이어를 선택하면서 기타 항목에 깜짝 댄스 배틀을 써넣었다.
흔히들 청소년 사역을 하려면 잘 먹이고 잘 놀아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교회와 수련회에서 즐거운 경험을 했던 친구들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하나님을 더 가까이 느끼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아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의 말을 듣는다.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먼저 아이들이 교회에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한다. TV 문화를 지나치게 꼭 따라서 할 필요는 없지만, 교회 안에서도 아이들만의 놀이 문화를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아이들은 바쁘다. 바빠도 너무 바쁘다. 학교를 다니고 학원을 다니고 각종 수행평가와 학원 과제에 시간이 부족해 고함량 카페인 음료를 달고 잠을 줄이며 산다. 이런 청소년 아이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 교회에서 예배 후 짧은 공과 시간에 잠깐 얼굴을 보는 것으로는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함을 극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일 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하는 명절 윷놀이나 한 학기에 한 번 열리는 체육대회를 통해서 아이들의 마음을 얻어 내려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른다. 요즘 교회에는 청소년들과 함께 하는 놀이문화가 사라져 버렸다. 아이들끼리 친해져야 할 시간에 목회자나 선생님이 자꾸 끼어들어 올드한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것도 문제다.
슬프게도 최근 몇 년간 교회 중고등부 안에서도 왕따, 은따가 무수히 많음을 보아왔다. 심지어 자기 마음에 안 드는 아이들을 몇 주 안에 계획적으로 교회 밖으로 내보내기도 한단다.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곳인데, 사랑을 전하기는커녕 차별과 배제의 공간이 되어 가다니 안 될 말이다. 안 그래도 숨 막히는 아이들을 위해 교회는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이자 때로는 편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어야 한다.
그날의 캠프파이어 앞풀이로 진행한 댄스 배틀을 떠올리면 지금도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된다. 선아와 수영이 유진이는 고등부를 졸업하자마자 중등부 교사로 자원했고, 자신들이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과 신나는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는 멋진 선생님이 되어주었다. 억지로 시키지 않아도 좋은 시간을 경험한 아이들은 고민하더라도 결국 자신의 신앙을 스스로 잘 쌓아간다. 어른들이 이 사실을 너무 쉽게 잊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조급함과 욕심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신앙을 쌓아갈 수 있도록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소한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만이라도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성공과 물질주의의 프레임으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시대 속에서, 청소년들에게 교회가 좀 더 나은 가치와 대안을 줄 수 있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매주 놀기만 할 수는 없겠지만 언제든 자신들을 받아주고 안아줄 수 있는 곳이라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