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예배 시간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집을 나섰다. 본 예배 전에 찬양팀 연습이 있기 때문이다. 예배 시작 전에 3~40분 정도 예배 시간에 부를 찬양을 풀 세션으로 맞추어 보고, 간단히 기도 제목도 나누는 시간이다. 연습이 끝나고 예배 장소로 이동해서 악기와 마이크를 세팅하고 찬양팀 모두가 함께 모여 예배를 위해 잠시 기도했다.
아이들이 한 명씩 들어와 앉고 9시부터 10분~15분 정도 찬양을 한다. 나의 역할은 오른쪽 싱어다. 리더 우측 끝에 서서 미리 연습했던 찬양을 순서대로 부른다. 빠르고 신나는 찬양곡과 고음 부분을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했던 찬양곡도 무사히 지나가고 마지막 곡이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 주의 얼굴 구할 때 주의 영을 부으사 /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 하소서 /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 믿음의 눈 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세 번째 곡을 찬양하던 중에 손을 들고 찬양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손을 들고 나니 예상치 못하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손을 드는 것도 눈물이 나는 것도 나의 의지나 감정이 아닌 것 같았다. 같은 교회에 계셨던 전문 찬양사역자 한 분이 예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신은 찬양을 인도하며 운 적이 없다고 그건 올바른 인도자의 혹은 찬양팀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매번 중등부 학생들과 함께 찬양팀으로 설 때마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 누가 내 손을 잡아 위로 올리는 기분이 들고, 나의 감정 상태와 관계없이 눈물이 났다. 은혜를 주시는 건가 싶다가도 때로는 얼떨떨하기도 했다. 애써 힘으로 손을 내려 보았지만, 내 의지로는 내려지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다. 예배가 끝나고 마지막 찬양을 하는데 또 여느 때처럼 눈물이 흘렀다. 찬양을 마치고 훌쩍거리며 마이크와 악기 세팅을 정리하고 있는데, 같이 찬양팀을 하는 민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게 물었다.
“샘! 울어요? 왜 울어요?”
“아, (훌쩍) 찬양하다가 그냥 눈물이 날 때가 있어.”
“울지 마요.”
“그래, 고마워. 민서야.”
8년 정도 중등부에서 교사와 찬양팀 싱어를 함께 하면서, 여름 수련회에서 수많은 찬양을 불렀었다. 중등부 아이들과 함께 찬양할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넘치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내 감정 상태로 인해 눈물이 날 때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중등부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울컥울컥 사랑스러운 감정들이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왜 이럴까 많이 고민했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중등부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스럽게 여기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아마도 그 마음이 내게 전달된 것 같았다. 노래하다 매번 우느라 바쁜 싱어답지 않은 싱어였지만, 울 수 있는 마음을 주셨다는 게 감사하다. 그렇게 가득 채워주신 사랑으로 중등부 아이들을 더 마음 다해 안아주고 사랑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아이들을 만나 함께 생활하며 자라는 모습을 본다. 성장한 아이들을 떠나보낼 때 깨닫게 된다. 내가 얼마나 사랑도 없고 이기적이며 부족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인지를.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온전히 내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매 순간 뼈저리게 배운다. 바짝바짝 메마른 마음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게 해 주셔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