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색 등골 브레이커

우리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by Pearl K

“21세기 계급은 반으로 딱 나눠져 / 있는 자와 없는 자, 신은 자와 없는 자 / 입은 자와 벗는 자 또 기를 써서 얻는 자 / 떼를 쓰고 애를 써서 얻어냈지, 찔리지 / 가득 찬 패딩 마냥 욕심이 계속 차 / 휘어지는 부모 등골을 봐도 넌 매몰차 / 친구는 다 있다고 졸라대니 안 사줄 수도 없다고 / 철딱서니 없게 굴지 말아 그깟 패딩 안 입는다고 얼어 죽진 않어 / 패딩 안에 거위 털을 채우기 전에 네 머릿속 개념을 채우길, 늦기 전에 by 방탄소년단, 등골 브레이커”


문제의 패딩이 유행하던 겨울, 같은 노회의 교회 청소년부들이 한데 모여 연세대학교 원주캠퍼스에서 열리는 2박 3일간의 연합수련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 역시 주일학교 교사 자격으로 학생들과 함께 수련회에 참석했다. 나의 임무는 메인 프로그램이 시작하기 전에 각 방에서 쉬고 있는 학생들을 프로그램 장소로 이동하도록 독려하고, 방에 남아 있는 학생이 없는지 마지막까지 체크하는 것이었다.


여학생들의 방마다 노크하고 들어가 학생들을 준비시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로 보냈다. 그렇게 방마다 둘러보고 있는데, 한 방의 문이 완전히 잠겨 있었다. 문을 두드려 보았더니 방금 잠에서 깬 것이 분명한 금발 머리의 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한지유’라는 학생으로 1학년 때 중국 유학을 갔다가 중학교 3학년 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 아이였다.


아이들을 깨워 보내려고 일단 방으로 밀고 들어갔다. 발을 딛는 곳마다 과자 부스러기가 밟혔고 불을 켜 보니 다 먹은 과자봉지가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나는 아이들을 깨워 세수하고 옷이라도 입으라고 시킨 후 빗자루로 열심히 바닥을 쓸었다. 그동안 아이들의 준비가 끝났고 그렇게 일곱 명의 중학교 3학년 여자아이들과 함께 메인 프로그램이 진행 중인 장소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일곱 명의 소녀들은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색의 N사 패딩으로 깔 맞춤한 상태였다. 곁을 지나가던 다른 학생들은 겉으로 보이는 지유와 친구들의 포스에 놀라 감히 범접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수련회에 친구들 여섯 명과 함께 참석한 지유는 첫날부터 엄청난 아우라를 뿜어냈다. 알록달록한 헤어와 패딩, 전문가도 울고 갈 완벽한 풀 메이크업.


아이라인과 속눈썹은 하늘까지 올라갈 기세였고 누군가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하려고 하면 잔뜩 치켜뜬 눈으로 쏘아보면서 말끝마다 욕설을 시전 하였다. 그러다 보니 수련회에 참석한 다른 아이들은 무지개색 패딩을 입은 이 아이들에게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려고 애썼다. 그들이 가는 길을 막을 자는 아무것도 없었다.


무지개색 등골 브레이커로 무장한 일곱 명은 이미 늦었음에도 위풍당당하게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장소로 들어섰고,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일곱 명에게 집중되었다. 그렇게 당당하게 들어가서 맨 뒷좌석에 자리 잡은 아이들은 예배가 진행되는 내내 꿀잠을 잤고, 나는 곁에서 얘들을 깨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수련회 기간 내내 모두가 피해 다니는 지유와 친구들을 전담하다시피 케어해야 했다. 처음에는 나 역시 총천연색의 일곱 색깔 무지개 등골 브레이커 때문에 지유와 친구들이 좀 무서웠다. 입고 다니는 옷이나 풍기는 포스뿐만이 아니라 항상 껌을 씹고 있는 생활 습관이라던지, 여섯 명이 함께 쓰는 방이 하나도 정돈이 안 되어 있거나, 밤늦게까지 안 자고 돌아다니는 등의 일로 본의 아니게 계속 잔소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이 계속되다 보니 나도 인간인지라 마음속에서는 저럴 거면 집에서 쉬지 굳이 왜 수련회까지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점점 이 아이들이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고, 혹여나 다른 교회 아이들과 시비가 붙는 등의 사고를 칠까 봐 걱정이 앞섰다. 게다가 아이들을 챙기느라 정작 수련회 프로그램에는 거의 참여도 못 하고 예배도 못 드렸다. 수련회 기간 내내 교사들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며 학생들을 돌봐야 했기에 충분히 쉬지도 못했다. 솔직히 너무 지쳐 포기하고 싶었다.


이런 나의 편견이 와르르 깨지게 된 계기는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예배 시간에는 조느라 맥을 못 추던 아이들이 준비한 게임들과 캠프파이어 시간에는 열과 성을 다해 참여하는 모습을 보았다. 눈에 잔뜩 힘을 준 화장을 했지만, 사소한 것에도 까르르 웃으며 떠들 땐 영락없이 귀여운 사춘기 소녀들이었다. 저녁예배가 끝난 후 소그룹 시간에 다 같이 모여 기도 제목을 나눴다. 그때서야 알 수 있었다. 이 아이들이 어린 나이에 아는 사람도 없는 외국으로 유학 가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혼자 버텨내야 했는지.


2박 3일의 짧은 수련회 동안 반복적으로 지유와 친구들을 만나면서,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과 다르게 이 아이들이 얼마나 순수하고 엉뚱하고 매력적인지를 발견하게 되었다. 흔한 어른들이 그렇듯이 나 역시 겉모습만으로 아이들에 대한 커다란 편견을 가졌음을 깨달았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에만 시선이 맞추어져 있다 보니 일곱 명의 소녀가 가진 사랑스러움을 놓치고 있었던 거다.


한지유와 일곱 명의 무지개색 등골 브레이커 덕분에 배울 수 있었다. 기존에 가진 인식의 벽을 깨고 나온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 한 가지를 기억하기로 했다. 2천 년 전에 오신 예수님도 모두가 외면하던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 사셨다는 것을 되새겨 본다. 나의 시선에 담긴 편견을 한 꺼풀 걷어내고, 아이 그 자체를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예수님이 내게 그래 주신 것처럼.